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접어들면 도쿄에서의 하루 일과는 목욕물을 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히터(여름엔 에어컨)를 틀고 자긴 하지만, 몸의 곳곳에 배인 한기를 더운물로 털어내지 않으면 집바깥을 나서기가 힘들다. 우리집은 도쿄 남부인 오타(大田)구의 쿠가하라(久が原)라는 곳에 있다. 신주쿠 등 도쿄도심에 비해 월임대료가 싼 편이다.
일본 주택이 한국주택과 가장 다른 점은 춥다는 것이다. 우선 창문이 이중창이 아니라 홑창이고, 마루가 목재바닥이라 썰렁하기 그지 없다. 요즘 지어진 주택들은 유카담보(마루바닥 난방장치)가 딸려 있고, 층마다 히터가 있긴 하지만 그것으론 방한이 되지 않는다.
우리 동네 쿠가하라. 사진은 www.otakushoren.com 에서 가져옴.
잠을 잘때는 히트텍이라고 하는 발열내의를 입고, 그 위에 얇은 점퍼를 껴입어야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조금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대체로 밤에 욕조에 들어가 몸을 데운 상태에서 잠을 청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일본인들은 목욕을 유난히 좋아한다. (3.11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동북지방에서 자위대가 가설 목욕탕을 지어줬는데 피해주민들이 너무 좋아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우리집은 가늘고 긴 3층 집이다. 실평수는 25평 정도로 반지하인 1층에는 욕실, 화장실(욕실과 화장실이 분리돼 있다), 드레스룸과 창고방이 있다. 2층은 주방을 겸한 거실및 화장실, 3층에 방이 2개 있다.(3층 방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다락방이 있긴 하지만 논외로 치고) 화장실이 욕실과 별도로 있다는 것도 한국집과 다른 점이겠다.
집 대문은 보통 성인의 가슴정도 높이로 무단침입하기로 마음 먹자면 밖에서 문을 따고 들어올 수도 있다. 형식상의 문이다. 대신 현관문에 자동 잠금장치가 있다. 우리 동네를 다녀보면 대문은 그냥 장식에 불과한 집들이 상당히 많다. 골목에 면한 집들은 아예 대문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일본인들의 희망 가운데 하나가 1평짜리라도 자기 마당을 갖는 것이라고들 하는데(이를 쯔보니와(坪庭)라고 한다) 흙마당은 없고, 시멘트 마당이 조그맣게 있다. 시멘트 마당이라고 해도 화분에 꽃들을 정성들여 가꾸는 집들도 많다. (우리도 상추와 미즈나라고 부르는 채소를 사다 화분에 심어놓고 길러 먹었다)
지방소도시나 농촌으로 가면 집을 큼직하게 짓고 살지만 도쿄는 비좁고 이웃과 바짝 달라붙어 집을 지어놓기 때문에 이웃간에 조심할 일이 많다. 집 대문앞에 조그만 화분에 꽃을 심었다가 관리를 제대로 안해 말라버린 일이 있는데 옆집 할아버지가 "꽃이 불쌍하지도 않느냐"며 핀잔을 준 일이 있다. 꽃이 말라버린 일 자체를 탓하기 보다는 아마 동네 전체의 미관을 해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역시 한국과 도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독주택의 비율일 것이다. 도쿄도 시바우라(芝浦), 신주쿠(新宿) 등에 가보면 고층맨션들이 줄지어 있지만, 우리 동네는 반경 2~3km가량에 7층이상 건물이 없는 전형적인 주택가이다. 그러다 보니 집들이 다닥다닥 붙여 짓게 되는 것 같다. 집들은 바싹 붙여짓지만, 공공 공간은 많다. 농구장의 절반쯤 되는 크기의 자그마한 공원들이 동네마다 몇군데 있고, 신사(神社)는 비교적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이 신사를 중심으로 매년 '마쓰리'가 열린다.
전철역 부근에 형성된 상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역시 편의점이다.
편의점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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