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 '혐한 증폭기' 일본 와이드쇼(2019.12.7)

서의동 2020. 1. 31. 21:24

일본 와이드쇼 경향신문DB

일본에서 오전 또는 낮 시간대 TV를 켜면 어느 채널이건 예외 없이 ‘정보프로그램’을 방영한다. 사회자 외에 5명 안팎의 패널이 등장해 뉴스와 예능, 생활정보 등에 대해 제작진이 마련한 리포트를 보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테마가 다양하고 방송시간도 2시간이 넘기 때문에 ‘와이드쇼’로도 불린다. 1964년 일본교육방송이 미국 NBC의 뉴스·정보프로그램 <투데이>를 본떠 만든 <모닝쇼>가 성공을 거두자 다른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와이드쇼는 시청률 확보를 위해 뉴스프로그램과 달리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식으로 연출하며, 전문가 외에 입담 좋은 예능인들도 패널로 출연시킨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취재 가이드라인을 일탈하는 일도 심심치 않다. TBS 와이드쇼 제작진이 1989년 10월 옴진리교 비판에 앞장서온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의 취재영상을 옴진리교에 노출시켰다가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족이 신도들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대표적인 폐해로 꼽힌다.  
 

와이드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뉴스의 희화화다. 심각한 사안을 흥미 본위의 만담거리로 만들어 시청자들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킨다. 일본 미디어비평가들은 국회에서 중대한 법안 등이 다뤄질 때마다 와이드쇼가 연예계 스캔들 등을 떠들썩하게 방영해 유권자들의 눈길을 돌려왔으며, 때로는 정권이 방송사에 그런 주문을 해온 의혹도 있다고 지적한다.
 

와이드쇼는 한·일 갈등 국면에서 혐한 정서를 확산시켰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조국사태’가 한창이던 9~10월 일본 TV들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의혹 보도 건수(878건)가 비슷한 시기 가와이 가쓰유키 일본 법무상의 부정선거 스캔들 보도(181건)의 5배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4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포럼에서 이홍천 도쿄도시대학 교수는 “일본 법무상의 이름은 기억 못해도 조국 장관 이름을 모르는 일본인이 드물 정도”라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 정치와 한국인을 바보 취급하는 보도나 네트우익의 논리를 와이드쇼가 여과 없이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타국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부추기는 와이드쇼를 ‘혐한 증폭기’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