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7
일본의 한반도 외교는 이율배반적이다. 한국에는 미래로 가자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과거를 추궁한다. 일본과 북한은 2002년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를 서로 인정하고 청산한 다음 국교수립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이 취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했고, 피해자 13명 중 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자’는 북·일 평양선언의 취지가 무색하게 납치문제에 집착했고, 일본으로 일시 귀국한 생존자 5명도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납치문제가 복잡하게 꼬인 이유는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의 처지에 설 모처럼의 기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나바시 요이치의 표현을 빌면 이런 처지의 바뀜에서 일본인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듯 하다. ‘우리도 한국이나 중국만큼 당하고 살았다. 납치문제가 그 증거다.’
납치 피해자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을 입증하는 일본 정부의 공식기록만큼이나 찾기 어렵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은 부인하려 들면서 납치문제에는 집요하게 매달렸다. 일본은 자신의 이율배반을 이렇게 변명할지 모른다. 한국이 제기하는 과거사는 전전(戰前)이고 일본인 납치는 최근(1970~1980년대)의 일이니 엄연히 다르다고. 하지만 미수교 상태의 북·일 간에 ‘전전’ ‘전후’ 구분은 의미가 없다.
패전 이후 일본은 참회할 겨를도 없이 미국이 짜놓은 전후 질서에 몸을 맡겼다. 패전 직후 ‘1억 총참회’ 구호는 흐지부지됐고, 일본은 ‘1억 총망각’ 상태로 매진했다. 이국의 전장에서 돌아온 동네 아저씨와 형들은 입을 꾹 다문 채 ‘가해자 일본’의 기억을 봉인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이 금기어가 된 걸 보면, 당시 일본의 ‘공기’가 허용하지 않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매년 ‘종전기념일’로 불리는 8월15일을 전후로 일본 방송들은 대체로 원폭 피해와 오키나와 지상전의 참상, 도쿄대공습의 기억 등을 극화한 드라마들을 방영한다. 일본 학교에서 역사수업의 진도는 러일전쟁에서 멈춘다. ‘피해자 일본’은 극적으로 기억되지만 ‘가해자 일본’은 ‘사실이지만 굳이 알 필요는 없다’는 수준에서 공유된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처럼 ‘가해자 일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들은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가해자로서의 성찰이 부족한 ‘겉핥기’ 역사교육을 받아왔으니 일본인들이 한국의 주장에 놀라거나 저항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일본은 미국이 부여한 전후 평화체제에 안주하며 동아시아 냉전체제를 남의 일로 여겨왔다. 목소리를 내야 할 진보세력은 냉전체제라는 ‘온실’에 갇혀 야성(野性)을 잃었다. 일본의 부조리와 위선이 도마에 오른 것은 한국의 민주화 이후다. 군사정권에 의해 봉인된 ‘가해자 일본’의 민낯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벗겨졌다. 물론 ‘고노담화’와 ‘무라야마담화’ 같은 반성이 있었고,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한 보상 노력도 있었지만 가해자 의식이 희박한 일본인들에게 ‘육화(肉化)’되지 못했다. 그 기간 보수우익은 일본군 위안부와 난징대학살을 축소·부인하면서 ‘아름다운 일본론(論)’으로 일본인들을 파고들었다. ‘아름다운 일본’론은 “우리 일본인들이 그런 잔인한 짓을 했을 리 없다”는 부인(否認)심리를 부풀렸다.
그렇다면 ‘납치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일본이 스스로의 잘못을 충분히 성찰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서 무수한 타 국민을 유린한 전쟁범죄의 천근 같은 무게감을 헤아려 보지 못했으니 수십명 납치에도 그토록 놀라 버리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최근 납치문제 진전이 없더라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말을 바꿨지만, 일본 국민들이 ‘피해자’ 지위를 순순히 내놓을지도 의문이다. 과거사에 대한 교육과 반성을 생략한 대가가 일본 외교의 발목을 죄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갈등의 주된 전장은 경제분야지만 역사전쟁도 격화될 것이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아베 정권이지 일본인이 아니다. 이 와중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평화의 소녀상’ 전시에 나선 일본인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으려면 보다 치밀해질 필요가 있다. 영화 <주전장>에서 ‘위안부 20만명’ 문제를 추적한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의 입을 빌려 한국에 주의를 당부한다. ‘입증할 수 없다면, 숫자를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과거사 문제에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제기하다 한국에 호의를 품은 일본인들까지 등을 돌린 사례를 종종 봐왔다. 일본이 꼼짝 못하도록 주장을 벼리고 거품도 빼야 한다. 무딘 칼로 전장에 나가는 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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