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21. 14:38

일본의 전통 인형극 분라쿠(文樂)를 공연하는데 ‘구로고(黑衣)’는 필요불가결한 배역이다. 검은 옷으로 전신을 가린 채 인형을 뒤에서 붙잡고 조종하거나 무대에 소도구를 옮기는 역할을 하는 이가 구로고다. 관객들은 극에 집중하기 위해 구로고를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구로고 덕분에 인형들은 인간 못지않은 섬세한 동작을 펼쳐보일 수 있다. 과거 일본 정치도 총리(인형)를 실세 정치인과 관료들이 뒤에서 조종하는 ‘구로고 정치’였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기 파벌을 움직이며 막후에서 실권을 휘두르는 상왕(上王)들이 드물지 않았다. 1972년부터 2년 반 총리를 지낸 뒤에도 10년 이상 일본 정계를 주무른 다나카 가쿠에이가 대표적이다. 다나카는 19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총리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 때문에 ‘다나카소네 내각’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베 신조 총리의 뒤를 이은 스가 요시히데 내각에도 ‘상왕 아베’ 정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스가 내각의 각료 20명 중 11명이 아베 정권 인물로 채워졌고, 아베 친동생은 방위상에 기용됐다. 스가 총리 스스로 외교정책에서 아베의 조언을 구하겠다고 했고, 아베는 각국 정상과 쌓은 친분을 활용해 외교특사로 나선다고 했다. 외교·안보에서는 아베가 총리 시절과 다름없는 영향력을 행사할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아베가 총리에서 물러난 지 사흘 만인 지난 19일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퇴임 사실을 영령들에게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총리 ‘견장’을 떼자마자 주변국 눈치 볼 것 없이 ‘우익 본능’을 한껏 펼치고 있다. 그의 참배에 일본의 보수우익들은 후끈 달아올랐다. 아베의 소셜미디어에는 “(총리로서) 세번째 등판을 강하게 기대한다”는 댓글도 달렸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0~2008년 대통령직을 연임한 뒤 3연임 금지조항에 막히자 측근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 자리를 맡기고 총리로 내려앉았다가 복귀했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서는 아예 총리 횟수에 제한이 없다.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가 퇴임과 재취임을 반복하며 4차례 재임한 전례도 있다. 어쩌면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가 세번째 총리 등극 플랜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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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6:04

스가 관방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8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후임으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부상하고 있다. 스가 장관은 2012년 ‘제2차 아베 정권’ 출범 때부터 관방장관을 맡아 내각 운영을 총괄해온 핵심 인사인 만큼 아베 총리의 공백을 메울 적임자라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에서 내각관방은 총리를 보좌·지원하는 조직으로, 정부 주요 정책의 기획, 조정 및 정보 수집 등을 담당한다. 그 수장인 관방장관은 국정 현안을 해당 부처 및 여당과 조율하고, 현안에 대한 정부의 공식 견해를 발표한다.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장, 정책실장과 대변인을 합친 막중한 자리다. 2014년에는 내각 인사국이 설치되면서 관방장관이 각 부처 국장급까지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본래 관방(官房)은 군주의 측근이 사무를 보는 방이라는 뜻으로, 근대화 초기 일본이 프로이센의 관료제도를 차용하면서 도입된 직제다. 옛 공산권의 서기국, 비서국과도 닮은 데가 있다.

관방장관은 총리가 자리를 비웠을 때 국정상황을 챙기기 때문에 해외 출장을 가는 일이 드물다. 총리와 관방장관이 함께 도쿄를 비우는 일도 거의 없다. 지난 30년간 관방장관이 해외출장을 간 경우는 단 4차례에 불과할 정도다. 이 때문에 지난해 5월 스가 장관이 나흘간 미국 방문에 나서자 ‘포스트 아베’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관방장관은 매일 기자회견에 등장하는 만큼 언론 노출도 면에서 총리를 능가한다. 일본 정가에서는 총리의 ‘등용문’으로 통하고, 실제로 관방장관 출신 총리도 적지 않다. 아베 총리의 외종조부였던 사토 에이사쿠 총리를 비롯해 오히라 마사요시, 스즈키 젠코, 다케시타 노보루, 미야자와 기이치, 오부치 게이조, 후쿠다 야스오 총리 등이 관방장관을 거쳤다. 아베 총리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밑에서 관방장관을 지낸 바 있다.

스가 관방장관이 새 총리가 될 경우 국정의 안정을 꾀할 수는 있겠지만, 아베 정권의 공동운영자였던 만큼 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아베노믹스와 코로나 대책에 대한 국민 피로감을 감안할 때 롱런 가능성도 불투명해 보인다. 안정이냐 개혁이냐의 갈림길에서 일본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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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6:01

아베 신조(가운데 오른쪽) 일본 총리가 24일 마스크를 착용한 채 도쿄 소재 게이오대학 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7일 같은 병원에 7시간 반 동안 머물며 건강검진을 받은 뒤 일주일 만에 다시 찾았다./AP 연합뉴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07년 9월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하자 1년 만에 물러났다. 후임인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등 자민당 총리들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총선 패배로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집권 3년3개월간 3명의 총리가 등장했다. 6명의 ‘단명 총리’를 거치면서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주요 7개국(G7) 회의 같은 국제 행사장에서 일본 총리들은 외톨이 신세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무려 5명의 일본 총리에게 “미·일 동맹은 굳건하다”고 다짐해야 했다. 미 국무부 관리들이 새 일본 총리의 이름을 헷갈려하는 장면에 일본인들은 혀를 찼다.

민주당 정권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은 끝에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9개월 만에 퇴임하면서, 외교 주도권을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등 극우 포퓰리스트들에게 빼앗겼다. 동아시아 중시 외교를 부르짖던 민주당 정권하에서 중국·한국과의 관계는 오히려 악화됐다. 단명 총리에 진저리가 난 일본 사회에서 ‘웬만하면 총리를 끌어내리지 말자’는 안정희구 심리가 커졌다. 아베의 재집권은 이런 흐름에서 나왔다. ‘재수(再修) 총리’ 아베의 장기집권은 처음부터 예고됐던 셈이다.

24일로 아베 총리의 재임기간이 2799일을 기록, 전후 최장기 연속집권을 달성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장기 집권 요인으로 야당의 지리멸렬과 함께 관료인사권 장악을 꼽는다. 총리실 산하에 내각인사국을 두고 관료사회에 맡겨온 부처의 인사권을 국장급까지 거머쥐면서, 관료들이 알아서 기는 ‘손타쿠’ 관행이 생겨났다. 모리토모·가케 학원 사태 등 예전 같으면 총리 사퇴감인 대형 스캔들을 관료들이 몸을 던져 덮었다. 관료 장악은 결국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도쿄 올림픽 개최에 집착하는 총리의 심기를 읽은 관료들이 코로나19 사태 초기 방역관리보다 확진자 수 억제에 신경쓰다 방역에 실패해 민심을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만든 것이다. 지금 일본 사회에서는 아베의 최장수 총리 기록보다 그가 언제 퇴임할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총리단명 사태가 빚어낸 ‘장수 총리’의 시대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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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5:59

서울 남산의 N서울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여의도 63빌딩과 부천, 인천지역 빌딩 경향신문DB

노태우 정부는 군사쿠데타 주역이라는 비판이 무색할 만큼 시대흐름에 부응한 여러 정책들을 추진했다. 공산권 및 북한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북방정책이 그랬고, 부동산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시도한 ‘토지공개념’도 혁신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으로 시중에 돈이 흘러넘치자 여유자금이 부동산에 몰려들었다.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풀린 돈들도 땅값을 밀어 올렸다. 부동산 투기에 따른 집값폭등으로 서민들의 불만은 임계점으로 치솟았다. 집권 첫해인 1988년 13대 총선에서 패배해 정국 주도권을 상실한 노태우 정부에 부동산 문제는 정권의 존립을 위협했다. 조순 부총리, 문희갑 경제수석 등 경제관료들은 연일 “개혁이 없으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경고(경향신문 1989년 9월4일자)했다. 1989년 12월18일 국회를 통과한 택지소유상한법,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법 등 ‘토지공개념 3법’은 이런 배경 속에 등장했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5월8일에는 초법적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매각 명령을 내려 재벌기업의 부동산 사재기에 제동을 걸었다.

토지공개념은 1994년 토지초과이득세법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고, 택지소유상한법이 1998년 헌재 위헌판정을 받으면서 동력을 상실했다. 당시 헌재는 법 설계가 정밀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을 뿐 공공이익을 위해 토지소유를 제한하는 취지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은 국정철학으로 계승되지 못했고, 부동산은 역대 정부에서 경기부양의 ‘밸브’로 동원되었다.

경제학자들은 한국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주요 배경으로 경자유전 원칙 아래 지주-소작제를 혁파한 농지개혁을 꼽는다. 농지개혁을 통한 소득 불평등 완화와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 수준은 개발도상국의 초기 성장에 훌륭한 자양분임을 한국의 사례가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제2의 농지개혁’이 아닐까. 그 원칙이 토지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토지공개념은 3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유력한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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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5:57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경향신문DB

기자들은 취재원들을 만날 때 취재수첩을 꺼내 메모하거나 녹음기를 켜놓는 경우가 많다. 취재할 내용이 많거나 복잡한 경우 불가피하게 쓰는 방법이지만, 취재원들은 수첩과 녹음기 같은 소도구에 의외로 긴장한다. 그래서 인터뷰가 끝나 녹음기를 끄고 수첩을 집어넣을 때 취재원은 안도감에 긴장을 푼다. 이때 ‘오프 에어(off air) 발언’에서 허심탄회한 속내가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명민한 기자는 이 ‘진실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오프 에어’ 발언은 파장을 낳는다. 2012년 3월26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끝낸 직후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나눈 대화가 그대로 공개됐다. 당시 미국이 유럽 일원에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구축해온 것과 관련해 오바마는 “선거가 끝나면 더 많은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대선을 7개월 앞둔 시점에서 그는 이 발언으로 핵심 안보현안을 선거와 연계하려 했다는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지난해 5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당·정·청 회의에 앞서 관료들을 비판하는 사담을 나눈 것이 그대로 방송됐다. 두 사람은 ‘온 에어(on air)’ 상태인 줄 모르고 “관료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한다”는 등 공개하기 민망한 말을 여과 없이 노출했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지난 16일 방송사 TV토론이 끝난 뒤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른 채 정부의 7·10대책에도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미래통합당 김현아 비상대책위원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국가경제에 부담되기 때문에 그렇게 막 떨어뜨릴 수 없다”고 하자 “그렇게 해도 안 떨어질 것이다. 부동산이 뭐 이게 어제오늘 일인가”라고 대꾸한 것이다. 맥락상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발목 잡으려는 ‘집값 하락론자’들의 인식과 주장을 반박한 것”이라는 진 의원의 해명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여당 의원조차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발언이기도 하다. 이러니 투기세력들이 정부 대책을 겁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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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5:55

2일 오후 서울 용산기지를 출발해 평택으로 가던 미군 소속 헬리콥터가 엔진 고장으로 용산구 이촌동 한강공원에 비상 착륙해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다목적 헬기의 필요성을 깨닫고 개발에 착수했다. 이런 요구에 따라 미국 시코르스키사가 개발한 헬기가 ‘블랙호크’로 불리는 UH-60다. 1978년부터 도입된 블랙호크는 1950년대 말부터 운용돼온 UH-1이 로쿼이를 대체하며 특수전, 정보수집, 전투구출, 의무후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실전에는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시작으로 파나마 침공, 걸프전 등에 투입됐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의 거처를 급습하는 과정에서도 특수작전용 블랙호크가 동원됐다.

하지만 블랙호크는 흑역사로도 유명하다. 1993년 10월 소말리아 모가디슈 전투에서 벌어진 ‘블랙호크 다운(추락)’이 대표적이다. 미 합동 특수전사령부는 레인저 부대 등 특수부대를 투입해 군벌 아이디드 장군 측근들에 대한 체포에 나섰으나, 19명의 사망자를 냈고 블랙호크도 두 대나 격추됐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랙호크 다운>(2002년 개봉)은 이 전말을 정밀 묘사했다. 1994년에는 이라크 북부에서 미 공군 F-15 전투기가 조기경계경보기로부터 신호를 잘못 받아 블랙호크 두 대를 이라크 공군 헬기로 오인해 격추했다. 지난 1월2일에는 대만에서 블랙호크(UH-60M)가 추락해 선이밍 대만군 참모총장 등 8명이 숨졌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기지를 출발해 경기 평택으로 가던 주한미군 소속 블랙호크가 용산구 이촌동 한강공원 공터에 불시착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헬기가 저고도로 이촌동 주택가를 통과하자 놀란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번 불시착 사고는 일본 오키나와 도심에서 벌어진 헬기 추락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2004년 8월13일 주일미군의 수송헬기 CH-53시스태리온이 기노완시에 있는 오키나와국제대학 건물을 들이받으며 추락했다. 민간인 피해는 없었으나 대학건물이 크게 부서졌고, 구내 가로수가 불에 탔다. 기노완시는 미군 후텐마 비행장이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군용기 이착륙으로 인한 주민 피해가 빈발했던 곳이다. 주택가와 상가가 밀집한 이촌동도 미군기지와 이웃해 있다는 점에서 기노완시와 닮은꼴이다. 어느 나라이건 도심 주택가에서 ‘블랙호크 다운’이 벌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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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5:51

중국 상하이를 출발해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전일본공수(ANA) 여객기 객석에 마스크 등 의료품들이 담긴 박스들이 놓여 있다. 출처 AP 연합뉴스

지난 3월4일 인천의 자매우호 도시인 중국 웨이하이시가 마스크 20만개를 보내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확진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지던 당시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웨이하이시는 “인천시에서 보내주신 응원과 지원에 감사드리며 인천시를 돕기 위해 마스크를 보낸다”는 감사 편지도 동봉했다. 국내 감염자가 급증하기 전인 2월 중순 인천시가 웨이하이시에 보낸 마스크 2만개가 10배로 불어나 되돌아온 것이다. 일주일 뒤인 11일에는 중국 정부가 보낸 N95 등급의 방역마스크 10만장과 의료용 마스크 100만장, 방호복 10만벌이 한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등 중국 전역에 500만달러 규모의 지원에 나선 데 대한 보답이다. ‘마스크 품앗이’는 최근 서먹했던 양국 간에 모처럼 온기를 불어넣은 장면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0명 안팎으로 통제되면서 여유를 되찾은 정부가 마스크 해외지원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한국전쟁에 참전한 22개국을 대상으로 마스크 등 필요물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올해로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당초 계획대로라면 참전용사와 가족들을 한국에 초청하고 현지 위문행사도 해야 하지만, 코로나19로 왕래가 불가능한 상황을 감안했을 것이다.

경북 칠곡군은 한국전쟁 때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지상군을 보낸 에티오피아에 마스크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당시 황실근위대인 각뉴부대 6037명을 파병해 657명의 사상자를 낸 ‘혈맹’이다. 2014년부터 에티오피아와 교류해온 칠곡군은 수건을 마스크 대용으로 두른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국가와 인종,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연대와 협력을 펼치는 것은 코로나 퇴치의 정공법이다. 70년 전 동아시아의 낯선 땅에서 목숨을 바친 참전국 군인들 덕에 신생 한국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방역물품 지원으로 참전 70주년을 대신하는 것이 썩 내키진 않지만,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얄궂은 현실이다. 70년 전 우리에겐 그들의 피와 땀이 필요했고, 지금 그들에겐 마스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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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5:44

일본에서 지난해 6월 개봉된 영화 <신문기자>의 주연을 한국 배우 심은경이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영화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리관저(官邸)로 불리는 권부의 비리를 정면으로 파헤치는 신문기자 요시오카 에리카 역할에 일본 배우들이 부담을 느끼다 보니 한국 배우에게 배역이 돌아갔다는 일본 주간지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한국 개봉 때 방한한 가와무라 미쓰노부 프로듀서는 “일본 여배우에게는 전혀 출연 제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신문기자>는 아베 신조 정권을 뒤흔든 ‘가케학원 의혹’과 흡사한 사학 스캔들을 소재로 한다. 정부가 가케학원 산하의 오카야마 이과대학에 수의학부 설치를 허가하는 과정에 아베 총리가 개입한 사건이다. 스캔들에 연루된 고위 관료의 자살, 총리와 가까운 기자의 성폭력 사건(이토 시오리 사건) 등 실제 사건이 줄줄이 등장해 리얼리티를 높인다. 이렇듯 아베 정권을 정면에서 직격한 영화이다 보니 권력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고, TV홍보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문기자>에 대한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마이니치 영화콩쿠르, 다카사키 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데 이어 지난 6일 열린 제43회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작품상(후지이 미치히토 감독), 최우수 남우주연상(마쓰자카 도리), 최우수 여우주연상(심은경)을 거머쥐었다. 일본 아카데미상을 결정하는 회원 상당수는 도호(東寶), 쇼치쿠(松竹), 도에이(東映) 등 3대 영화사 사원들이다. 이 때문에 3대 영화사 작품들이 주로 수상하는 관행에 비춰볼 때 중소영화사 ‘스타샌즈’가 제작한 <신문기자>의 수상은 이례적이다.

영화를 보면 아베 정권 치하의 일본 사회를 감싼 무거운 침묵과 정치 니힐리즘(허무주의)을 깨뜨리는 데는 일본인 아닌 타자(他者)가 적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은경의 캐스팅은 이런 점에서 성공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코로나19로 한국발 일본 방문자의 입국규제를 결정한 다음날 시상식이 열린 것도 공교롭다. 지난해 수출규제로 한·일 양국 간 물자 이동을 막더니 이젠 사람의 왕래까지 끊고 있다. 심은경의 수상이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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