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와 북소리에 맞춰 전통 제의복장을 한 공연자들이 4평 남짓한 다다미방에서 주문을 외듯 같은 가사를 반복해 읊조리면서 춤사위를 선보인다. 끊임없이 같은 음률을 반복하는 피리소리, 공연자들의 엇비슷한 동작의 반복으로 다소 지루할 법도 하건만 도시에서 온 관객들의 표정은 외진 산촌에서 펼쳐지는 축제의 하룻밤을 기꺼이 맞을 준비가 돼있는 듯 익숙함이 느껴진다.
지난 1월14일 오후 8시 요카구라 마쓰리(축제)가 열린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 다카치호정 아키모토마을의 한 민가. 200여명의 관광객들이 둘러앉아 요카구라를 지켜보고 있었다.
요카구라란 일본의 고대신화를 주제로 한 일종의 제의로 신화의 고장으로 유명한 이곳 다카치호정에서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한해의 수확을 감사하고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열린다. 29명의 출연자가 33막에 걸친 공연을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장장 14시간 동안 철야로 펼친다.
다카치호정은 미야자키현의 서북부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촌마을. 지난해 태풍으로 철도가 끊겨 교통오지가 됐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규슈 북부의 후쿠오카는 물론 오사카 나고야, 심지어 1200㎞ 가까이 떨어진 도쿄에서까지 관광객들이 찾아든다. 이곳 19개 마을의 요카구라를 보기 위해 매년 2만여명의 도시지역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도쿄 부근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서 침술원을 운영한다는 미야가와 고조(60)는 “2~3년전부터 매년 오는데 올 때마다 새로운 감동과 경건함이 느껴진다”면서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더 구경하려고 아예 며칠 가게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신화를 주제로 한 제의라 엄숙할 법하겠지만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공연이 벌어지는 5~6평 남짓한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20여평을 빼곡히 메운 관광객들은 카메라의 플래시를 연방 터뜨리거나 동행자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등 시끌벅적하다. 밤공기가 찬 산촌의 밤을 견디기 위해 담요를 두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선 서너명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도 눈에 띈다. 공연장 바깥의 민가 앞마당에선 동네주민과 관광객들이 화톳불을 같이 쬐며 멀찍이에서 공연을 지켜본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공연도중 관객과 공연자가 함께 하는 간이 술자리. 저녁 9시가 조금 넘어서면서 무대가 치워지고 마을주민들이 날라온 소반에 어묵과 소주가 놓인다. 관광객들과 공연자들이 야식과 술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펼쳐진다. 별이 반짝이는 산촌의 밤에 펼쳐지는 독특한 공연과 친교의 한마당에 참가한 참석자들은 평생 잊지못할 추억을 간직하고 돌아간다. 10년전부터 요카구라 축제를 보러 왔다는 가쓰기 메구미(여·51·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는 “공연자와 관광객, 마을주민이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 좋다”면서 “이런 술자리를 통해 마을주민들과 친해져 친구를 만나는 기분으로 매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축제의 관람료는 따로 없다. 관광객들 2~3명이 소주 2병(약 2만원)을 현물로 사서 내거나 자신의 이름을 적어 공연장내 벽이나 대들보에 붙여두는 것이 고작이다. 관람객들이 낸 소주는 술자리에 쓰인다. 외부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신과 다름없이 잘 대접해야 한다는 산촌주민들의 습속때문이다.
하지만 도시민 관광객들은 다카치호 시내에서 전통술을 사들고 공연장을 찾는다. 관광객들의 숙박비와 소주판매비 등이 이곳 마을의 주요 관광수입이 되고 있다.
다카치호 마쓰리는 축제를 통해 도시민과 농민들이 교류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일본내에서도 평가되고 있다.
이재현 가고시마대 농학부 교수는 “일본은 역사적으로 막부체제라는 독립소국 체제가 지속되면서 발전시켜온 고유 문화가 뚜렷하다”면서 “이것이 현대에 와서 지역과 지역, 도시와 농촌을 잇는 교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