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선거 승리 ‘탄력’ 받은 아베, 개헌 등 우경화 ‘시동’

서의동 2013. 7. 22. 23:51

ㆍ국민투표법 정비 염두 전국 집회 등 사전정지 작업

ㆍ연정 파트너 공명당의 반대·주변국 시선 부담으로

일본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개헌의 시동을 걸었다. 전국에서 개헌 흐름을 만들기 위한 집회를 열고,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투표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간사장은 참의원 선거 다음날인 22일 일본 기자들을 만나 전국 각지에서 개헌 관련 집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시바 간사장은 “(자민당의) 헌법개정 초안을 놓고 집회 같은 형태로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고 산케이신문 등이 보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개헌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으로 국민투표법 정비에 의욕을 보였다. 국민투표법 정비는 민법상 성인 연령과 공직선거법상 선거권 연령(만 20세)을 국민투표법상 유권자 연령(만 18세)에 맞추는 것과 공무원의 정치 논의 참가를 보장하는 것, 개헌 이외 분야에 국민투표를 도입하는 것을 가리킨다. 

자신감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아베 신조 총리가 22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제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도쿄 | AP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6년 전 국민투표법을 만들면서 3년 내로 (공직선거법상)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낮추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며 “우선 이것부터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들로 미뤄 국민들의 최우선 관심사가 아닌 개헌 문제를 급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분위기 조성’과 사전 정지작업에 역점을 두고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는 기자회견에서 “헌법은 법률과 달라서 국회는 개헌안을 발의할 뿐이고 (찬반을) 결정하는 것은 국민”이라며 “서두르지 않고 논의를 심화시켜 가겠다”고 말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역시 이번 선거 결과로 “헌법개정이 처음으로 현실적인 정치과제로 국민에게 인식됐다”면서도 “국민들 사이에 (개헌) 논의가 성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정치권 내에서는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참의원 선거 전에 실시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22일 당선자들의 개헌에 관한 의견을 분석했다. 그 결과 당선자의 74%가 개헌에 찬성, 반대(19%)를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이 우경화 행보에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우선 국내 여론이 반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의석수를 크게 늘렸지만 참의원 단독 과반수는 달성하지 못해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의 협력 없이는 정국을 장악할 수 없게 됐다. 일본 유권자들이 자민당의 우경화 독주를 허용하는 선까지는 표를 몰아주지 않은 셈이다.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시선도 부담거리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된 문제는 더욱 어렵다. 아베는 이 문제에 대해 “정부 내 전문가회의의 논의를 토대로 공명당의 이해를 얻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최근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반기지 않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아베 정권의 우경화 행보에 쐐기를 박고 있다.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8·15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와 관련해 “아베 총리가 현명한 대응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총리의 참배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야마구치 대표는 또 “경제와 사회보장에 힘쓰길 바라는 민의가 있는 만큼 우선순위를 생각해가며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 정권, 근린외교 복원 위해 이념적 쟁점 피할 듯”

ㆍ이종원 와세다대 교수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사진)는 22일 “미국이 미·중 안정화에 중점을 두고 있고, 이런 전략이 아베 정권에 대해 억지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참의원 선거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우경화로 급선회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서 아베 정권이 헌법 개정이나 역사인식,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이념적 쟁점에 힘을 기울이면 외교갈등이 표면화되고 이것이 정권을 일거에 불안정시킬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태도에 주목했다. “미국은 일본의 헌법 개정 문제는 내정문제라고 판단하지만, 아베 정권이 이를 급히 추진하면서 동아시아 불안정 요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정권 내부에서는 선거 승리로 장기집권의 길을 튼 만큼 헌법 개정 등 이념적 쟁점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념적 현안은 내년 하반기 이후로 미뤄둘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아베 정권은 우선 경제정책에 주력할 것이라고 이 교수는 전망했다. 그는 “내년 초까지 경제를 안정시키고 성장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장기집권을 위해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라며 “경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민당 내에서도 반발이 일면서 정권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베 정권은 파탄 상태에 있는 근린외교를 복원하기 위해 한국, 중국과 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외교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이념적 쟁점에 대해 당분간 신중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