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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특혜와 책임-한국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서의동 2016. 12. 11. 17:20

 연세대 송복 명예교수는 흔히 보수로 분류돼 있어 그다지 그의 주장에 대해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그의 책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시루, 2014년)을 보고 다시 보게 됐다. 

<특혜와 책임>은 올해 8월에 낸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상층의 '천민성'을 다양한 각도로 지적하고,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한국사회가 한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역사적 동력이 된다고 강조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한마디로 '특혜'받는 사람들의 책임이다. 특혜받는 사람들의 책임은 세가지로 나타난다.의 세가지는 '희생'이라는 말 하나로 축약되고 그 희생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첫째 목숨을 바치는 희생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혹은 심각한 안보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앞장서 '내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누온 특혜의 대가다. 둘째 기득권을 내려놓는 희생이다. 기득권은 특혜를 선점해서 오래 차지하고 이쓴 것이다. 나라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 그 기득권을 미련없이 내려놓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셋째 배려와 양보, 헌신의 희생이다. 평상시 일상생활에서 남을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며 이해관계를 떠나 전심전력으로 남을 돕고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남앞에 언제나 겸손하고 소위 '갑질'을 하지 않는 것이다. (10~11p, 일부 중략)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느 나라든 그 나라 상층의 행태이고, 상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짐으로 상류사회를 형성한다. 하지만 우리는 상층은 있지만 상류사회가 없고, 고위층은 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 송복은 한국에는 상층은 있지만 뉴하이, 뉴리치 밖에 없다는 점을 거주지, 언행 등에 대한 분석 등을 통해 도출하고, 그들의 천민성도 드러낸다. (이하는 눈에 띄는 내용 발췌)

(영국) 이튼스쿨을 가보라. 교정이 바로 무덤이다. 나라를 위해 의무를 다하다 죽은 졸업생들의 시신이 그 교정에 묻혀 있다. 1,2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이튼스쿨 졸업생이 비공식기록으로 5000명이라니, 기가 막히지 않는가. 

이튼스쿨 졸업생이래야 한해 고작 250명 정도. 그렇다면 20년분이 몽땅 나라를 위해 죽어 주었다는 소리다. 이뿐이랴. 옥스퍼드 대학의 한 작은 칼리지인 크라이스트 처치에 들어서면 회랑처럼 긴 방의 양쪽 벽에 1,2차 세계대전 때 죽은 졸업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대충 세어도 한 벽에 200명에서 250명. 그 작은 칼리지에서 적어도 4~500명이 장교로 나가서 앞장서 싸우다 죽음으로 자기 임무를 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지난 300년 동안 전쟁에서 한번도 져본 일이 없다. 국가가 위기에 처해있을때 내 나라의 장래가 백척간두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먼저 나가 '의무를 다 한다. 그리고 죽는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때문이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어느 정권이나 병역의무 이탈자가 장관의 경우 대개 40%가 넘는다. 적은 경우도 30%는 전후한다. 일반 국민 병역 면제자 평균 4%에 비하면 많게는 10배, 적게는 최소한 7~8배가 넘는 장차관 그리고 고관들이 '높은 자리는 우리가, 죽을 자리는 국민이' '좋은 자리는 내가, 힘든 자리는 너희들이'하면서 희희낙락하고 있다. 그야말로 희한한 나라가 바로 이 나라다. (90p)


(조선시대)양반, 그 지배층은 그들끼리는 그들을 삼키려는 적대국보다 더 가열하게, 더 가혹하고 더 맵고 더 격렬하게 싸웠다. 

(중략) 선조때 율곡 이이가 올린 상소문을 보면 싸워도 그 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안건이든 의논이 있을 때마다 말이 너무 날카롭고(論議太銳), 일을 시작하면 그 손 쓰는 것이 너무 급하고 과격하고(急激下手), 그러면서 벌리는 싸움은 집더미가 완전히 무너지고 기왓장이 와장창 깨어지도록 격렬하다(土崩瓦解)고 했다. 

그 DNA가 오늘날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그 DNA가 오늘날 우리의 '공감의 사회심리'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닌가. (196P)



총론적 시각에서 우리 지도층을 보면 첫째 너무 이기적이다. 적나라하게는 탐욕적이다. 왜 우리 지도자층은 자기 본위의 이기주의자들일까. 더 나아가 재물을 탐하는 탐욕주의자들이 되었을까. 너무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너무 가난한데서 자기의지, 자기재능, 자기능력 하나로 지금 이 자리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맹자>를 읽으면 어떤 사람들이 고위 관리가 돼서는 안되는가를 명백히 말해주는 글귀가 있다. 한마디로 먹고 살기 위해,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관리가 된 사람은 아무리 유능해도 고위관리를 시켜서는 안된다는 명언이 있다. 그런 사람은 예외없이 '탐위모록(貪位慕祿)한다는 것이다. 둘째 비인격적이다. 인격적 수련이 전혀 되지 않았다. 셋째로 표현력 결핍이다. 자기의사의 구체화 실력이 너무 낮다. 어휘가 너무 빈곤하고 어휘선택이 너무 협소하고, 어휘의 질이 너무 저수준이다. 행정고시든 사법고시든 시험에 필요한 어휘는 너무 제한적이다.의미가 깊은 어휘, 의미가 다의적인 어휘, 그런 복잡한 어휘들은 시험용이 아니다. 그래서 시험합격후 좋은 관리가 되려면 인문학 공부를 다시 열심히해야 한다. (257~25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