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영유권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싸고 한·일 갈등이 격화되면서 일본이 근대국가 이후 일으킨 전쟁들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린다. 일본에서는 이 전쟁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을까.
일본의 전쟁 관련 저서 중 가장 주목받는 책은 도쿄대 가토 요코(加藤陽子) 교수가 쓴 <그래도, 일본인은 ‘전쟁’을 선택했다(それでも,日本人は戰爭を選んだ)>(아사히출판사)다. 일본 근현대사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가토 교수가 도쿄시내 고교의 역사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5일간 연속 강의한 내용을 엮어 2010년 출판한 이 책은 2년이 지난 현재도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이 근대국가 이후 치른 여섯 차례 전쟁의 배경과 원인, 대외정세, 당시 정부와 군부, 정치권, 여론의 움직임을 최신 연구성과와 기록을 동원해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일련의 전쟁을 당시의 연속적인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 정부나 군부의 폭주 때문만이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가 전쟁이라는 흐름으로 빨려들어간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청일전쟁(1894~1895) 전에 등장한 자유민권운동은 자유와 민주주의보다 ‘국권’을 중시했다. 일본은 외세에 의해 개국을 강요당한 뒤 열강들과 불평등조약을 맺는다. 시대적 화두인 불평등조약의 개정을 위해 민주주의적 가치는 보류되어도 좋다는 것이 당시 오피니언 리더들의 생각이었다. 한 민권운동가는 1879년 일기에 “조금이라도 학식이 있는 사람은 국회개설, 자유민권을 논하고 있지만, 그보다 긴급을 요하는 것이 조약개정이다. 일본이 독립국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불평등)조약이 개정돼야 한다”고 썼다.
에도시대 260년간 쇄국정책을 취해오다 갑자기 불어닥친 개항의 충격이 국민의 가치관을 국력우선으로 몰아갔으며, 전쟁에 저항감이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의 확충도 전쟁과 관련이 크다. 청일전쟁 수년 뒤 벌어진 선거권 확대운동은 전쟁으로 획득한 랴오둥(遼東)반도를 삼국간섭에 의해 반환하게 된 데 대한 불만이 무능한 정부를 민의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 것이다.
이 책 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930년대 군부가 작성한 ‘대국민 공약’이다. 만주사변 3년 뒤인 1934년 군부가 작성한 팸플릿에는 의무교육의 국비부담, 비료판매의 국영화, 농산물가격 유지, 경작권 등의 소작농 보호, 노동조합법 제정에 군부가 힘쓰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당의 선거공약을 방불케하는 이런 대책을 왜 군부가 작성했을까.
1929년 대공황으로 농민층이 빈사 상태에 빠졌는데도 기성 정치권은 수수방관했다. 하지만 농민 출신이 병사의 대부분인 군부는 농민층의 불만을 다스리고,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총력전을 준비하려 했던 것이다. 일본 국민들이 군부의 대두와 전쟁이란 상황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인 배경이기도 하다. 무기력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이 우익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일본과도 상당히 닮아 있다.
다만, 당시의 시대적 관점을 충실하게 반영하다 보니 다소 상황긍정론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조선과 만주 침략을 일본의 안전보장의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은 일본 우익들의 ‘자위전쟁론’과도 맞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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