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유신시대가 막을 내린 1979년은 국제적으로도 격동의 해였다. 중동 최대의 친미 국가 이란의 팔레비 정권이 이슬람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졌다. 이란 혁명의 파장은 동쪽 아프가니스탄으로도 번져 무장 게릴라 무자헤딘이 ‘좌파 세속주의’를 강요하는 소련에 맞서 봉기했다. 친소 정권이 위태로워지자 소련군은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 새벽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었다.
이란 혁명과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혼미해진 중동 정세는 우유부단하던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을 강경파로 돌려놨다. 카터는 소련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에 불참하겠다고 경고했다. 1980년 3월21일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카터는 보이콧을 확정했다. 동맹인 한국, 일본과 서방 국가들이 뒤를 따랐고, 1960년대 소련과 국경분쟁을 겪은 중국도 불참했다. 모스크바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 147개 회원국 중 80개국만 참가하는 반쪽 대회가 됐다. 여파는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에까지 미쳤다. 선수단 안전보장 문제를 빌미로 소련과 동구권 15개국이 대회에 불참했다.
두 차례 올림픽 보이콧 사태로 비상이 걸린 곳은 다음 개최국인 한국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친미 독재국가 이미지를 씻기 위해 노력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무력진압 계획을 포기한 배경에는 1년 뒤 열릴 올림픽도 있었다. 이후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면서 정권교체와 민주화의 토대가 마련됐다. 소련 개혁·개방의 기수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등장도 호재였다. 그 결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서방권은 물론 소련과 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참가하는 화합의 무대가 됐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의 대중 강경파들은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과 홍콩 사태, 대만 위협 등을 들어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재선정할 것을 주장한다. ‘평화의 제전’ 올림픽이 미·중 신냉전의 희생물이 될까 걱정이다. 올림픽이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것처럼 중국의 인권문제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올림픽 보이콧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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