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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메이지유신의 두 얼굴

서의동 2019. 8. 4. 22:28

2018.10.23 

시모노세키(下關)는 한·일 국제여객선 부관페리호가 닿는 곳으로 야마구치(山口)현에 속한다. 야마구치현은 에도 막부시대에는 조슈번(長州藩)으로 불렸고, 도쿄의 막부(중앙정부)와 1000㎞나 떨어진 거리만큼 관계도 좋지 않았다. 대신 중국·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조슈번은 국제정세에 민감했고, 번의 영주(다이묘)였던 모리(毛利)가문은 부국강병에 힘썼다. 조슈번은 1863년 막부의 쇄국령을 어겨가며 번의 유망한 청년 5명을 영국 유학까지 보낼 정도로 서양문물 수용에 개방적이었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개혁 지사들을 대거 배출하는 요람이 됐다.

 

1860년대 막부 말기의 난세에서 조슈는 가고시마를 근거지로 하는 사쓰마번(薩摩藩)과 함께 정국을 좌우하는 실세로 부상했다. 당초 조슈의 주류는 ‘왕을 높이고 외세를 배척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걸고 막부에 반대하는 입장인 반면, 사쓰마는 막부의 개국 노선을 지지했다. 이런 입장차로 두 세력은 치열하게 다퉜으나 당대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중재로 두 세력이 삿초(薩長)동맹을 결성했다. 삿초동맹은 막부체제를 무너뜨리고 일왕세력이 권력을 쥐는 메이지유신을 이끌었다.

 

조슈번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明),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등 8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이 중에는 을사조약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등 한국과 악연이 있는 인물들도 적지 않다. 아베 신조 총리도 조슈번에 속하는 야마구치현 나가토시 출신이다. 그는 정치를 하면서 메이지유신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자산으로 활용해왔다.

 

그 메이지유신(1868년)이 올해로 150주년이 됐다. 새 정부가 원호(元號)를 막부 말기의 게이오(慶應)에서 메이지로 바꾼 23일 일본 정부가 주관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메이지유신은 서구식 근대화의 기점이면서 군국주의의 토양이라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근대화의 출발점을 기리는 행사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 일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이를 군비증강과 평화헌법 개정 등 ‘정치적 불쏘시개’로 활용하려 한다면 메이지유신의 긍정적 성취도 빛이 바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