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침을 열며]아베와 박근혜의 '경제 3년 성적표'

서의동 2016. 2. 15. 19:41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아베노믹스’가 한계에 봉착한 듯 보인다. 금융완화·재정확대·구조개혁이라는 ‘3개의 화살’을 3년 내내 쏘아댔지만 세계 경제 불안의 여파로 닛케이지수가 15000선이 붕괴되고, 엔화는 치솟고 있다. 

 

그런데 이달초 며칠간 체류하면서 접한 현지 분위기는 이런 소식들과 ‘온도차’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한국에는 없는 활기마저 느껴질 정도다. 우선 TV에서 전직(轉職)광고가 두드러지게 늘어났다. 인터넷을 통해 적성평가를 작성해 등록해두면 적합한 기업을 매칭시켜주는 서비스가 발달하면서 회사를 옮기는데 따른 부담이 한결 줄었다. “언제 몇시에 어느 기업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스마트폰 알림에 맞춰 면접을 보러가면 된다.
“요즘 젊은 사원들이 툭하면 직장을 옮겨서 골치”(일본 대형IT회사 간부)라는 푸념마저 나올 정도다. ‘종신고용’이라는 일본의 전통 이미지와 다른 풍경이기도 하지만 바꿔 말하면 취업기회가 그만큼 넓어진 셈이다. 


일본 면세점에 몰린 외국관광객들


도쿄의 거리는 밀려드는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이케부쿠로 서쪽 출구에서는 아예 일본말을 듣기가 어려울 정도다. 긴자의 대형 백화점들을 점령한 채 ‘바쿠가이(暴買い·닥치는 대로 쇼핑)’를 즐기는 건 물론이거니와 최근에는 쇼핑 뿐 아니라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 이들이 늘어난다. 한 민영방송은 무려 12만6000엔(135만원)을 내고 얼굴제모와 눈썹교정 시술을 받은 중국여성의 사례를 내보내기도 했다.

 

아베노믹스는 처음부터 ‘핸디캡’을 안고 있었고, ‘오래 못갈 것’이라는 혹평 속에서 출발했다. 인구가 줄어드는데다 고령화가 심각한 디플레이션형 경제구조에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겠다는 구상은 ‘무모한 도전’으로 치부될 정도였다. 하지만 아베 총리와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아랑곳없이 ‘3개의 화살’을 연신 쏘아댔다. 집권 3년이 지난 지금 아베노믹스에 대한 일본인들의 체감도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일관성 만큼은 후한 점수를 받는다. 엔화값을 떨어뜨리는 정책의 영향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외국인 관광객은 국민의 소비력 감소를 메우는 직접적인 경제효과 뿐 아니라 경제심리를 호전시키는 효과도 상당하다. 

 

아베 총리의 집요함도 눈여겨 볼 점이다. 생각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자 지난달에는 “경기 선순환의 실현은 중소기업까지 임금이 오를지에 달려 있다. 하청업체의 거래 조건을 철저히 개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연례행사처럼 경제단체장들을 불러 모아 임금인상을 압박하는 풍경도 집권 3년 내내 똑같다.   

 

일본 정부는 최근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같은 임금을 지급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을 법제화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비정규직이 40%에 달하면서 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구조를 깨기 위한 비상책이다. 대기업 사원의 ‘고임금’만 문제시하는 한국 정부의 단선적 접근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실현 가능성 여부는 잠지 제쳐두고 생각해 보자. 총리가 저임금 노동자의 월급봉투를 챙기기 위해 끊임없이 궁리하는 모습에 국민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 것인가를. 대학교수인 일본의 한 지인은 “일본 경제가 너무도 오랜 침체상태를 벗어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대담한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는 아베 정권에 국민은 어찌됐건 기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정치·외교면에서 강경보수의 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음에도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집권한 박근혜 정부의 3년은 참담하다. 성적표만이 아니라 태도가 더 문제다.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자주 바뀔 뿐 아니라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국민행복시대’나 ‘100% 대한민국’ 같은 큰 구호는 아예 제쳐두더라도 구체적인 정책에서 ‘골대를 너무 자주 옮긴다’. 경제민주화 정책은 실종된지 오래고, 대기업·부유층 증세는 거부하면서도 담뱃값과 소주값 인상으로 서민들 호주머니만 털었다. 누리과정을 국가예산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가 교육청에 떠넘겼고, 65세 노인 전원에게 기초연금을 주겠다는 공약도 파기했다. 

 

그중에서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낮추는데 기여했던 개성공단을 갑작스레 중단해 한반도를 졸지에 분쟁지역으로 만든 것은 ‘압권’이다. 대외신인도 하락도 피하기 어려워졌다. ‘어떤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던 2013년 남북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이나, 입주기업이 철수할 여유도 주지 않고 서둘러 중단선언을 한 것은 할말을 잃게 한다. 124개 입주업체가 별 영향력없는 중소기업들이니 어떻게든 좋다는 생각이었을까. 부의 변덕으로 사업을 접고 자산마저 잃게 된 입주기업들은 지금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