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영화 이야기. 지난해 국내에서도 개봉된 일본 영화 <골든 슬럼버>는 특정 권력집단이 반미 성향의 젊은 총리를 살해한 뒤 현장 부근에 있던 주인공을 암살범으로 몰아 추격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미국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으로 지목돼 재판도 받기 전 살해된 리 하비 오스왈드처럼 사건 발생 직후 범인으로 몰려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현직 경찰간부가 포함된 총리 암살세력은 미국과 이해관계가 깊은 권력집단으로 암시된다.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개봉이 늦어진 <SP혁명편>에서는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무장집단이 국회를 점거하고 새로운 정치를 요구한다. 무장집단에 의해 연단에 세워진 현직 총리의 ‘부패와 음모’가 낱낱이 까발려진다.
두 영화는 기성 정치권의 변혁을 시도하지만 끝내 좌절하는 이야기 구조상의 공통점이 있다.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구, 하지만 체념’이라는 복잡하고 불편한 일본인들의 시선이 배어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대참사의 와중에서 일본 정치권을 바라보는 기분이 딱 이렇다. 간 나오토 총리는 지지율이 20%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의 지지율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원전 참사 한 달 뒤 선거에서 원전 추진파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가 4선에 성공했고, 야당 자민당에선 ‘원전정책 사수’의 깃발이 오르고 있다. 도쿄의 절반만한 땅덩어리가 방사능에 오염돼 몹쓸 땅이 돼가는데도 ‘안전하게 운영하면 괜찮다’는 원전 맹신주의가 다시 고개를 든다.
일본 정치를 싸잡아 휴지통에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두 가지 점에서 일단 보류하기로 한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원전지역 주민의 ‘각성’이다. 여론이 급변하면서 야마구치, 후쿠이 현 지사들이 탈원전 방침을 표명하고 있다. 자치단체장이 제동을 걸면 원전은 움직일 수 없다.
다른 하나는 간 총리다. 간 총리는 이달 초 하마오카 원전 가동중단 결정을 내린 데 이어 2030년까지 원전 14기를 새로 짓겠다는 계획을 백지화했다. 내친 김에 핵재처리 계획 중단, 전력회사의 송전과 발전의 분리방침을 밝혔다. 모두 원전 기득권층이 오랫동안 ‘금단의 영역’에 봉인해 둔 것들이다.
최근 만난 일본 에너지 전문가는 “간 총리가 경제산업성과 논의하지 않은 채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전정책의 본산인 경제산업성 관료들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전 기득권층’의 위기감은 전력사업 개혁구상 발표를 전후로 정치권에서 간 총리 사퇴공세가 재연되고 있는 데서 감지된다.
간 총리가 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보여준 대응은 ‘아마추어’라는 비판을 받을 만했다. 하마오카 이외의 원전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며 가동을 허용하는 ‘실책’을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운동가 출신인 간 총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그가 지금 그 역할을 하려고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반에 포진한 ‘원전 기득권층’과의 대결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정치인은 세계를 향한 정치를 해야 한다. 간 총리의 정치는 일본이 세계에 끼친 ‘메이와쿠(迷惑·폐)’를 갚을 유일한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가 <골든 슬럼버>의 총리처럼 좌절한다면 일본 정치에 더 이상 미래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에게 응원을 보내려는 이유다.
주인공은 미국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으로 지목돼 재판도 받기 전 살해된 리 하비 오스왈드처럼 사건 발생 직후 범인으로 몰려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현직 경찰간부가 포함된 총리 암살세력은 미국과 이해관계가 깊은 권력집단으로 암시된다.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개봉이 늦어진 <SP혁명편>
두 영화는 기성 정치권의 변혁을 시도하지만 끝내 좌절하는 이야기 구조상의 공통점이 있다.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구, 하지만 체념’이라는 복잡하고 불편한 일본인들의 시선이 배어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대참사의 와중에서 일본 정치권을 바라보는 기분이 딱 이렇다. 간 나오토 총리는 지지율이 20%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의 지지율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원전 참사 한 달 뒤 선거에서 원전 추진파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가 4선에 성공했고, 야당 자민당에선 ‘원전정책 사수’의 깃발이 오르고 있다. 도쿄의 절반만한 땅덩어리가 방사능에 오염돼 몹쓸 땅이 돼가는데도 ‘안전하게 운영하면 괜찮다’는 원전 맹신주의가 다시 고개를 든다.
일본 정치를 싸잡아 휴지통에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두 가지 점에서 일단 보류하기로 한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원전지역 주민의 ‘각성’이다. 여론이 급변하면서 야마구치, 후쿠이 현 지사들이 탈원전 방침을 표명하고 있다. 자치단체장이 제동을 걸면 원전은 움직일 수 없다.
다른 하나는 간 총리다. 간 총리는 이달 초 하마오카 원전 가동중단 결정을 내린 데 이어 2030년까지 원전 14기를 새로 짓겠다는 계획을 백지화했다. 내친 김에 핵재처리 계획 중단, 전력회사의 송전과 발전의 분리방침을 밝혔다. 모두 원전 기득권층이 오랫동안 ‘금단의 영역’에 봉인해 둔 것들이다.
최근 만난 일본 에너지 전문가는 “간 총리가 경제산업성과 논의하지 않은 채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전정책의 본산인 경제산업성 관료들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전 기득권층’의 위기감은 전력사업 개혁구상 발표를 전후로 정치권에서 간 총리 사퇴공세가 재연되고 있는 데서 감지된다.
간 총리가 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보여준 대응은 ‘아마추어’라는 비판을 받을 만했다. 하마오카 이외의 원전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며 가동을 허용하는 ‘실책’을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운동가 출신인 간 총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그가 지금 그 역할을 하려고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반에 포진한 ‘원전 기득권층’과의 대결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정치인은 세계를 향한 정치를 해야 한다. 간 총리의 정치는 일본이 세계에 끼친 ‘메이와쿠(迷惑·폐)’를 갚을 유일한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가 <골든 슬럼버>의 총리처럼 좌절한다면 일본 정치에 더 이상 미래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에게 응원을 보내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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