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한밤중 정체모를 발자국 소리’...일본 총리관저 ‘괴담’은 계속된다

서의동 2013. 6. 2. 14:11

‘한밤중 관저에 군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일본 총리관저의 유령출몰 ‘괴담’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번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불을 지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일 일본 민방에 출연해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유령을 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아베 총리는 “유령은 본래 다리가 없다고 들었지만, 모리는 다리만 있는 유령을 봤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유령출몰설에 대해서는 “도시전설”이며 자신이 관저에 입주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유령출몰 때문이 아니냐는 억측에 대해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총리관저 유령출몰은 일본 정가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괴담으로, 역대 총리들중 상당수가 회고록 등을 통해 유령체험을 전하고 있다고 도쿄신문은 2일 전했다. 하타 쓰토무(羽田牧·1994년 4월28~6월30일) 전 총리의 경우 부인이 관저에서 액막이 행사를 하자 관저 정원에 군복 차림의 사람형체들이 대거 모여있는 것이 목격됐다. 하타 전 총리는 회고록에 “관저에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 것은 나 뿐 아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 부인도 쓰지 않는 방에는 모두 향을 피워놓았다고 한다”고 적었다.

 

모리 전 총리도 수상퇴임 무렵의 심야에 침실에서 자고 있다가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려 “누구냐”고 큰 소리를 치니 뭔가가 복도로 황급히 달아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없었고, 경호관도 “아무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모리 총리는 후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게 “관저에 유령이 나온다”고 충고했으나 고이즈미 총리는 보지 못했다. 

 

도쿄 나가타초(永田町) 국회의사당 건너편에 있는 총리관저는 1929년 총리 집무실 용도로 지어졌으나 1932년 5월15일 무장한 청년장교들이 관저에 난입해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 총리를 암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1936년 일본군의 청년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2·26사건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살해당한 비운의 장소이다.

 

이후 총리관저에는 ‘밤중에 군화발자국 소리가 들린다’는 등의 괴담이 끊이지 않았고, 총리들도 이 곳을 사용하기를 꺼리면서 32년간 빈집상태로 있다가 1968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 때부터 관저로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꺼림직한 이미지는 가시지 않아 사토 총리이후 18명의 총리중 6명이 관저에 입주하지 않았다.

 

아베 내각은 지난달 관저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에 대해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을 각의 결정으로 공식화한 바 있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는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물어보면 ‘그런건가’하는 생각이 든다”며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진이나 원전사고 등을 계기로 총리실의 위기관리능력이 요청되고 있는 시점에 아베 총리가 관저입주를 기피하고 차로 15분 거리의 시부야의 사저에서 출퇴근하는 것에 대해 “긴급시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