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인삼 제조기업인 KT&G의 주주총회가 열리던 2006년 3월17일 대전 대덕구의 KT&G 인력개발원 강당은 아침부터 긴장감에 휩싸였다. 보안요원들이 대거 배치됐고, 노조원들의 피켓시위도 벌어졌다. AP, 로이터, 블룸버그 등 외신들이 대거 출동해 세계적인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Carl Celian Icahn·82)의 한국 진출을 취재했다. 주총에서 아이칸 측이 사외이사 1명을 당선시켜 이사회 입성에 성공하자 국내 기업들은 전율했다. 아이칸은 한해 전인 2005년 9월부터 KT&G 지분 5.69%를 매입한 뒤 경영진에게 보유자산 처분과 배당확대 등을 요구했다. 10개월간의 분쟁 끝에 아이칸은 주식 700만주를 매각해 44%의 주가수익률에 배당금 등을 합해 1500억원의 차익을 챙겨 떠났다.
칼 아이칸은 1980년대 정크본드 투자를 통해 거부가 됐고, 1985년 TWA항공의 적대적 인수에 성공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그가 인수했거나 경영권 참여를 시도한 기업 중에는 타임워너, GM, 야후 등 글로벌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휴대폰 제조업체 모토롤라의 지분을 매입한 뒤 경영진을 압박해 기업을 쪼갰고, 모토롤라의 휴대폰 사업부문이 2011년 구글로 넘어가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아이칸은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 지분을 사들인 뒤 경영권 분쟁을 벌여 주가가 오르면 시세차익을 챙기는 수법으로 돈을 벌었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집요하게 공략해 끝장을 보기 때문에 ‘상어’로 불리기도 한다. 아이칸이 기업의 투명성과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그보다는 단기차익만 챙긴다는 비판이 더 많다.
아이칸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들어 ‘부당거래 의혹’이라는 새로운 비판에 휩싸였다. 미국 상무부가 수입산 철강에 관세를 매기겠다는 보고서를 공개하기 직전에 중장비 제조업체 매니토웍 주식 90여만주를 처분했기 때문이다. 수입 철강 의존도가 높은 이 기업의 주가는 이후 급락을 거듭했다. 월가에서는 ‘절친’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핵심정보를 미리 입수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아이칸을 긍정해야 할 이유를 더 찾기 어려워졌다. (2018년 3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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