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 25. 22:45

1978년도에 중1이었고 영화처럼 고1때까지 교복입고 머리 짧게 깎고 다녔던 세대입니다. 영화에 추억을 알려주는 여러 가지 소품들 예를 들면 한가인이 끼던 흰색 모노이어폰이라든지 빨간책이라 부르던 도색잡지들, 진추하의 노래들을 접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이 영화에 나오는 여러 가지 장면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더군요.





무엇보다도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 당시 추억들을 잠시나마 떠올리게 해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특히 권상우가 연기한 현수의 캐릭터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전학생이고 원래 조금 수줍어하는 성격. 그렇지만 학교와 세상이 자신에게 결코 협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점차 체감하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한가인과의 사랑마저 종치게 되자 절권도를 선택하게 되는 과정이 꽤 흥미진진했습니다. 권상우의 말투와 눈빛, 꾸부정한(비에 젖은 한가인에게 손수건을 건넬때) 어깨가 그런 성격과 조화를 이루더군요.


그 시절이 그렇게 폭력적이었냐고, 너무 과장됐다고 하실분들도 있겠지만 그땐 정말 그랬습니다. 당시 교련교관들은 군복입고 군화신고 근무했었고 지휘봉 들고 다니면서 애들 패고 그랬죠.


권상우의 담임선생으로 나온 그 분도 정말 어디서 딱 그런 사람 구해놨나 싶을 정도로 딱이더군요. 지금 중고교엔 선도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선도부는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그들 자체가 불량기가 있는 놈들이지만 선생들이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그들에게 부여한 약간의 권력을 주저없이 휘두르던 놈들이었습니다. 마름같은 놈들이었다고 해야할까요. 실제로 동급생애들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짤짤이하다 1년꿇은 애한테 돈 잃은 장군의 아들이 교련교관에 가서 꼬아박자 교관이 불러 돈뺏고 뚜드려 패고, 맞은 놈이 수업시간에 볼펜으로 장군의 아들내미 머리를 찍고...그 장면도 인상깊습니다.


어쨌든 참 재밌는 영화였고 옛 시절로 잠시 돌아간 듯한 행복감을 즐길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옛 시절이 아무리 괴로워도 추억은 언제나 그리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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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8. 7. 18:53
예전에 이곳에 정주영회장이 돌아갔을 때 애국사업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협력을 '애국사업'이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농협이 최근에 민족은행이란 용어를 쓰듯이 우리 가슴한켠에 있는 동포애와 센티멘탈리즘을 자극,최대한의 효과를 보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정주영회장은 그 애국사업의 선구자였고 오늘 투신한 정몽헌회장은 선친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어받은 2세였습니다. 금강산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추진이란 사업을 벌여나가면서 북한과의 단단한 연을 맺어온 그가 북한이 부시행정부의 압박과 남한사회에서 일고 있는 '반북분위기'에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신했습니다. 그는 유서에 유골을 금강산에 묻어달라고 힐 정도로 애국사업에 애착과 집념을 보여왔습니다. 그의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다기 보다는 먼저 당혹스럽고 안타깝습니다.)

혹시 김보애라는 이름 들어보셨나요? 영화배우 김진아의 어머니이자 그역시 영화배우였던 대북 사업가입니다. 무슨기획인가 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북한과의 사업을 10년이상 해오고 있습니다.  사업성으론 정말 꽝인 북한과 사업하면서 번번이 골탕도 먹고 했지만 그런 가운데 미운정 고운정 다들어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도 최근엔 각종 사업에서 김씨의 발언권을 인정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애국사업이 전혀 시장원리를 무시한 '퍼주기'였을까요? 한나라당 애들이 지랄떨 듯이 국가를 팔아먹는 역적행위였을까요? '정주영영감'이 말년에 노망이 도져 수구초심에서 대북사업에 뛰어들었던 걸까요?

모든 사회주의 국가와의 사업은 초기투자가 과다하게 들어가는 측면이 있었고 특히 50년전에 전쟁까지 치렀던 북한과 사업을 벌이려면 북한의 마음문을 여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소련과 수교할 때 차관명목으로 준 30억달러는 아직도 절반이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사람들에게서 시장마인드를 기대하는 것은 정회장이 금강산 사업협상을 할 때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막무가내인 사람들을 상대로 협상을 벌여 결국 사업권을 따냈고 달러맛을 알아버린 북한이 금강산 배가 정박하는 장전항에 잠수함 기지를 옮겨버리도록 한 것은 오직 정씨들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삼성같으면 몇백년 협상을 해도 성사못시켰을 것입니다)

소 5백마리를 끌고 휴전선을 넘는 창의력과 초기에 조금 손해보더라도 밀고 나가는 배짱 때문에 북한은 결국 마음문을 열었습니다. (왜 통일이 중요하고 민족이 무어 그리 중요한가 등등의 의문에 대해선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죠. 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애국사업이 남긴 부정적 후과는 일단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 들어가기 위한 진입비용이 엄청나게 커져 버린 것이죠. 현대의 물량공세에 맛이 들린 대남담당자들이 공공연하게 뒷돈을 요구한다든가, 사업비를 터무니없이 요구한다든가 하는 것이죠.

아무튼 그의 죽음은 노무현정부들어 조리돌림당하고 있는 햇볕정책의 신세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민족화해를 위해 열과 성을 다했던 사람들이 수의(囚依)를 입거나 특검조사대에 올라 발가벗겨지고 있는 현실이 정말 서글픕니다. (소련에 차관 30억달러 빌려준 건 왜 수사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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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5. 30. 10:57

마지막 출장지는 브라질. 다들 아시겠지만 브라질 땅덩어리는 중국보다 조금작은 대륙의 나라다. 그래서 그런지 브라질 사람들은 자기네를 대륙이라고 일컫는 것에 은근한 자부심을 갖는 것 같다. 사람들도 낙천적이고 만만디란다. 



실제로 크긴 크다. 851만제곱킬로미터라고 하니 남한땅의 80배가 넘는 셈이다. 자원도 당연히 풍부하다. 브라질은 이런 땅덩어리를 바탕으로 남미통합을 주도하고 있다. 2005년 체결을 위해 추진중인 미주자유무역협정(FTAA)에 대해서도 브라질은 개별분산적으로 북미지역과 협정을 체결할 경우 종속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에 우선 남미 통합을 서두른뒤 북미와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웃국가인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우루과이 등과 메르코수르(관세동맹)를 체결한 것도 경제적 실리보다는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브라질은 흔히 커피의 나라로 인식돼 있지만 실제 주력 산업은 항공산업이다. 미사일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대국의 자존심에 걸맞게 국방기술쪽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위정자들의 생각이 낳은 소산이다.

브라질의 상파울루는 브라질의 경제수도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과는 지난달부터 무비자 협정이 발효돼 브라질은 비자없이 갈 수 있다. 하긴 비자가 문제가 아니라 비행기로도 꼬박 하루이상 걸리는 거리가 문제겠지.

브라질의 인상은 그리 깔끔하지는 않았다. 우선 우리숙소인 호텔도 칠레에 비해 훨씬 후졌다. 웃기는 건 엘리베이터를 탈때도 호텔 카드키가 없으면 못탄다. 엘리베이터에 카드키 입력구가 있어 체크를 한 다음에야 가고자 하는 층번호가 눌러진다. 도둑들이 많기 때문이라는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한국인들의 브라질 이주역사는 1925년으로 올라간다. 그때 6~7명이 들어왔고 이후엔 거의 없다가 60년대 중반부터 6차에 걸쳐 집단이민이 시작됐다. 

대학보다 비싼 고교등록금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브라질의 고교학비는 대학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1달 고교 월사금이 900헤알인데 비해 대학은 400헤알이라고 한다. 또 학년이 올라갈때마다 진급비용을 내야 한다는데 왜 이런지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브라질사람들은 낙천적이고 개방적인 만큼 생활이 문란한 편이다. 결혼해도 남편외에 애인을 한두명씩 데리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브라질 TV드라마에선 3각관계로 사람을 죽이는 내용이 자주 방송된다고.
다민족국가라 그런지 특별히 국가에 대한 애정이나 충성심도 없다고 한다. 개인만 잘살면 된다는 주의가 이곳 사람들의 심리다. 

상파울로 거리에는 북한에서 보던 무궤도 전차가 많이 눈에 띤다. 참 그러고 보니 칠레의 비나 델 마르에서도 무궤도 전차를 봤더랬지. 

이과수를 가다

이과수는 상파울로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쯤 떨어진 곳에 있다. 아담한 공항에 내려 다시 관광버스를 타고 30분가량 들어가면 이곳이 이과수 국립공원이다. 세계 산소의 3분의1을 생산한다는 아마존강의 상류가 이곳 이과수 폭포다. 
96년도에 나이아가라폭포를 가본 적있었는데 그보다 조금 큰 정도겠거니 했는데 웬걸 나이아가라폭포정도가 수십개는 있는 듯 했다. 그 장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폭포로 향하기전 산소체험이란 코스가 있다. 이곳 국립공원내 밀림을 약 700m가량 걸어가면서 산소를 들이마시는 건데 세계적인 산소공급원이어서 진짜 코가 시큰하고 상쾌한 느낌이 좋았다. 이과수는 이곳 원주민말로 '엄청난 물'이란 뜻이란다.

산소체험을 마치고 나면 보트를 타고 폭포에 다가가는 폭포체험 코스에 들어간다. 온몸이 젖기 때문에 비옷을 단단히 입고 그 위에 구명조끼를 걸친다. 카메라와 여권등 도 비닐주머니에 담아야 한다. 20~30여m 떨어진 폭포에서 분사되는 물방울이 배까지 튄다. 이날따라 폭포의 유량이 많아 위험하다며 폭포안으로 들어가진 못했지만 물맞는 재미도 색다르다. 

폭포를 나와서 '악마의 목구멍'이 보이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악마의 목구멍이란 곳은 목구멍 처럼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다른 곳에 비해 폭포가 일찍 시작되는 곳인데 옛날 원주민이 폭포가 시작되는 줄 모르고 배를 타고 가다 갑자기 떨어져 죽는 경우가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악마의 목구멍은 아르헨티나쪽에 있어 직접 가보진 못하고 먼발치에서 관광객들이 구경하는 장면을 보는 정도였다.

공원주변엔 '개미핥기'가 많이 보였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개미핥기완 다르게 생겼다. 고양이만한 크기에 꼬리가 길고 굵은 포유류 종륜데 개미핥기라고 부른단다. 근데 이름에 안어울리게 쓰레기통을 뒤지고 사람이 가까이가도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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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5. 30. 10:38

대사관저에서 만찬을 마친뒤 밤 11시에 칠레행 비행기에 올랐다. '란칠레'의 보잉기였는데 들어가보니 에어로 멕시코와는 인상이 확 달랐다.(에어로멕시코는 국내선이라 비교하긴 그렇지만) 우선 모든 좌석에 TV모니터와 전화기겸용 리모콘이 설치돼 있다. 목을 길게 빼고 승무원의 비상시 요령을 지켜봐야하는 부담이 없다. 기내식도 그런데로 훌륭했다(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전 8시30분에 도착했으니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8시간여동안 비행기를 탄 셈이다. 
5월하순의 산티아고는 매우 추웠다. 남반구라 늦가을인 셈인데 아침 기온이 영상 6도란다. 공항에 내리자 마자 서둘러 긴팔옷을 꺼내 입었다. 칠레 공항에서 산티아고 시내로 접어들자 바로 눈에 띠는 것은 정상부분이 하얗게 빛을 발하는 안데스 산맥의 모습. 산티아고 시내 어디서나 볼수 있단다. 
또하나 재밌는 건 우리가 탄 버스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것이다. 여학생들은 우리를 보자 손을 흔들고 자기들끼리 킥킥거리기 바빴다. 가이드말로는 동양인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광경이 흔치 않기 때문이란다. 하긴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오기가 그리 쉽지 않은 땅아닌가.



"여느 남미국가와 다르다"

대사관 자료를 보면 칠레인구의 55%가 혼혈로 나와있어 여기도 메스티조가 많겠구나 했는데 실제론 메스티조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혼혈이 스페인+독일 등 유럽인들간의 혼혈을 의미하는 거란다. 
스페인 점령초기엔 인디오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학살,씨를 말렸고 남은 사람들은 한곳에 정착시켜 놨다고 한다. 깔끔한 첫인상 뒤엔 이런 비극의 역사가 숨어있었다. 
어쨌든 이곳사람들은 자기네 나라를 '남미의 유럽'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국민소득은 4천불 안팎이지만 농업국가의 국민소득은 공업국가의 2배의 가치가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하던데 어떻게 해서 그런 계산법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산티아고 시내는 적어도 유럽같은 분위기가 나긴 했다.(공항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엔 빈민가가 즐비했지만...) 도착 다음날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웨이터가 칠레의 인상을 묻자 "과일이 유명한 나라"등등 칭찬의 말을 해줬더니 "칠레는 다른 남미국가들과 다르다"며 으쓱해한다.

모네다궁

경제부 차관인터뷰를 위해 시내 모네다궁으로 향했다. 
세계 최초로 선거에 의해 세워진 사회주의 정권의 대통령이었던 살바드로 아옌데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73년 피노체트의 군부 쿠테다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됐고 아옌데는 총을 들고 저항하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전사했다. 모네다궁 옆 건물 꼭대기엔 쿠데타 당시 모네다궁을 공격하기 위해 뚫린 포대의 흔적도 있고 정부군이 쏜 총탄자욱도 남아있다. 
피노체트는 89년 물러났지만 아직도 칠레사람들은 군부정권의 공포정치의 상처를 안고 산다. 칠레사람들이 말수가 많지 않은 것도 그런 탓이라고 어느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선입견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찾기 힘들다. 

상종가 치는 한국차 

칠레를 방문한 한국인들은 누구나 거리의 한국차 물결에 놀란다. 현대,기아,대우차 등 없는차가 없다. 특히 현대 소나타EF는 고급호텔에서 쓰는 전용차다. 거의 30%는 되는 것 같다. 한국산 가전제품도 시장점유율 수위라는데 직접 목격하진 못했다. 그러나 내년되면 EU차들이 무관세로 들어오고 아르헨,브라질 차들도 무관세 혜택을 입는다는데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해온 한국차들이 칠레 거리에서 점차 줄어드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근데 워낙 칠레인구가 작아(1500만명) 큰 시장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우리와 칠레가 협상중인 FTA(자유무역협정)을 두고 하는 말인데 쟁점은 우리의 농산물 시장을 열고 대신 우리가 칠레에 공산품을 무관세로 수출하는 문제다. 우리 농업계는 칠레산 사과,배가 들어오면 과수농가가 큰 피해를 본다며 반대하고 있고 업계는 중남미 수출교두보로 삼기위해 칠레와 FTA협정을 꼭 체결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쪽은 농민,농업,농촌문제를 분리시켜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우리나라 봉제산업이 사양산업이 됐듯, 농업도 사양산업임을 과감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농촌과 농민의 문제는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 않지만 수출로 먹고 살아온 우리 처지를 생각해보면 딱히 그른 말도 아니다. 통상환경이 점차 나빠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니까.

칠레의 샘물 안데스 산맥 

칠레의 기후는 매우 쾌적하다. 일교차가 크긴 하지만 1년중 구름한점 없이 맑은 날이 300일이 넘는단다. 대신 강우량이 부족한데 부족한 물은 안데스 산맥이 보충해준다. 날씨가 맑으면 안데스산맥의 얼음이 녹으면서 그 물이 600만 산티아고 시민을 먹여 살린단다.

칠레과일이 경쟁력있는 것도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칠레는 남위 18~56도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라 온대에서 한대까지 온갖 기후대가 걸쳐 있어 각기 다른 기후대에서 다양한 과일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경쟁력이 있다. 

칠레는 남반구에 위치한 환경때문에 주로 인구가 몰려있는 북반구의 휴경기때 과일을 공급할 수 있는 조건도 갖춘 세계 2위의 과일수출국이다. 실제 칠레의 농산물시장을 방문해 보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후지사과랑 맛이 꼭같은 사과들이 한개 100원도 안되는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FTA가 체결되 무관세로 칠레산 사과들이 들어오면 우리 과수농가들은 얼마 못가 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차원의 대비책을 단단히 마련하지 않으면 또한차례 파동이 불어닥칠 것 같다. 

세계적 휴양지인 비나 델 마르

산티아고에서 2시간여 남쪽으로 가면 'vina del mar'라는 세계적인 해변휴양지가 있다. 매년 2월 칠레 가요제가 이곳 해변에서 열리는데 남미에서 두번째로 큰 문화행사란다. 이곳엔 대통령 별장도 보인다. 그러나 공교롭게 날씨도 안좋고 제철이 아닌 탓에 명성에 걸맞는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식당에서 점심으로 해물탕 비슷한 걸 먹었는데(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걸쭉한 국물에 칠레 고추소스를 넣어 먹으니 얼큰한데 우리 매운탕과 맛이 비슷하다. 생선과 해물이 잔뜩 들어있어 입맛을 돋군다. 해변가에는 외지인들의 별장이 즐비한데 계단식 별장에서 레일을 이용해 올라가는 케이블카인 프리쿨라도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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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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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5. 30. 10:35
티후아나에서 1박하고 다음날 멕시코시티로 향했다. 
티후아나 1층 바에서 데낄라 폭탄주로 한국인의 술문화를 과시한 주책도 부렸지만 별소동없이 잤다.
수출공단을 제외하면 티후아나는 구릉지역 판자집들이 즐비한 지저분한 도시다. 누군가 샌디에이고와 풀색깔도 다르다더니 그말이 정말 실감났다. 같은 사막기후지만 샌디에이고는 인공으로 물공급을 하고 이쪽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때문.

멕시코시티로 가기위해 공항에 갔는데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티후아나로 국경을 통과했을때 입국절차를 밟지 않은 것.입국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아 사실상 불법월경상태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샌디에이고에서 육로도 멕시코로 넘어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육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대부분 주말유흥을 즐기기 위해 넘어갔다 올뿐 멕시코로 넘어가 살것도 아니니까.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경우는 양쪽 당국이 신경을 써도 미국에서 멕시코로 건너가는 경우는 별로 신경을 안쓰는 것이다. 탈북자는 많아도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중국인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랴부랴 입국신고서를 작성해 문제는 해결됐다.

에어로 멕시코 비행기를 탔는데 과달라하라를 거쳐 멕시코시티까지 가는데 4시간30분이나 걸렸다. 실제 비행시간은 세시간반인데 1시간 시차가 났기 때문. 멕시코 북서부에서 멕시코 중부로 가는데 이정도니... 멕시코도 적지않은 땅덩어리다. 
멕시코 스튜디어스는 짙은 화장을 한 뚱보아줌마였다. 대한항공의 야리야리한 스튜디어스들만 보다 보니 눈이 적응하지 못하는 '시차현상'도 있었지만...
무뚝뚝한 표정으로 안전벨트 착용, 산소마스크 쓰는법등을 시연했는데 좀체 웃음이 없었다.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 짐을 찾고 나서니 벌서 어둠이 깔렸다. 마중나온 가이드가 멕시코 시티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했다. 재밌는게 멕시코 지하철은 고무바퀴란다. 그래서 기차빵꾸나 지각했다는 말이 멕시코에서 통한다는데 정말인지는 모르겠다.
폴크스바겐이 눈에 많이 띠었다. 가이드 말로는 문맹률이 25%나 돼 지하철표시를 그림으로 해놨단다. 또 가이드의 설명을 옮겨보면; 

멕시코 시티는 원래 호수였는데 스페인이 정복후 매립을 했단다. 빈부격차가 심해 세계 10대부호중 2명이 멕시코 출신이라고 한다. 남미지역에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브라질, 아르헨, 페루 등에서 멕시코로 이주하는 한인들이 최근 2~3년사이에 급증했다고... 이중 90%가 옷장사를 한다고 한다. 
이들중 상당수는 중국산 의류를 갖고 들어오다가 세관에서 적발돼 낭패를 본다고 한다. 이유인 즉슨 멕시코 섬유산업 육성정책때문에 중국산 의류는 수입규제품목이란다. 교민수가 4~5만명에 불과해 아직 코리아타운은 형성되지 않았다고...

멕시코에는 2대 조폭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전날 묵었던 티후아나를 기반으로 하는 아레노스 형제들이고 또하나는 중부 국경도시인 몬터레이를 근거지로 하는 ~~~형제들이란다.(한국대사관 관계자 전언)
멕시코는 메스티조 인구가 70%가 넘는 메스티조 국가다. 과거에는 백인들과 메스티조간에 암묵적인 구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스페인도 인디오 문화도 다 멕시코 문화라고 간주한단다. 메스티조는 코르테스의 아즈떼카 정복과정서 생겨나는데 역사자료에 따르면 아즈테카 멸망이후 30여년만에 메스티조가 50%에 달했다고 한다. 
스페인 침략자들이 인디오 여성들을 얼마나 유린했는지
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멕시코에도 폭탄주가 있다는데 수부마린(잠수함)이라고 부른단다. 

피라미드앞의 기념품행상 

떼우띠우아깐이라는 멕시코판 피라밋을 관광했다. 떼우띠우아깐은 아즈떼까 제국이전 시대의 국가인데 멸망원인은 아직도 수수께끼라고 한다. 높이 67m에 이르는 피라미드에 올라갔다. (자세한 내용은 이성형씨의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때'를 참조바람)
재밌는 것은 피라미드 입구에서 기념품 행상들이 관광객들을 붙잡고 호객행위를 하는데 이때 부른 가격이 피라미드를 보고 내려왔을때 가격의 4배나 된다는 것. 따라서 흥정은 피라밋을 다녀와서 하는게 요령이다.
한 상인은 일행중 한명에게 흑요석으로 된 데드마스크를 80달러에 불렀다가 결국 20달러만 받고 팔기도 했다.
별도로 기념품 전문점이 있긴 하지만 별로 물건에 하자가 없으니 흥정만 잘하면 싼 가격에 괜찮은 기념품을 살수 있으니 무조건 피하지는 말것.

기념품점옆에 애니깽(멕시코 선인장)이 꽃을 피웠다. 꽃이라 하지만 높이 4~5m나 되는 나무줄기 같은게 선인장 가운데서 솟아있다. 애니깽은 과거 멕시코인에게 매우 유용한 식물이었다. 애니깽즙으론 데낄라를 만들고 선인장 가시와 잎은 그대로 바늘과 실이 된다. 잎의 섬유소가 워낙 질겨 동아줄 재료로도 쓰인다는 것은 여러분도 아실 것. 애니깽 즙맛을 봤는데 달큼한 맛이 났다.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보는 멕시코거리 풍경은 티후아나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내 중심부는 그런데로 볼만 하지만 외곽에 들어찬 판자집 군락은 멕시코 어딜가나 볼 수 있는 풍광이다. 멕시코의 집들은 도색을 하지 않는게 특징이다. 마치 평양거리에 있는 아파트를 연상케 했다. 대사관 관계자들의 말은 돈이 없어 그렇다는데 이런 식으로 살다가 나중에 돈이 생기면 그때가서 페인트칠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단다. 

마리아치 공연은 못봤지만 

멕시코 시티도착 첫날밤 만찬을 한뒤 민속공연 일정이 있었는데 마침 휴일이라 안한단다. 내심 말로만 듣던 마리아치의 감미로운 음악을 기대했는데... 마리아치란 챙이 엄청나게 긴 모자를 쓰고 망토를 걸친 전통복장의 음악밴드를 말한다. 기타와 첼로(인지 더블베이스인지)를 들고 나와 민속음악을 들려준다. 
대신 재즈바에 가서 멕시코 밴드의 공연을 감상했다. 밴드들도 클래식기타(아마 나일론줄 대신 쇠줄을 감은 )와 일렉트릭 베이스기타, 조그만 기타, 올갠 등을 들고 나와 연주하는데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좋았다. 귀에 익은 끼엔세라, 베사메무초, 라밤바 등의 노래도 불렀다. 
그 좁은 바에 중년의 여성들이 진을 치고 기타반주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우리 중년 아줌마들이 드나드는 카바레와는 분위기가 틀리다. 그런대로 열심히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드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멕시코의 반중감정 

역시 대사관 관계자의 설명. 멕시코는 유일하게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란다. 중국에 대해 별로 감정이 좋지 않다는데 2001년 중국의 WTO가입때 마지막까지 반대했던 나라가 멕시코란다. 유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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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今村 2012.11.22 1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멕시코인은 스페인인에게 정복되어, 점령되어, 말을 빼앗겨, 수도를 완전히 파괴되어, 종교를 빼앗겨, 민족말살되었지만, 스페인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전무.

  2. 늘파만 2013.02.19 0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멕시코의 독립은 멕시코 원주민이 한것이 아니고 멕시코를 점령하고 살던그리고 이주한 스페인들이 인적차별과 과도한 세금에 대한 분리독립입니다. 독립한 사람들도 종교나 말이나 모두 스페인 그자체입니다.스페인끼리 전쟁하여 멕시코사는 사람이 승리한것이지 .원래 멕시코원주민의 독립은 아닙니다.

    • 今村 2013.03.22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느 나라에서도 좋아요. 식민지통치된 나라가, 하고 있었던 나라를 계속해서 원망하는 예, 사죄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예는 한국을 제외해서 전무.

2002. 5. 30. 10:34
마낄라도라
 
국경도시 티후아나내 엘 플로리도 공단에는 한국 업체들이 눈에 많이 띤다. 삼성을 견학했다. 엘 플로리도 공단은 마낄라도라라는 제도(우리말로는 임가공 수출자유지역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로 운영되는 공단. 
멕시코가 60년대까지 수입대체산업화전략을 채택 경제건설을 해왔으나 별로 성과가 없자 미국시장 수출을 통해 부를 축적하자는 경제개발전략을 시험하게 된다. 마낄라도라는 이때 생긴 것인데 외국의 자본과 기술에 멕시코의 싼 노동력을 결합시켜 상품을 만들어 미국시장에 팔자는 전략이다. 
이런 발상이 지난 94년 NAFTA(북미자유협정)에 멕시코가 가입하게 된 배경이 됐다. 체결국간 관세와 비관세장벽을 모두 없애자는 나프타의 취지에 따라 마낄라도라가 입주업체에 부여하던 각종 혜택도 사라지게 됐다.

직장탁아소 

삼성공장은 컴퓨터,TV모니터 등을 생산하고 있는데 공장내에 번듯하게 잘 지은 직장탁아소가 있어 반가왔다.
삼성측 설명은 회사가 건물과 시설을 조성하면 정부기관에서 제반운영비를 부담한단다. 의료시설도 회사가 시설을 지으면 운영은 국가기관이 담당한단다. 사회주의 전통이 남긴 산물일 것이다. 박통때 '마산자유수출지역'생각이 났다. 글쎄 잘은 모르지만 마산 자유수출지역에 입주한 외국업체들중 직장탁아소를 운영한 곳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어린 여공들 동원해서 결혼할때쯤 되면 내보내는 전형적인 착취구조였지 않았을까. 
외국기업입장에선 이런 의료,탁아 등 기업복지가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국가정책상 기업복지가 외국인투자유치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차원에서 고안해낸게 이런 절충부담 방식아닐까. 
'더디가도 노동자의 최소권리는 보장한다'는 멕시코식 방식은 잠깐동안 여러생각이 들게했다. '포퓰리즘때문에 경제를 망쳤다'는 중남미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여담) 유난히 많이 눈에 띠는 성조기 

테러사태의 영향인지 LA,샌디에이고 등 가는 곳마다 성조기들이 눈에 많이 띠었다. 첨엔 관공서겠거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일반 공장, 빌라 등에도 성조기가 엄청나게 많이 걸려있다. 가이드의 말로는 지금은 많이 줄어든 거란다. 9.11직후에는 차량에 붙이는 성조기는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였다고 한다. 가이드의 아들도 테러사태 나자 군대에 가겠다고 하더란다.
총영사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한인 2세들이 미국 국가를 공공장소에서 따라부르기 시작한 것도 9.11테러사태를 전후해서란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엄청난 충격이 미국사회에 가해진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때문에 애꿎은 외국인들이 미국비행기 탈때 고생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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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5. 30. 10:28

5월18일부터 27일까지 9박10일간 중남미지역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무척 긴 여정이었지만 짧은 기간에 3개국(중간 기착지인 LA와 시카고 제외)을 돌려니 실제로 각국별 체류기간은 길지 않아 중남미를 보고 왔노라라는 말을 하기가 쑥쓰러울 정도지만 겉핥기로나마 다녀본 소감을 간단히 옮기겠습니다.

 
미국행 비행기 타기

18일 인천공항서 KAL비행기를 탔습니다. 테러사태이후 미국행 비행기 타기가 어렵다고 듣긴 했지만 X-레이 통과때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갈아신으라 소리를 들으니 황당하더군요. 다른 때 같으면 검사대를 통과한뒤 대충하던 몸수색도 두세번에 걸쳐 꼼꼼하게 받았습니다.
미국행 비행기 타려면 3시간전에 공항에 나오라던데...그말이 실감나더군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시카고행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탈때는 더 황당했습니다. 티케팅도 하기전에 우리일행(24명)중 3명을 임의로 선정해 짐검사를 했고...티케팅에 앞서 항공사 직원들이 여권과 비행기표를 검사한뒤 짐에 대해 심문을 합니다. "짐을 누가 쌌느냐","혹시 낯선 사람으로부터 부탁받은 짐이 있냐","짐을 계속 들고 다녔느냐","무기처럼 생긴게 있느냐","전자제품은 어떤게 있느냐" 등등...
일행 한사람이 답변을 잘못하니까 나머지 전원이 다 항공사의 자체 검색대로 데려갔습니다. X-레이기로 일일이 짐검사를 한뒤 다시 짐을 끌러보고, 노트북도 열어보라고 하고... 한바탕 절차가 끝난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게이트와 비행기 탑승구사이에서 다시 신발을 벗고, 짐검사와 몸수색을 한번 더 받아야 했습니다. 9.11테러사태 이후 엉뚱한 화풀이를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더군요. 


사막위의 바벨탑(?)
 

LA다녀오신분이 많겠지만 전 머리털 나고 첨이라 모든 게 신기했습니다. 18일 인천공항서 오후 3시 비행기로 출발, 다음날 오전 9시50분쯤 도착했습니다. 
LA라.. 글쎄 제겐 특별한 인연이 없는 곳입니다. 92년 LA폭동때 한인들이 시련을 겪었다는 정도로 기억하는 곳인데..
생각보다 LA는 큰 도시더군요. 시내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시고속도로를 타고 공항에서 1시간이상 달려야 본도심이 나오는 곳. 마침 날이 흐리더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이드말에 의하면 이곳의 연간 강우량은 5~8인치 정도에 불과하답니다. 비가 반가운 곳인데 그도 그럴 것이 LA는 순전히 사막위에 이뤄진 도시라는 군요.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노다지 붐이 일었을 때 사람들이 꾀이기 시작해 도시가 이뤄졌는데 물이 없어 6백km 
나 떨어진 후버댐에서 지하관을 통해 물을 끌어와 시내 전역에 물을 공급한답니다. LA에서 볼 수 있는 나무나 수풀 하나하나가 모두 지하수로 자란다는군요. 가이드는 이 설명을 하면서 LA에서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그러더군요. 실제 LA의 빌딩들은 모래지반위에서 지어진 것이라 정밀한 공법이 아니면 잦은 지진에 벌써 허물어졌겠죠.

 

유니버설 스튜디오

공항에서 1시간 못미쳐 떨어진 곳에 유니버설 스튜디오란 곳이 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라는 미국 유수의 영화사가 실제 영화촬영을 하던 곳이라는데 브루스 브라더스가 출연,흥겨운 노래와 춤을 추는 무대, 캐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워터월드'의 세트장에서 벌이는 영화재연쇼, 영화 '아폴로 13호'의 귀환장이었던 바다세트,'쥐라기공원 세트장'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트램이란 관광열차를 타고 세트장주변을 다니며 어떤 영화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는지 등등을 설명해주고 가끔씩 세트장안으로 들어가 공포체험을 맛보기도 한다. 어느곳에선 킹콩이 나타나기도 하고 차옆으로 죠스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튀어오르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곳이다.
'터미네이터'를 상영하는 입체영화관은 실제 사람이 무대에서 영화의 한장면을 연기하다 스크린속으로 들어가면 3차원의 영상이 정면에서 좌우 측면으로 걸친 넓은 스크린에서 벌어지는데 다이나믹하다.객석도 흔들거리고 ...

LA의 교통규칙 한가지. LA 자동차 전용도로엔 전용차선이 있는데 2명이상 승차한 차량만 가능하다. 만약 나홀로차량이 전용차선으로 침입할 경우 271달러곱하기 4배의 벌금을 내야 한다. 왜 4배인지에 대해 가이드는 열심히 설명했는데 기억이 잘 안난다. 
LA의 기후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편이다. 습도가 거의 없는 사막기후이기 때문에 낮에도 그늘에 있으면 더운줄 모른다. 언제 가더라도 긴팔옷이 필요하다. 캘리포니아주 는 공공건물 전체가 금연이다. 어느 식당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100달러를 내야 하고 흡연객 주변에 있는 사람이 담배로 피해봤다며 식당을 상대로 손배소를 청구하면 가게문을 닫아야할 정도의 벌금을 물게 된다. 내겐 무서운 곳이다.


코리안 타운

저녁에 한국총영사의 초청으로 코리안타운내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환담을 나눴다. 코리안 타운의 형성과정은 대충 아시겠지만 특히 60~70년대 서독광부로 갔던 한인들이 돈을 벌어 이쪽에 투자를 많이 하면서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코리안 타운은 2세들이 주류사회로 진출했다가 뭔가 안맞고 좌절할 경우 코리안타운으로 귀환하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주류사회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생각은 하지 않고 수틀리면 다시 돌아와 안주해 버린다고... 이런 이유들때문에 한인사회의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자립도가 악화된다고 한다. IMF때 엄청난 타격을 입은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고...
반면 일본인들은 관계에 많이 진출한다고 한다. 
한인사회는 극우가 많다. 이북5도민회, 해병전우회 등의 세력이 강하고 따라서 DJ정부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우리 가이드 함선생도 DJ정부에 대해 "역대 최악의 정부"라고 혹평했다. 글쎄...

이곳에서도 북한에서 열리는 아리랑축전에 일부 조직이 돼 몇차례 방문했던 모양이다. 시민권자들은 바로 갈 수 있고 영주권자들은 방북신고서를 대사관에 제출하면 된다고 한다. 현지 한국언론에 방북기가 많이 소개됐다고...
LA에 30명규모의 친북단체가 있다고...
얼마전 중앙일보가 홍걸씨와 도피중인 최성규총경이 LA에서 골프를 쳤다는 오보를 내 파문이 있었지만 LA한인들의 골프열정은 대단하다고 한다. 인구로는 LA전체의 5%남짓하지만 골프장 이용객의 60%가 한인들이란다. 


샌디에이고 

LA에서 두시간여 달리면 캘리포니아주의 최남단 도시 샌디에이고에 닿는다. 이곳에서 멕시코 국경까지는 30여분 안팎거리. 샌디에이고에서는 범고래쇼로 유명한 해양공원 씨월드를 관람했다.
샌디에이고는 멕시코와 국경도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술값이 싼 멕시코로 넘어가 놀다 돌아온다고. 마치 홍콩-심천과 유사하다. 돈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홍콩주민들도 주말을 심천에 가서 즐기는 경우가 많다. 
불과 30여분거리지만 멕시코와 샌디에이고는 환경이 천지차이다. 어떤 사람말로는 땅색깔, 풀색깔도 다르다고 한다. 국력차이다. 샌디에이고도 사막기후여서 후버댐에서 물을 끌어다 수목을 인공적으로 키우지만 멕시코는 그럴만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멕시코 티후아나에 사무실을 둔 한국상사원들도 거처는 샌디에이고에 둔다고 한다. 

왕래가 빈번한 국경도시간에 벌어지는 재밌는 현상도 많다. 멕시코는 18세이상이면 술을 살 수 있지만 미국(아마 캘리포니아의 경우인 것 같다)은 21세이하에게는 술을 팔지 않기 때문에 티후아나로 놀러갔다 술먹고 돌아오는 미성년자(21세이하)들이 국경서 음주혐의로 체포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또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려는 불법월경자들이 미국 당국의 체포를 피해 고속도로로 뛰어드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때 운전자들이 실수로 이들을 치어 숨지게 해도 사고사실만 신고하면 처벌받지 않는다고 한다. 

미-멕시코 국경을 보며 탈북자 문제가 생각났다. 미국은 불법월경 체류한 멕시코인들을 멕시코로 돌려보내면서 한사람당 5000달러씩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한국의 김창준상원의원이 발의한 법안인데 이유인 즉슨 멕시코인 1명이 불법체류할 경우 미국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1년에 25000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그것도 이익이라고 한다. 어떤 계산법인지는 모르겠지만...미국은 절대 멕시코인을 난민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국도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발견되면 북한으로 송환한다. 물론 북한은 인권이 무시되는 사회주의 국가고 송환된 탈북자들을 처벌하기 때문에 똑같이 놓고 비교할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지만, 북한도 요즘은 탈북자들을 거의 처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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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8. 20. 18:54
2000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 취재를 함께 간 YTN김호성 선배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던 글입니다. (살짝 퍼왔음)
평양 2000년 8월

 

첫째날(8/15)

순안-4.25문화회관-개선문-천리마동상-옥류관-옥류교옆-대동문-민속박물관-조선중앙역사박물관-대동강호텔, 해방산호텔-국립극장-당창건기념관-고려호텔

1250 김포출발

1300 이륙

1354 평양공항 착륙

1700 단체상봉

2000 인민문화궁전만찬


고려항공. IL62, 폭이 좁고 긴 형체. 냉방 탓인지 물이 천장에서 뚝뚝 떨어짐.

녹색 시트, 좌석은 좁은편. 기내 음악은 북 민요. 물수건, 금강산 샘물. 마분지 같은 지질로 만든 위생봉투.

기내가 좁습니다. 기자동지 여러분 함축해서 앉아주십시오.

167cm 수줍은 미소가 눈에 띄는 승무원 윤경희 22세.

위생실. 안내문구-담배를 피우지 마시오. 박띠를 매시오.

서울-평양 541km, 고도 7,500m 비행소요시간 1시간.

평양 기온 26도. 착륙 직전 아나운스멘트

꿈결에도 그립던 혈육과의 뜨거운 상봉을 바랍니다.

장재언 북적위원장, 최원식 평양시민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평양공항, 100여명 정도의 환영인파. 착륙 전 소나기가 내린 듯 활주로가 젖어있었음. 평양 시내 진입 전까지는 시민들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방북단 차량을 쳐다보는 듯 싶더니 평양 시내로 들어가자 간혹 시민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

판문점 통일각 가는 길목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대형 벽화가 순안 평양비행장을 벗어나자 마자 거대하게 버티고 있었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슬로건.

평양 시내 진입-조선은 하나다.

4.25문화회관-tv송신탑-평내면옥-개선문-김일성경기장-개선영화관-서평양백화점-모란봉-천리마동상-조선혁명박물관-학생소년궁전-평양대극장-만수대예술극장-1백화점-인민대학습당-김일성광장-로동신문-고려호텔

고려호텔-창광거리에 위치. 쌍둥이 빌딩으로 건립. 45층. 높이 140m, 총건평 8만4천평방미터.

1985년부터 영업 개시. 500객실. 호텔 앞 창광식당, 릉라식당 등.

평양 시내, 미용 리발, 체신소 등 표지판, 늘 화면을 통해 보던 교통 안내원.

안내원 라운석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

지난번 장관급회담 참석 경험. 남측에 대해 잘 꿰고 있는 듯한 말투. 사회주의에서 관료들이란 나무의 그늘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늘이 커야 인민들이 잘 쉴 수 있다. 그런데 권위주의에 빠지면 오히려 잎을 갉아먹는 기생충이 된다, 라며 우리식 사회주의에 대해 강조. 아버님 고향이 평양이라고 말하자 관심을 가짐.

단체상봉-당초 예상했던 이선행 이송자 부부는 야마가 되지 못함. 따로 떨어져 상봉한데다가 이선행 할아버지 예상외로 덤덤.

이선행 할아버지의 부인 홍계옥 할머니 왈, 위대한 장군님의 배려로 이렇개 만나게 해주시니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취재팀들 당황. 이리저리 뛰며 취재. 갑자기 상봉장 입구 쪽에 통곡소리가 들려옴.

김장녀 할머니 딸과의 상봉 감격적.

두 모녀가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에서 자꾸 아내와 다희의 모습이 오버랩. 눈물이 쏟아져 나와 취재에 애를 먹음. 딸의 통곡, 어머니의 눈물.


홀몸으로 만난 딸

[앵커멘트]

“어머니 보고싶었어요. 왜 이제 오셨어요.”

딸의 통곡과 어머니의 오열.

반세기만에 만난 모녀의 상봉은 평양 고려호텔에 마련된 단체상봉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리포트원고]

[싱크-이렇게 만날 줄 믿었어요, 내가. 왜 인제왔어요, 그리웠어요]

기억할 수 없는 어머니의 얼굴, 그리고 아가의 모습으로만 남아있는 딸에 대한 기억.

모녀는 마침내 바닥으로 쓰러져 부둥켜않고 오열했습니다.

1946년, 네 살난 딸을 황해도 친정에 두고 남편과 춘천으로 온 뒤 전쟁이 터져 생이별을 한 일흔아홉살 김장녀 할머니는 딸의 울부짖음에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싱크-어머니와 딸]

기억에도 없는 어머니의 얼굴이지만 살아 생전 소원이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었다는 딸 앞에 

김 할머니는 미안하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는 말만 되풀이 했고 딸은 이어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을 키워준 삼촌마저 세상을 떴다며 눈물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헤어질 당시 딸과 함께 두고 온 아들의 안부를 묻자 오빠는 전쟁 중에 죽었다며 딸은 또 한차례 오열했고 순간, 김할머니는 망연자실했습니다.

함께 월남한 남편마저 15년 전에 세상은 뜬 뒤 홀몸으로 살아온 김할머니에게

딸은 54년만에 새롭게 찾은 혈육이었습니다.

[크로징]

부둥켜 안고 통곡을 한들 이산의 아픔이 온전하게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분단에서 화해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이들에게 오늘밤은 평생을 다바쳐도 아깝지 않은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인민문화궁전 만찬. 사회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 천장이 높고 웅장한 분위기, 그러나 왠지 한편으로 썰렁한.

낯익은 북측 인사들.  평양신문 박형철 기자를 조우. 정상회담 준비접촉 당시 만났던 친구, 인터뷰를 하자고 했으나, 안된다고 거절.

테이블에 함께한 민경련 인사 한명, 노동신문 김흥교 선생-정상회담 준비접촉 당시 북측 단장, 그외에 북적 관계자 한명. 김선생, 특유의 북한 어투로 계속 술을 권함. 술을 마셔야 기사가 더 잘 써진다니, 기자선생이 술을 못마신다느니, 등등 하며 갈구길래, 세상에 팔불출 팔불출 해야 술 잘마신다고 자랑하는 자만큼 더 한 팔불출이 없는 거라고 우리 아버님이 말씀하시더라고 했더니 조금 조용해짐

평양은 어두웠다. 울란바타르가 생각남.

프레스센타에 네스카페 커피 비치.

새벽 1시 취침


둘쨋날(8/16)

고려호텔-대동강선착장-대동강-양각섬(양각도호텔)-쑥섬-만경대 선착장-하선-만경대-청춘거리(체육촌)-보통강역-낙원거리-서평양호텔-4.25문화관-김일성 종합대학-단군릉-고려호텔


오전 7시 기상.

호텔 2층 식당에서 아침 식사

국밥, 장조림, 룡성 배단물, 신덕샘물, 케익, 자두, 호박무침, 더덕, 김,

개별 상봉 취재-이환일, 한재일, 채성신, 최경길, 최태현, 최성국

‘아내는 말이 없었다’ 리포트 제작.

침묵보다 더 진한 감정표현은 없다. 통곡보다 더 큰 침묵의 진실.

“위대한 장군님의 배려로 이렇게 만나게 됐다.” 라고 말할 때 보다 아무 말 없었을 때 전달되는 진실의 의미.

최태현 할아버지 아들-뭔가 못마땅한 표정, 기자들이 들어가자 선물을 꺼내러 가는데, 아버지 좀 가만 앉아 있으라우요, 선물을 건네자, 시계는 무슨, 저도 있어요.

최성록 할아버지 딸-50년만에 만난 것은 모두 장군님의 덕분이 아니게겠어요. 통일이 되는 그날을 위해.....딸의 말을 들은 최 할아버지는 그래, 나는 남측이니까, 김대중 대통령께 감사하고.....85년도 지학순 주교의 수화의 이산가족 이란 표현이 떠오름.


아내는 말이 없었다


[앵커멘트]

상봉에 맺힌 사연은 저마다 드라마같은 내용이지만 그 가운데 부부 상봉은 당사자들의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반세기 동안 쌓인 그리움의 표현은 그러나 통곡이나 오열이 아닌 침묵이었습니다.

[리포트 원고]

[effect-최태현 할아버지 상봉 현장]

아내는 말이없었습니다.

반세기 만에 만난 아내,

곱고 희던 섬섬옥수는 어느새 거칠게 변했고 검은 머리는 파뿌리가 됐습니다.

열네살 때 결혼해 꼬마신랑 대접을 받으며 신혼을 보낸 예순아홉살 최태현 할아버지.

두 살 더 많은 누님같던 아내는 50년 세월에 옛모습을 잃었습니다.

눈물 대신 흐르는 침묵,

최할아버지는 재회를 기약할 수 없었던지 선물로 가져온 시계를 아내의 손목에 채워주며

건전지까지 건넸습니다.

[최태현 싱크-이거 하나끼우면 1년반 내지 2년은 가]

두명의 딸과 함께 아내를 만난 최성록 할아버지는 자식들 앞에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 애써 가족들의 안부를 거듭 묻기만 합니다.

[최성록 싱크-그래, 누가 지금 살아있다구? 아! 그랬어...]

그러나 반세기만에 아내의 손을 잡고 반지를 끼워줄 때 최할아버지는 더 이상 슬픔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최성록 싱크-이 손좀 봐, 당신한테 뭐라 말을 못하겠어. 내가 죄인이야, 나를 용서해줘요!]

[크로징]

이번 방문단 가운데 아내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 열일곱명.

남편의 탄식보다 더 큰 아내의 침묵으로 이곳 고려호텔은 단체상봉 이후 또한차례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점심 식사후 오후 3시 대동강. 170m 주체탑. 150m 높이의 분수.

평양이 고향인 이산가족 할아버지 할머니 선상에서 옛고향 기억하며 환담하는 모습.

임선근 할아버지- 순안이 고향인데 평양공업 실습학교에 다녔다. 해방전엔 대동교하나와 철교만이 유일한 다리였는데 그 때 당시 일부가 결빙돼 있었다. 6/25때 끊기는 바람에 도강에 어려움 많았다. 겨울철에 도강할 때 어려움 많았다. 12월 5일 이었는데 일부는 해빙이 되기도 해서 정말 곤란했다. 평양은 정말 많이 변했는데 그저 변하지 않은 것은 만수대 언덕과 칠성문 정도인 것 같다.

대동강에서 바라보는 평양 시가지는 고려호텔과 유경호텔을 대척점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도시라는 인상을 받음. 김동욱왈, 그들만의 도시.

1시간 반을 유람한 뒤 만경대 구역에 도착.광복거리에서 청춘거리로.

광복거리는 지난 89년에 진행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건설된 계획도시.

놀이시설인 만경대 유희장은 모든 기구가 올 스톱. 안내원 왈, 목요점검있는 날이어서 가동이 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 우리 청룡열차 같은 기구의 레일 위에 멈춰선 기차. 멈춘 성장?

만경대가 있는 광복거리를 거쳐 체육시설이 밀집돼 있는 청춘거리. 1988년 9월3일 준공.

청춘거리는 26만 7천 평방미터에 축구경기장과 9개의 종목별 실내경기관, 피로회복관,체육인식당, 호텔이 밀집.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엄마가 어린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해 건축했다는 설명을 듣고 보니, 아주 그럴싸했음. 

김주석 생가를 지나쳐 체육시설이 밀집돼 있는 거리를 거쳐 단군릉.

단군릉-평양 체류일정의 둘쨋날 참관행사 하이라이트인 단군릉 참관은 이산가족들에게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민족 단일성을 강조하기 위한 북측의 배려에서 마련된 행사인 듯.

평양시내에서 승용차로 40여분 떨어진 평양시 강동군 문홍리 대박산 기슭에 위치한 단군릉은 북측이 단일민족 강조를 위해 역사적인 문화재 발굴한 사실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명소.

이미 단군 관련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남측 학술단체 등과도 교류를 하고 있다고 북측 관리가 전했다. 참관에 앞서 기자와 동행한 리유선 민화협 연구위원은 단군에 대한 역사적인 재평가와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는 점을 수차례 강조.  그는 일제시대 민족말살정책 차원에서 단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금기시하는 풍토로 인해 단군에 대한 평가가 절하됐다고 설명.

북측은 1993년 단군릉발굴에 착수, 단군과 단군의 부인 유골을 발굴했으며 이를 정밀한 측정을 통해 5011전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 북측은 당시의 유골 일부가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원인으로 대박산 기슭 일대가 화석화 지대이면서 가열성 광물층이 남아있는 지층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설.

45헥타아르의 면적에 마련된 단군릉 초입에 들어서면 높이가 70m에 이르는 단군릉이 우뚝 솟아있다.

초입에 버티고 좌우 다섯 개씩 서있는 문기둥은 고인돌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돌조각상으로 제작된 것으로  최고 10m 높이에서부터 최저 1.5m높이까지 모두 열 개가 자리잡고 있다.

문기둥을 통과하면 석인상 구역이 나타나는데 치산치수와 지방사업 등을 관장하는 8명의 신하들이 버티고 있고 이들을 지나치면 네명의 단군 아들이 릉을 지키고 있다. 릉에서 내려오는 순서대로 왼쪽편에 맏아들 부루와 셋째아들 부우, 오른쪽 편으로 둘째아들 부소와 넷째아들 부여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석인상 구역을 통과하면 무덤구역이 나타난다.

단군릉과 그 앞에 상돌, 분향로가 자리잡고 있고, 릉앞의 좌우 양쪽에 두 개의 망주석과 석등 네모서리에 네 개의 범상과 청동검탑이 세워져 있다.

릉은 고유한 조선식 건축슬과 전통적인 조선식돌계단 무덤형식에 맞게 9개의 돌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무덤 안에는 단군부부의 유골이 발굴된 부분을 연이어서 복원한 상태로 유리관안에 보존돼 있다. 유리관 안에 아르곤 가스를 주입해 보존상태를 유지한다는 설명.

돌아오는 길 김일성 광장에 학생들 가득 모여 메스게임 연습하는 모습.

안내원 왈, 얘들이 저거 한번하면 키가 부쩍 커요. 운동도 되고 아주 좋아요. 현상을 바라보는 이 격차!

평양의 거리 특징-인적이 뜸한 듯 싶다가 길목을 돌아서면,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식. 개인은 없고 집단만 존재하는 느낌. totalism. 물론 대동강 변의 한가한 시민들의 모습, 공원 벤취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평양은 말고 깨끗함과 썰렁함과 규격화된 도시라는 인상.

저녁8시 조선중앙 tv 시청하는 고려호텔 매대 점원. 눈물을 글썽이며 tv시청하는 모습. 점원 김금련 인터뷰-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어서 빨리 통일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임수경 언니도 생각나구......

저녁식사 후 일 종료 11시. 호텔 지하 가라오케. 민경련 참사 라운석, 한인덕 등.

휘파람, 반갑습니다 말고 평양에서 부르는 비틀즈, can't take my eyes off you, 그리고 아침이슬. 평양에서 미 제국주의자들의 노래를! 그 어떤 정치적 통제도 문화의 유입을 막을 수 없다.

새벽 1시 헤어지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북측 안내원에게 서의동 한 마디-빨리 통일합시다.

라운석 참사-이제 평양에선 kbs보다 ytn 더 알아줘요. 지난번 장관급회담 때 전금진 단장이 ytn 틀어봐라 했어요. 아주 좋습디다. 띄워 줄려구 하는 멘트였으나, 어찌됐든, 지난 장관급회담 당시 신라호텔에서 ytn을 보긴 본 모양.

유영규 마사지 후 일성-안마사에 직업에 대한 사회적 status 인식이 없더라. 한의사 정도로 인식. 요는, 비교의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셋쨋날(8/17)

호텔-주체사상탑-청년중앙회관 춘향전 참관-옥류관


오전 일정 개별상봉 팀과 주체사상탑 참관팀. 서의동과 참관팀에 합류.

주체사상탑-1982년 4월15일 제막. 170m. 위부분 목화높이만 20m. 김일성 주석 탄생 70돌 맞아 건립. 70년을 날 수로 계산해 25,550개 화강석으로 제막. 단수는 앞뒷면 18개씩, 좌우 17개씩해서 일흔계단은 일흔살 상징. 입구에 각국으로부터 온 기념석을 붙여놓음.

안내원 진옥순(45. 주체사상탑, 개선문 관리 강사)

모래지층이어서 탑 건립에는 적당치 않았으나 김 주석께서 장소를 정해주신 뒤 땅을 파보니 거대한 암반층이 나왔다며, 천길 땅 속도 훤히 들여다보니는 위인이라고 설명. 주체!!!??

엘리베이터 ㅈ-ㄱ-1-2-3-4-5-6-7-8로 층 표시. ㅈ은 지하, ㄱ은 기단을 의미한다고.

전망대에 오르자 평양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옴.

리포트.


눈에 밟히는 고향

[앵커멘트]

기다려온 반세기를 생각할 때, 순간 같은 기간에 불과했지만 이번 방문일정 동안 북측은 방문단에게 평양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방문단들은 평양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승리거리를 비롯해 신시가지인 광복거리와 청춘거리를 둘러봤고 대동강을 유람하며 향수에 젖기도 했습니다. 

[리포트원고]

반세기 전 대동강을 건널 때 평양의 모습은 지금 몰라보게 변했지만 실향의 세월을 달랜

향수는 여전했습니다.

대동강철교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평양 중심부를 흐르는 대동강엔 그동안 옥류교와 능라교 등 네 개의 다리가 더 들어섰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평양.

숲으로 뒤덮인 모란봉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이지만 곳곳에 들어선 고층건물로 평양은 이미 옛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뿔처럼 솟아오른 324m의 105층 유경호텔과 방문단 숙소인 고려호텔은 먼발치 어느 곳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초고층 건물로 이정표 구실을 합니다.

낙하산처럼 펼쳐진 능라도경기장과 대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인민대학습당,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방문단 환송연 장소인 옥류관의 청기와 지붕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인터뷰/진옥순(관광안내)-저기 저곳이 양의 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양각도라고 부르지요....]

[effect-(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넣어주십시요)17일 오후 대동강 유람선에서 평양이 고향인 3명이 서서 여기가 어디, 저기가 어디 하는 모습]

눈에 밟히는 오늘의 평양을 바라보며 이산가족들은 흩어짐의 세월이 그만큼 길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차례 절감합니다.

[크로징]

옛고향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평양 곳곳을 둘러본 방문단은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남과북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졌음을 실감했습니다.  


관람 후 방명록을 내놓으며 한 줄 쓰라고 권하길래 앞부분을 뒤적여봤더니, 박지원 장관의 친필도 있었음.

-어릴적 듣던 아버님의 고향을 직접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돼 무척 고맙고 반갑습니다. 서울과 평양이 이웃처럼 왔다갔다 할 수 있게되길 빕니다,라고 씀.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개인 안내역을 맡은 민화협 리유선 연구위원이 질문.

아버님이 평양 분이신가 보죠?

-네, 순창이시죠. 아버님이 두고 오신 고향은 아들이 먼저 찾아오는 불효를 범한 셈이에요,라고 답변.

또 다른 질문-남한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인은? 김대중 주필 아닌가요? 하길래.

영양력있는 신문의 주필이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요즘엔 꼭 그렇지도 않아요. 특히 최근 남북 관계 분위기에서는 김 주필 같은 사람들은 비난도 많이 받지요.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사람이 지금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그래, 그것 봐라, 하며 박수를 칠 일이 아니라, 남한 사회에는 소위 반통일 세력이라 해서 하루 아침에 몰아쳐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역시 환영받지 못한다는 다양성의 인정이에요. 그렇구만요,라고 답변하며 고개를 끄덕.

오후 청년중앙회관에서 춘향전 관람.

극장 안에 들어서자 북한 특유의 박수로 방문단을 환영. 형식적이라기보다는 마음이 우러나는 환영으로 느껴짐. 극장 정면 중앙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자’ 좌우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곁에 계신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을 결사 옹위하자’

무대커튼-초록색 나무와 그 위로 은하수, 별이 그려져 있는 괜찮은 분위기의 그림.

춘향전은 김일성 훈장을 수상했다는 국립민족예술단의 공연.

무대와 객석 사이에 연주단.

사랑사랑 내사랑아로 오프닝이 흐르며 커다란 푸른색 대형부채가 우에서 좌로 흘러 나오며 붉은 글씨로 춘향전. 제1장 광한루의 봄. 1장 마감 무렵 '빈부귀천 원쑤로다'.

유영구 리포트-정서는 하나.

김원찬 할아버지 소감-50년 전 흥남에서 이런 가극을 봤거든, 견우와 직녀였는데 옛날 생각난다.

공연관람 후 환송만찬장으로 이동 중 버스 안에서 라 선생이 말을 걸어옴.

-선생 어떻습디까?

아주 잘봤습니다. 개인적으로 공연 좋아하게든요

-아 그래요,

춘향전이 사실 사랑이야기지만 그 안에 다 있잖아요. 계급 타파같은 메시지도 있고

-그렇지요. 그 안에 모든 거이 다 있지요.(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발언을 하면 어린아이 같은 눈빛으로 사람을 대한다)

러시아 문학에 푹 빠졌던 적 있었거든요

-그래요?

특히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제 꿈이 정년 이후 말년에 그의 작품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겁니다.

-어떤 작품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가난한 사람들, 백야...

-아! 백야도 읽으셨군요

라 선생은 백야를 읽었다는 말에 거의 동지애를 느끼는 표정으로 반가워했다.

옥류관으로 가는 길에 당 탑을 지나침. 망치와 붓, 낫을 움켜쥐고 있는 형상을 한 석상.

조선인민의 모든 승리의조직자이며 향도자인 조선노동당 만세라는 구호.

당이 지배하는 시스템의 일단을 엿봄.

아파트 촌을 지나침. 아파트 옥상에 ‘우리 식대로 살아가자’

대동강 공급소란 간판에는 탁아소 유치소라는 간판.

금릉동굴 통과. 동굴 위가 모란봉이라는 설명.

옥류관에서의 만찬. 평양시 인민위원회 량만길 위원장 주최.

본관이 1960년대에 지어진 부속건물까지 모두 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대형 식당.

냉면 15원. 7불 정도.

평양냉면의 맛보다는 최경길 할아버지의 말이 뇌리에 박힘.

-마누라가 내일이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아. 앞으로 서신교환이라도 했음 좋겠어.

저녁 리포트 마감 뒤 지하 가라오케에서 장 총재 주관하는 술자리.

노래하는 사람들이 2불씩 내자, 여 접대원 왈, ‘여기는 아직 이런 체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 이건 아주 중요한 인식이다. ‘아직’이란 표현에 담긴, 내일의 변화 가능성!

울란바타르의 모습이 오버랩. 사회주의 그 이후 10년을 눈으로 목격한 울란바타르 기억이 새삼스러움. 울란바타르 시가지 벽에 써있던 낙서 ‘Nirvana kurt cobain 1967-1994’ 같은 젊은 목소리가 평양 시가지 어느 벽 모퉁이에 낙서로 등장하기 시작하면 이 곳도 변화하기 시작하리라.  american graffiti 같은. 변화에 대한 무조건 적인 긍정은 아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지니지 못한 숱한 장점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문제는 ‘우리식’ 운운하는 도그마 인데, 하긴 과거 우리도 ‘한국적 민주주의’라며 세상과는 담 쌓고 살았었으니까. 

아랫 것들 일지 감치들 도망가고, 북측 인사들도 사라지고, 이선재 선배, 박정규 본부장과 최후의 3인으로 남음. 그동안 소극적으로 기자들은 대한 것에 대한  박 본부장의 사과.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 조용히 지내고 싶었으나 늘 그렇듯 세상은, 개인을 허락하지 않음.

 

네쨋날(8/18)


고려호텔-평양 공항-서울

오전 8시 프레스센타 집결. 서울로 가져갈 선물로 술 몇 병 삼. 복무원이 거스름돈을 주는데 자투리를 영광담배로 주길래 안피면 어떻게요 했더니, 그냥, 기념으로 간직하세요.

호텔2층에서 아침 식사.

여 종업원에게 동무와 동지의 차이점이 뭐냐고 질문.

-그저 흔히들 동무라고 부르지요. 우리같은 사람들은 동지라는 말 거의 안써요. 동지라는 것은 뭐랄까, 동지,라고 일단 말을 하면 어금니 양쪽이 뻐근해지는 느낌이 전해올 정도로 뭔가 비장하고 그렇거든요, 그럴 때 쓰는 호칭이라 우리같은 사람들은 거의 쓸 경우가 없지요. 

10시10분부터 호텔로비에서 마지막 작별 상봉. 헤어짐을 앞두고 또다시 눈물바다. 고려호텔 직원들도 슬픔을 참지 못하는 듯 눈물. 차창을 사이에 둔 또 다른 이별. 내 이제 너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치매에 걸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던 최경길 할아버지의 아내, 말없이 그저 한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음. 아들-아부지가 가지 않으면 어무이가 저렇게까지 되갔어?

이 마르지 않는 눈물들

헤어지고, 만나고, 또 다시 헤어지고!

세상에는 이렇게 헤어지기 위한 만남도 있습니다, 라는 표현을 써야겠다고 생각.

평양공항.

북측 안내원들과의 이별. 얼굴이 익숙해진 탓인지 이젠 서로들 자유롭게 농담까지.

북측 이산가족들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음.

활주로에서의 기념촬영.

기내 인터뷰-이재경 할아버지-이젠 마음의 장벽을 허물 때가 왔어.

김포도착.

KE818 PYONG YANG라는 사인이 그리 낯설지 않게 눈에 들어옴.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느낀 내 젊은 날, 그 이후, 내 눈과 귀를 타고 내 머리로 들어와 걸러지고 걸러진 뒤 마침내 내 가슴에 들어온, 그러나 평소에 선뜻 떠오르지 않던 헤어짐과 만남에 관한 그 모오든 문장을 지난 나흘 간 모두 소진해버린 뒤.....세상이 쬐끔, 기우뚱해 보이다.

사족-이산가족 취재의 현장을 서술어로 스케치하는데 개인의 역량이 미치지 못함을  

솔직히 고백해야겠음. 실제로 평양 취재 당시 방송스타일 구어체의 기사 작성에 몹시

애를 먹음. 명사형으로 뚝뚝 끊기기만 하는 이 목메어오는 감성! 기자의 기본 덕목인

냉철한 이성의 끈을 가능한 한 놓지 않으려 했으나 주체할 수 없는 감성의 벽앞에서

번번히 주저앉았음. 이산의 한이 풀리게 되는 날 쉽게 쉽게 기사도 쓰여질 수 있게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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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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