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욱 선임기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심정이었을까. 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지난 9일 오후 8시 출구조사가 발표된 직후부터 정의당에 ‘뒤늦은’ 후원이 쇄도했다.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정의당 후원계좌에 7300여명이 3억원을 냈다. 5명의 주요 후보가 경쟁하며 다당제 색채를 짙게 풍겼던 이번 대선에서 정의당 후보 심상정(58)은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TV토론에서 정의당의 정책목표에 대한 논리 정연하고 선명한 설명이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유세장은 청년들의 열광에 휩싸였다. 선거 중반을 넘기면서 10% 득표율도 기대됐지만 막판 ‘사표론’으로 최종득표율은 6.2%에 그쳤다. 방송사의 출구조사 직후 낙담한 표정이 그를 지지한 많은 유권자들의 가슴에 멍울을 남겼다.
선거에서 2주일이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심상정은 출구조사 직후 후원 행렬에 대해 “아마 막판까지 고민하다가 나를 안 찍은 분들이 후원에 많이 참여한 것 같다”며 웃었다. 선거 패배의 후유증은 찾기 어려웠고, 특유의 활기가 넘쳤다. 그는 “이번 선거는 처음으로 정의당의 비전과 정책이 국민에게 가감 없이 전달된 선거”라며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지명 등 유리천장을 과감하게 뚫는 인사가 감동적이었다”면서 “촛불시민들이 정권교체를 통해 만든 개혁정부라는 시대사적 의미가 있는 만큼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 기여하기 위해 협력과 견제를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심상정은 정의당은 최저임금 인상, 청년실업 해소, 비정규직 해소 등 ‘삶의 질’ 과제와 4대강 사업, 미세먼지, 원전 등 국민 생명과 안전에 관한 의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사드 배치 결정과정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하고, 4대강에 대해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해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표론의 가위 눌림’을 극복한 선거
- 이번 선거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대선 과정을 복기해보면 이번 선거는 시대의 변곡점이자, 정치인 심상정에게도 전환점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정의당의 비전과 정책이 국민에게 가감 없이 전달됐다. 당 평가 토론회에서 이번 선거의 화두는 지지율 몇퍼센트가 아니라 ‘왓 이즈 더 저스티스 파티(정의당은 무엇인가)’였다고 했다. 나와 정의당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한 선거였다. 이런 복기과정을 거쳐 우리 당의 진로,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설정이 이뤄지라고 본다.”
- 진보정당 사상 최고의 득표율이긴 하지만 선거과정에서 높아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저보다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아쉬움이 더 컸던 것 같다. 9일 저녁 출구조사 이후부터 그 다음날 오전 9시, 후원계좌 폐쇄 직전까지 7338명이 3억원에 가까운 후원금을 보내주셨다. (득표율이 기대에 못 미친) 출구조사를 보고 국민들 생각에도 아쉬움이 남았나 보다. 막판까지 고민하다가 절 안 찍으신 분들이 후원해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 대선을 완주한 건 처음인데, 현행 선거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선거 막판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사표론’이 돌면서 당원들과 지지자들조차 위축됐다. 사표론은 승자독식 선거와 양당체제의 산물이다. 출마하자마자 받은 질문이 ‘완주할 거냐’였고, 그 질문이 끝까지 계속됐다. 진보 정당 후부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 ‘완주 여부’였다는 것은 우리 정치문화에서 사표론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번 완주를 통해 ‘사표론의 가위 눌림’에서 벗어났다고 본다. 정의당 같은 소수정당에 사표론은 어떤 의미에서 조건이기 때문에 이를 뛰어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숙제다.”
- 역량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거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5년 뒤에도 ‘가위 눌림’이 반복될 것이다.
“그동안에는 다당제가 되면 정당 난립으로 국민의 뜻이 왜곡될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었지만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다당제가 민심에 훨씬 더 부합하는 결과라는 걸 국민들이 알게 됐다. 오히려 양당체제야말로 수구보수 세력을 키운 온실이었다고 본다. 다원적 질서를 보장하는 독일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같은 선거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정권을 바꿨으니, 앞으로는 국회를 바꿔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신뢰가 간다
심상정 의원 사무실 @서의동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열흘이 좀 넘었는데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문 대통령이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혁도 사람의 문제인데, (인사를 보면) 신뢰가 간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 강경화 외교부 장관까지 유리천장을 과감하게 뚫는 인사가 굉장히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아직 종합적인 평가는 이르고, 장차관 인사가 마무리되면 1차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선거과정에서 TV토론을 보면 더불어민주당과의 가장 큰 차이가 사회복지 확충을 위한 재원확보 문제였다. 그런 점에서 경제팀 인사를 어떻게 평가하나.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모든 정책이 같을 수 없다. 민주당은 오늘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내일을 이야기한다. 오늘 속에서 내일을 열어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고 견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팀 인사를 보면 재벌개혁이나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의지를 반영한 인사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것이 우리 당이 추구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필수조건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문재인 대통령이 거침없고 스마트하게 일을 풀어간다는 평가가 많다.
“후보로서는 준비가 덜 됐던 거 같았는데 대통령 준비는 잘된 것 같다(웃음). 지금은‘최악의 전임자’ 효과도 있고, 국민들이 허락한 허니문 기간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지금처럼 긴장감을 갖고 국민, 야당과 적극 대화하면 허니문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비정규직 해소,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검찰개혁 등을 잘 추진한다면 큰 지지를 유지할 것이라고 본다.”
-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방안과 관련해 ‘자회사 설립’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법 규정을 피하기 위해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이 늘어나는 등의 편법이 많았다. 이번 정규직화 추진은 ‘편법적인 해결’로 끝나선 안되고 (단번에) 100%가 안되더라도 100%로 가는 도상의 해법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 다양한 과제들과도 종합해 추진해야 한다.”
- 어제 발표된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지명자의 경우 이중국적, 위장전입이 논란이 될 듯하다.
“그동안 그런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언급해온 점을 잊지 않아서 인사 발표 때 자진해서 밝힌 것 같다. 인사청문회에서 지명자의 능력과 핸디캡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다.”
- 국정현안이 산적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사드) 배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 것으로 보나.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이 동맹국 간의 프로세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국정조사가 우선 실시돼야 한다는 게 정의당의 입장이다. 그 과정에서 포괄적인 안보영향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사드 배치를 절차상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사드에 대한 포괄적인 국익 평가가 소홀해질 가능성이 있다. 진정한 동맹관계는 국익과 민주적 절차가 존중되는 토대위에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드배치에 대해 우리의 국익을 평가하는 민주적 절차가 보장돼야 한다.”
- 국정조사를 추진한다면 보수세력에서는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미치지 것이라며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 문제는 사드 배치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한·미동맹의 원칙을 확인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긴장이 발생한다고 해도)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한 긴장은 필요하다. 수구보수 세력들은 ‘미국의 뜻에 따르고 미국에 매달리는 것’을 한·미동맹으로 착각해온 측면이 있다. 진정한 동맹은, 양국의 국익과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태도 위에 서야 공고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익에 어긋나면 당당히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 남북관계 현안으로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관광 재개 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은 헝클어진 주변국 관계를 궤도에 올리는 데 집중해야 할 때이다. 다만, 경제협력은 북핵과 별도로 통치권 차원에서 길을 열어가야 한다. 사안별로 접근하기보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제도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선 때도 언급했지만 2010년 중국과 대만은 ‘경제협력기본협정’ 체결이후 몇년만에 경제교류나 협력이 정치에 영향받지 않을 정도로 됐다. 우리도 ‘정경분리’ 원칙이 강조돼 왔지만 늘 긴장이 조성되면 경협이 단절되거나 악용되면서 기업들이 많은 피해를 봤다. 그런 점에서 남북경제동반자협정 같은 걸 체결해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을 풀어가야 한다. ‘전 정부가 폐쇄했으니 우리는 복원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경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보장할 수 있는 제도와 합의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9년을 돌이켜 보면 진상을 규명하거나 적폐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해야 할 과제는 뭔가.
“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로서는 다 시급할 것이다(웃음). 정의당으로서 본다면 국민의 삶이 가장 중요한 만큼 ‘청년실업’ ‘최저임금’ ‘비정규직 문제’가 최우선이다. 그리고 4대강, 미세먼지, 원자력발전 등 국민 생명과 안전에 관한 의제에 집중할 생각이다.”
- 4대강 문제에 대한 해법은 뭔가.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생태파괴, 식수오염 등의 원인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니 청문회가 불가피하다. 4대강을 살리려면‘이명박근혜 청문회’가 있어야 한다. 그 전에 보 철거가 우선이고, 수문 개방이라도 해야 한다. 낙동강 식수오염은 화학용품으로 정화시키고 있는데 한계에 달했다고 본다.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인 총트리할로메탄의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
■선거법 개정 논의 하반기에 본격화돼야
@권호욱 선임기자
-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에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
“우선 국정운영의 청사진이 나와야 하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들이 정권교체를 통해 만든 개혁정부라는 시대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시민이 성공하려면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개혁 추진에 협조하겠다. 야당이니 무조건 반대의견을 내 반사이익을 챙기는 관성대로 하면 안된다. 협력도 비판도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해나갈 생각이다.”
-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개헌 방침을 거론했다. 어느 시기가 적절하고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보는가.
“5당 대표와 회담한 자리에서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안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정의당으로서는 시기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권력구조 개편은 국회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인데 국회가 개혁돼야 한다. 그래서 개헌 이전에 선거법 개정에 대한 합의·처리가 전제돼야 한다. 선거법 개정에 대한 전제 없는 권력구조 개편은 대국민 사기다. (그렇다면 선거법 개정은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올 하반기에는 논의가 본격화돼야 하고 늦어도 선거법 개정안을 개헌안과 동시에 (국회)처리해야 한다. 현재의 개헌특위는 선거제도 개편을 다루고 있지 않다. 대통령이 이에 대해 확실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 5·18 기념식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어땠나.
“역사를 다시 찾은 느낌에 가슴이 뭉클했다. 5·18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한복판에 정중히 모실 때가 됐다.”
- 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는 등 굉장한 ‘허니문’ 상태다. 문재인 정부에 당부할 이야기가 있나.
“과거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보다 정치세력 간의 타협을 중심에 두었다. 그 결과 국민의 뜻과 괴리된 결과물들이 나왔다. 국민들과의 관계를 우선으로 두고, 국회가 따라가지 못하면 국민들이 국회를 개혁할 수 있도록, 좀 길게 정치를 바꿔나가는 관점으로 국정에 임했으면 좋겠다. 그게 촛불민심의 핵심이라고 본다. 과거에는 민주당이 새누리당 핑계를 대면서 개혁 추진에 미흡한 모습을 보였다. 국회와의 소통도 최선을 다하되 기본적으로는 국민들의 요구에 중심을 둔다면 국민들이 걸림돌을 치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남편 멋있었다”
- 선거과정에서 남편(이승배)이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는 모습이 신선했다.
“한국 상황에서 쉽지 않은 광경일 거다. 나도 이번 과정에서 남편에게 감동했고, ‘우리 남편 멋있다’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에 남편이나 아이가 부담스러울까봐 어떤 요청도 한 적이 없었는데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하다. 남편이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늘 궁금했지만, 조심스러워 물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확인한 셈이다.”
심상정은 대선기간 중 청년세대들에게 특히 높은 지지를 받았다. 서울 금호고의 경우 투표일 하루 전인 지난 8일 모의투표를 실시한 결과 심상정이 1위였다.
- 대선기간 중 가장 감격했던 순간은.
“우리 당은 선거 때마다 생존에 허덕였고, 독립운동하는 기분이었는데 이번 선거를 계기로 생존을 다투는 단계는 넘어서지 않았나 싶다. 감성을 불러일으킬 만한 기획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청년들이 유세장마다 몰려 안아달라고 하고, 울기도 했다. 더 아래 세대로 내려갈수록 (정의당에 대한) 공감이 더 큰 것 같다.5·18 기념식 때 광주에 갔더니 초등학생들이 따라와 환호하길래 ‘나를 아느냐’고 물으니 TV토론회를 봤다고 하더라. 가족들이 전부 모여 토론을 지켜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청년세대의 열망을 정의당이 잘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 당이 앞으로 어떻게 청년들과 공감을 키워나갈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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