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신냉전으로 치닫던 지난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과 중국 지도자에 대한 호칭 격하(格下)운동이 벌어진 바 있다.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PRC)이나 ‘차이나’ 대신 ‘중국 공산당’으로, 시진핑 국가주석을 ‘주석(president)’이 아니라 ‘총서기(general secretary)’로 부르는 식이다. 총서기는 시진핑 주석이 겸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직함이다. 대중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운동을 확산시켰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하려는 일종의 ‘색깔공세’였다. 운동은 꽤 조직적이어서 지난해 5월 발간된 백악관의 대중전략 리포트에는 시진핑 주석의 직함이 모두 ‘총서기’로 표기됐다. 미 의회 공화당 의원들은 공문서에서 시 주석을 ‘president’로 표기하는 것을 금지하는 ‘적 명칭 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총서기(總書記)는 구소련 공산당의 ‘서기장(書記長)’과 동일하다. 서기장은 본래 공산당 정치국 결정에 따라 당의 행정업무를 관할하는 직책으로, 한국으로 치면 당 사무총장과 비슷하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지도자 레닌 사후 권력투쟁에서 당 서기장인 이오시프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서기장’이 당 최고지도자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됐다. ‘총서기’ ‘서기장’ ‘총비서’ 모두 ‘general secretary’로 영역되는 같은 직책이다. 이 직책이 한자문화권에 도입되거나, 번역되는 과정에서 조금씩 명칭이 달라진 것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이라도 일본 공산당은 총서기 대신 서기장을 쓴다.
북한은 1966년 조선노동당 조직을 개편하면서 비서국을 신설했고 김일성 주석이 총비서로 선출됐다. 김 주석 사후 3년 뒤인 199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총비서직을 계승했다. 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차 당 대회를 통해 그 직함을 이어받게 됐다. 2012년 부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했던 것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다. 당 조직 내에 너무 많은 위원장 직책이 존재해 김정은의 권위가 제대로 서지 않는다고 여겼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확실히 ‘총비서’는 ‘위원장’보다 어감상으로도 무게감이 있다. 그 직함에 어울릴 무게 있는 행보를 세계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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