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치기를 처음 본 것은 2004년 겨울 무렵 일본 도쿄의 유라쿠쵸(有樂町)의 영화가에 있는 시네콰논에서였다. 그 전에 가끔씩 만나던 일본신문 기자가 내게 "박치기란 영화가 나왔는데 재일조선인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길래 관심이 갔다. 당시엔 연예계에 진출한 재일조선인들에 대해 흥미를 갖던 때다. 가수 소닌이 성선임이란 동포(조총련계 고교까지 나왔다고 함)였고 일본 방송계의 대모격인 와다아키코(和田明子)가 김정일의 처 고영희와 단짝동무였고, 올리비아 핫세와 결혼했던 후세 아키라(2005년 홍백에서 ‘소년이여"라는 노래를 불렀음), 심지어 기무라 타쿠야도 한국계라는 구전을 접하면서 일본사회에서 ’재일‘의 자취를 더듬던 때였다. 도쿄대 강상중교수의 자전적 에세이인 ’재일(在日)‘도 그즈음 읽던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