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일본 요코하마(橫浜)시를 비롯한 상당수 중학교에서 배우게 될 우익 이쿠호샤(育鵬社)판 중학교 공민(사회) 교과서는 태평양전쟁 패전이후 조성된 전후(戰後) 일본체제가 외세에 의해 강요됐다는 ‘자학사관’의 요체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반면 학습지도요령 지침에 따른 것이긴 노동자의 파업권과 노동조합의 존재의의 등 노동권에 대한 충실한 기술과 기업의 독점폐해와 사회적 책임, 양극화의 문제 등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 점도 눈에 띈다.
대형서점에서 시판본용으로 판매중인 공민 교과서를 살펴본 결과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헌법을 다룬 제2장 중 ‘대일본제국헌법과 일본국헌법’(40~41쪽)이다. 교과서는 천황(일왕)제에 기반한 군국주의 헌법인 대일본제국헌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정부는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을 중심으로 구미의 헌법을 조사연구함과 동시에 일본의 역사와 전통, 정체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1889년 대일본제국헌법을 공포했다. 이 헌법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근대헌법으로 내외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일본국헌법(현행헌법)의 제정’ 단락에서는 태평양전쟁 패전이후 수립된 전후체제가 외세의 강요에 의해 졸속으로 만들어진 것인양 폄훼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격파한 연합국은…(중략) 일본의 민주주의적 경향을 부활·강화해 연합국을 다시금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체제를 만들기 위해 철저한 점령정책을 실시했다. 정부는 대일본제국헌법을 토대로 개정안을 작성했으나 연합군최고사령부는 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1주일간 헌법초안을 작성한 뒤 일본 정부에 받아들이라고 강하게 압박했다.”(40~41쪽)
이어 ‘국민주권과 천황’에서는 ‘천황과 복지’ ‘일본의 역사·문화와 천황’ 등 별도의 상자글에서 일왕이 동일본대지진 피해주민을 위문하는 사진을 곁들이면서 일왕제를 미화했다. ‘평화주의’ 항목에서는 전쟁을 부인한 헌법9조와 자위대의 존재간에 모순이 있다는 점을 거론해 헌법개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도출하도록 했다.
반면 우익계열 교과서임에도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적 격차문제, 기업의 사회적 역할 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면에 걸쳐 충실하게 기술돼 있다.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사회격차 심화 등 각종 문제를 초래했다는 자성이 문부과학성의 학습지도요령에 반영된 결과다.
공민교과서 2절 ‘기본적 인권의 존중’에서는 헌법에 규정된 노동3권에 관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했다. “노동자에 대해 노동조합을 결성해 단결할 권리(단결권),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단체교섭권), 요구가 충분히 달성되지 않았을 경우 스트라이크(파업) 등의 행동을 통해 강하게 요구하는 권리(단체행동권)가 인정되고 있다.”(60쪽)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서술은 제4장 ‘우리생활과 경제’의 ‘노동의 의의와 역할’(제4절)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보호’ ‘노동조건의 보호’ ‘생활의 격차’ 등으로 나눠 충실히 다루고 있다. “젊은 층의 불안정고용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전체의 소득향상으로 연결되는 고용확대 정책과 젊은층에 대한 고용지원정책이 필요해지고 있다”(135쪽)
“(독과점은) 새로운 기업의 등장을 방해하고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에 대해 불리한 거래를 강요하기도 한다”며 독과점의 폐해를 지적하는 대목도 주목된다.(119쪽 ‘경쟁과 독점’항목)
심화학습란에 ‘기업의 사회공헌’란이 포함돼 있는가 하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라는 별도 페이지에서 일본 가전기업 파나소닉(마쓰시다 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의 ‘사회로부터 빈곤을 없애기 위해 일한다’는 근로이념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쿠호샤판 교과서는 약 8만명에 달하는 요코하마 시의 공립중학교 학생들이 내년부터 4년간 배울 교과서로 채택됐으며 채택률이 일본 전체 중학생의 2~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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