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5. 15:44

일본에서 지난해 6월 개봉된 영화 <신문기자>의 주연을 한국 배우 심은경이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영화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리관저(官邸)로 불리는 권부의 비리를 정면으로 파헤치는 신문기자 요시오카 에리카 역할에 일본 배우들이 부담을 느끼다 보니 한국 배우에게 배역이 돌아갔다는 일본 주간지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한국 개봉 때 방한한 가와무라 미쓰노부 프로듀서는 “일본 여배우에게는 전혀 출연 제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신문기자>는 아베 신조 정권을 뒤흔든 ‘가케학원 의혹’과 흡사한 사학 스캔들을 소재로 한다. 정부가 가케학원 산하의 오카야마 이과대학에 수의학부 설치를 허가하는 과정에 아베 총리가 개입한 사건이다. 스캔들에 연루된 고위 관료의 자살, 총리와 가까운 기자의 성폭력 사건(이토 시오리 사건) 등 실제 사건이 줄줄이 등장해 리얼리티를 높인다. 이렇듯 아베 정권을 정면에서 직격한 영화이다 보니 권력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고, TV홍보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문기자>에 대한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마이니치 영화콩쿠르, 다카사키 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데 이어 지난 6일 열린 제43회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작품상(후지이 미치히토 감독), 최우수 남우주연상(마쓰자카 도리), 최우수 여우주연상(심은경)을 거머쥐었다. 일본 아카데미상을 결정하는 회원 상당수는 도호(東寶), 쇼치쿠(松竹), 도에이(東映) 등 3대 영화사 사원들이다. 이 때문에 3대 영화사 작품들이 주로 수상하는 관행에 비춰볼 때 중소영화사 ‘스타샌즈’가 제작한 <신문기자>의 수상은 이례적이다.

영화를 보면 아베 정권 치하의 일본 사회를 감싼 무거운 침묵과 정치 니힐리즘(허무주의)을 깨뜨리는 데는 일본인 아닌 타자(他者)가 적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은경의 캐스팅은 이런 점에서 성공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코로나19로 한국발 일본 방문자의 입국규제를 결정한 다음날 시상식이 열린 것도 공교롭다. 지난해 수출규제로 한·일 양국 간 물자 이동을 막더니 이젠 사람의 왕래까지 끊고 있다. 심은경의 수상이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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