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5. 15:39

출처 경향신문 DB

서울은 나날이 새로워진다. 이건 찬사가 아니라 비아냥이다. 오래된 거리와 가게를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을 오랜만에 찾은 외국인들이 예전 들렀던 가게를 찾아갔다가 사라져 낙심하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임대료가 턱없이 오르기 때문이다.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노포(老鋪) 냉면집 ‘을지면옥’도 결국 철거될 운명이다. 숱한 근대유산들이 표지석 하나 달랑 남기고 스러졌다. 지대추구라는 불가사리는 600년 도시 서울에 쌓인 ‘세월의 더께’까지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

저금리하에서 대량으로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한국 경제의 밑동이 썩어간다. 자발적인 근로의욕과 창의력, 높은 저축열, 모험적인 기업가정신이 넘치던 성장시대의 다이너미즘은 말라붙은 지 오래다. 지금은 어린 학생들조차 ‘강남 건물주’를 꿈꾼다. “‘지대추구 경제’가 현재 대한민국 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적합한 표현이다.”(하승수 <배를 돌려라-대한민국 대전환>) 자영업이나 소규모 창업이 ‘개미지옥’이 돼가고, 청년들이 창살 없는 감옥 같은 방에서 버텨야 하는 것도 턱없는 임대료 탓이다.

임대료 폭등은 유럽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다. 독일 베를린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여년간 임대료가 2배 이상 치솟았다. 시 주민의 85%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이 들고일어나 시 당국을 압박한 결과 향후 5년간 주택 임대료를 동결하는 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공익을 위해 사유재산권에 제약을 가한 파격적 실험이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한국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커지자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낮추는 ‘착한 임대료’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 건물주들이 지난 12일 임대료를 3개월 이상, 10% 이상 내려주겠다며 불을 지핀 것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감염병이 몰고온 뜻하지 않은 기적이다.

운동에 호응해 정부가 임대료 인하분의 절반을 세액공제로 건물주에게 되돌려주는 방안을 내놨다. 그런데 취지는 좋지만 정부 지원이 부유한 건물주에 집중되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운동의 취지가 퇴색되지 않고, 세금도 새지 않도록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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