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아베, 유엔서 위안부 문제 쏙 뺀 채 ‘여성 인권’ 강조

서의동 2013. 9. 27. 17:22

ㆍ총회 연설… “분쟁지역 성폭력 방지 노력”

ㆍ한·일 외교장관 회담도 냉랭… 양국 경색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유엔총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분쟁지역 성폭력을 막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거부해 아베 정권이 한·일관계 개선 의지가 없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아베 총리는 26일 오후(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일본은) 여성이 빛을 발하는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며 전 세계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21세기인 지금도 분쟁지역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이 계속되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일본은 이러한 범죄행위를 막는 데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여성의 사회진출과 보건의료를 지원하기 위해 향후 3년간 30억달러 이상의 공적개발원조(ODA)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6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 | AP연합뉴스

아베 총리가 유엔총회 연설에서 여성 인권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차원이지만, 대표적인 전시 여성 성폭력 사례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생략해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로 이날 뉴욕에서 열린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 간의 회담에서도 일본 측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윤 장관은 “동북아 번영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 일본 정부가 과거 문제를 치유하려는 용기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달라”고 모두발언에서 강조한 뒤 “과거사 피해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가 하루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기시다 외상은 ‘이미 법적으로 해결됐다’며 배상과 사죄 등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시다 외상은 한술 더 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한국 사법부의 판결과 관련해 “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면서 일본 기업의 패소가 확정되면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유출사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취한 수산물 수입규제 조치를 조기에 풀어달라고 요청하며 ‘맞불’을 놨다. 기시다 외상은 회담에서 독도 문제까지 꺼내 양국이 각기 영유권을 주장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당초 예정된 30분을 넘겨 50분간 진행된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과거사·영토 문제를 둘러싼 현안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기는커녕 일본이 오히려 ‘맞불공세’로 나오면서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는 데 실패했다. 앞으로도 양국 간 외교 협의는 한국이 위안부 문제 해결 및 역사인식을 거론하면 일본은 징용자 배상판결 건을 제기하는 공방이 될 것으로 보여 경색 국면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의 외교소식통은 “아베 정권은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고 최근 기류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