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서의동의 사람·사이-'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박점규][전문]

서의동 2017. 3. 16. 11:25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김영민 기자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박점규(46)를 만난 지난 6일 “콜 수를 못 채웠다”며 저수지에 몸을 던진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 여고생에 관한 사연이 보도됐다. ‘콜 수’로 불리는 고객 응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초과근무를 해야 했고, 주변에 고통을 하소연해왔다는 기사 아래에 수천개의 댓글이 달렸다.   


“휴대전화 통신회사를 바꾸려고 전화했다가 상담원에게 30분간 붙들린 적이 있다. 바빠 끊겠다고 하니 울먹여서 안쓰러웠다. 기사를 보다 울컥했다. 이 여고생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평생 노동력을 팔아 살아가야 하지만 노동자의 권리가 뭔지, 억울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 배웠더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촛불집회 초기인 지난해 11월4일부터 광화문광장을 지켜온 박점규를 만나니 여고생 이야기부터 꺼냈다. 우리 곁의 청년들이 언제 직면할지 모를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점규는 광화문을 거점으로 넉 달여 동안 비정규직이 처한 상황을 발신해오고 있다. 현대·기아차, 쌍용차, 기륭전자, 유성기업, 콜트콜텍, 파인텍(스타케미칼) 등 7개 사업장 노동자들과 함께한다. 광장에는 투쟁 현황과 사진들을 전시한 간이 갤러리가 있다. 시민들은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 심각했던가’라는 표정으로 전시물을 둘러본 뒤 모금함에 조그만 성의를 담는다. 

 

특검 수사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정권에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되고, 정권이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아 챙긴 대가로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왔던 정황이 드러났다. 이제 촛불이 우리의 일터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보다 더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 ‘노동의 하청화’에 제동은 과연 걸릴 것인가.


박점규는 “한국 사회에서 급속한 ‘일터의 하청화’가 진행된 데에 야권 진영도 책임이 있음을 자각하고, 대선주자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좀 더 천착하길 바란다”고 했다. 일자리 부족에 대한 해법으로는 ‘근로시간 단축’을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 탄핵이 ‘일터의 민주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노조파괴’를 엄벌하고,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같은 독소조항을 없애 노동의 단결권을 높여야 한다”면서 “노동계도 비정규직을 끌어안는 데 더 분발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의 목소리 귀기울이는 시민들 늘어”


- 광화문 광장 농성을 시작한지 벌써 넉달이 지났다.   

“두번째 촛불집회가 열리기 전날 천막을 쳤다가 경찰이 뺏어갔는데 2차 집회날 아침부터 시민들이 몰릴 때 다시 설치했다. 텐트촌 농성자들은 아침 9시 촌민회의로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는 자정이후에는 근처 커피숍 화장실을 쓰는데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 촛불집회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많이 참가하고 있나. 

“계산을 해볼 수는 없지만, 광장 시민들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밤 9시가 넘어도 광화문역 9번 출구로 많은 이들이 계속 나오더라. 9번 출구는 세종대왕 동상 앞이라 광장에 올 사람만 이용한다. 유심히 보니 대체로 젊은 층이고, 다 촛불을 하나씩 받아 나오더라. 아마 토요일 오후까지 근무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아닐까 싶더라. 그렇게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많이 참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탄핵사태를 거치면서 노동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바뀌고 있다고 느끼나.  

“촛불집회 초기에는 국정농단 사태와 특권에 대한 분노, 박근혜 퇴진 요구로 광장이 뒤덮여 다른 이야기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이 거론되자 ‘노동이 촛불에 숟가락을 얹으려 한다’는 말도 들렸다. 요즘은 노동자를 상대로 한 과도한 손배·가압류를 금지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청원에 서명하러 줄을 길게 설 정도로 노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늘어났다.”

 

- 특검수사 결과 대기업들이 정권에 돈을 주고 노동법 개정을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인턴-계약직-하청-파견으로 평생의 일자리를 비정규직화하려는 게 박근혜 ‘노동개혁’의 핵심이다. 자본은 숙련된 비정규직을 필요로 했고 그래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허용업종을 뿌리산업까지 확대하는 법 개정을 원했던 거다. 재벌들이 돈 바치며 노동문제를 부탁하니 대통령이 거리에 나와 노동개혁 1000만명 서명운동을 했던 거다.”


■“고용노동부는 기업 노무과 수준”


박점규는 전국 28곳을 돌며 한국 노동현장을 그려낸 현장르포 <노동여지도>를 2015년에 출간했다. 굴뚝, 크레인, 건물옥상 농성이라는 극한투쟁으로 가야 사측이 비로소 협상에 응하는 눈물겨운 투쟁들이 기록돼 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다르지 않다.    

@김영민 기자

 

- 지금 비정규직 상황은 어떤가. 

“현대차 사내하청 불법판결에도 불구하고 ‘하청화’는 오히려 암암리에 더 번져가고 있다. 기아차 모닝의 감지센서와 전자제어장치를 만드는 만도헬라에 최근 노조가 결성됐는데 이곳은 생산직 노동자 345명이 2개의 파견회사에 나눠 소속된 ‘100% 비정규직’ 공장이다. 현대차나 현대모비스 같은 자동차산업 생태계 꼭대기에서 불법이 시정되지 않으니 계열사나 하청업체는 아예 비정규직 공장으로 시작한다. 만도헬라 노동자들은 토요일은 쉰 적이 없고 365일 중 명절 포함해 겨우 보름 쉬었다더라. 연간 노동시간이 4200시간으로, 세계최장 수준인 한국 평균노동시간(2100시간)의 2배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불법파견으로 몇번이나 고발·기소됐지만 검찰조사도 받지 않고 있다. 한국의 생산현장은 무법천지에 가깝다.”

 

- 만도헬라 공장은 불법인 건가. 

“현대차는 사내하청을 합법도급이라고 주장해오다가 불법판결이 나자 ‘정규직과 섞여 일하면 불법이고, 비정규직끼리만 따로 일하면 불법이 아니다’라고 주장을 바꿨다. 근데 지난 2월7일 서울고법이 그것도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즉 현대차, 모닝, 현대모비스, 만도헬라 통째로 불법상태다.”

 

- 산업생태계의 맨 꼭대기에서 불법이 아래로 확산된다는 거네. 

“집에 웅진코웨이 수리기사가 정수기를 고치러 온 적이 있는데 ‘하청업체 소속이냐’고 물어보니 머뭇거리다 ‘삼성이 그렇게 하는걸요. 그보다 작은 기업들이야 뭐’라더라. 삼성제품 수리기사 95%가 비정규직이니 작은 기업들은 오죽할까. 우리 사회가 예전엔 기술자를 대우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밑바닥 인생이 됐다. 지난 15~20년간 벌어진 일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그랬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이걸 더 극심화했다.” 

 

- 고용노동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박근혜가 대선공약으로 ‘법원이 불법판결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직접고용하겠다’고 했는데 고용노동부는 ‘법원판결’을 ‘대법원 판결’로 해석하더라. 게다가 대법원 판결까지 났지만 일부에 대해서만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고 그나마 면죄부를 줬다. 대표적인 게 한국GM 창원공장인데 대법의 불법판결이 난 뒤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라인을 분리한 만큼 적법도급’이라고 발표했다. 근데 법원이 이것도 불법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고용노동부는 기업의 노무과 수준이다.”

 

- 하청화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고, 사법부만 제동을 거는 형국이네. 

“하청화가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보다도 더 빨리 번지는 것 같다. 만도헬라가 노조를 만드니 파견회사 사장이 업체를 폐업하더라. 하청화의 확산으로 노조를 만들기가 일제시대 독립운동보다 몇배는 어렵게 됐다. 그런데 만도헬라의 노조결성은 촛불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서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폐지해야” 

 

박점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일터의 하청화’ 물꼬를 튼 만큼 야권도 여당 못지 않게 반성이 필요하지만 야권 유력주자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워 한다.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이 시민단체 ‘반올림’을 귀족노조 같다고 했다가 취소한 일은 단순한 해프닝일까. 

 

- 바른정당 유승민의 노동관련 공약을 전향적으로 평가했던데. 

“이재명, 심상정 후보와 유승민 의원은 비정규직을 왜 줄일 수 없는지를 정확히 보고 있더라. 기업들이 노동자를 기간제 사용제한 2년에 맞춰 자르고 새로 채용하는 ‘되돌이표’ 현상, 기업들이 일자리를 간접고용으로 돌리는 ‘풍선효과’ 때문이라는 걸. 문재인 후보도 제대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노동현장이 ‘악마의 일터’로 변한 건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만든 파견법, 비정규직법 때문인데 그에 대한 반성이 안보인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사회 불평등의 핵심인데도 천착하는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후보가 비정규직 공장에 가본 적은 있는지 궁금하다.”

 

-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에는 일자리 파괴가 심각해질 것이니 일각에서는 유연안전성 모델을 해법으로 들기도 한다. 

“일자리 문제의 해법은 노동시간 단축밖에 없다고 본다. 노동시간 단축은 인류사회의 진보의 척도다. 독일노동자들이 1년 일한다면 우리는 1년6개월 보름 일한다. 조선업이 망하지 않으려면 숙련노동자들을 붙들어야 하는데 현장인력의 70%이상이 사내하청이다. 이들이 지금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업황이 좋아지면 배를 타거나 음식점하는 이들을 다시 부를건가. 정부와 경영진이 먼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일자리를 보장하겠다. 다만 재원이 안되니 하루 9시간 노동을 6시간으로 줄여 고난을 같이 극복하자’고 제안해본 적이 있는가. 기본소득이나 사회보장 확충도 중요하지만 먼저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필요하다.”

 

- 노동시간 단축의 일환으로 현대차 근로시간이 주야 맞교대에서 주간 2교대로 바뀌기도 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었다. IMF때 현대차가 36일간 파업하다가 1만명이 해고됐다. 그 사태로 ‘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벌자’는 잘못된 교훈이 학습됐다. 월급이 줄어드는데 대한 저항이 오히려 커저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으로 줄더라도 일자리를 늘리는 대신 잔업이나 특근으로 돌려 월급이 더 올라간다.”

 

- 대기업·공공부문의 노조 조직률은 높지만 중소기업은 조직률이 2%도 안된다. 

“유성기업이 엄청난 돈을 써가며 노조파괴에 나섰지만 한국은 이런 걸 범죄로 여기지 않는다. 쌍용차 김득중 지부장이 국회의원을 만나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요청하니 한 여당의원이 “그럼 노조 안하면 될 거 아니냐”고 하더란다. 시민과 노동을 분리시키고, 노동을 이기주의 집단으로 몰아붙인 결과로 만들어진 편견이 노조결성을 어렵게 한다. 유성기업 사례를 보면 노조파괴 행위에 대해 검찰은 기소도 안하다가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이자 고작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나중에 법원이 1년6개월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게 자본에 대한 검경의 태도다.” 

 

- 노조파괴 행위를 엄벌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인가. 

“노조활동은 투표권 같은, 당연한 권리다. ‘별나고 극렬한 사람들만 노조를 한다’는 인식의 장벽을 깨야 하고 ‘노조를 깨는 순간 감옥간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제도면에서는 산별노조의 교섭요구에 사용자들이 반드시 나오도록 노동관계법을 강화하고, 대표적인 악법인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조항이 없어져야 한다. 노조가 생기면 사측이 어용노조를 만들어 교섭권을 빼앗기 때문이다. 산별노조와 사용자가 체결한 협약을 해당 산업 전체에 적용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프랑스는 노조조직률이 한국과 별 차이 없지만 협약적용률은 70%가 넘는다. 이렇게 되면 노조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높아질 수 있다.”

 

-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한국에선 적용되기 어려운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본래 유럽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차별을 없애기 위한 취지다. 한국의 비정규직 해법으로는 ‘사용사유’를 제한하는게 우선이다. 다만 계절적 노동이나 자발적인 단시간 노동 등 불가피한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해볼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년중 9달 이상만 일하면 상시적 업무로 보고 무기계약화했는데 ‘일터의 하청화’라는 대한 물길을 공공부문에서 조금씩 돌리기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처럼 협력적 노사관계를 위한 제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필요하다. 근데 경영자들이 기업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게 문제다. 위기마다 정부가 자동차산업을 지원하려고 새차 보조금도 주고, 고환율 정책도 폈다. 정책으로 기업을 보호하고 세금으로 기업 곳간을 채운 걸 생각하면 경영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기업들이 노조에 경영자료조차 안보여준다. 그런 식으로 해서 쌓인 비자금을 최순실에게 갖다준 거다.”

@김영민 기자

 

■“대기업 노조에 돈키호테 같은 위원장이 필요” 


박점규가 속한‘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는 2008년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94일 단식투쟁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박점규는 비정규직 문제에 주력하기 위해 2011년 금속노조를 나와 합류했다. 그가 쓴 <노동여지도>는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으며, ‘노동르포라이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많이 팔렸느냐고 묻자 “<직업여지도>라고 이름을 붙였다면 더 팔렸을지 모르겠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란 단어가 갖는 장벽을 실감했다”고 답했다.  

 

-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끌어안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여전히 있다.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박근혜 퇴진투쟁에 민주노총은 헌신해 왔다. 그럼에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일터의 하청화를 막지 못하면서 민주노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20년이 불평등의 광장을 넓히면서 이런 노력들이 잘 안보이는 거다.” 

 

- 이런 지적들이 노동계에 대한 비판의 초점이 되고 있다.  

“IMF이전에는 대공장 노동자들이 경총의 가이드라인을 깨고 임금인상 투쟁을 벌이는 자체가 노동자 계급 전체의 권리를 높이는 효과를 거뒀지만 노동시장의 분절화로 전체 노동계급과 상관없는 싸움이 돼 버렸다. 그런 만큼 민주노총이 더 노력해야 한다.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는 비정규직 노조에 좀더 힘을 부여하고 이들이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가 비정규직의 지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7명이라면 4명은 비정규직 노조대표를 임명하는 파격이 필요하다. 대공장에 돈키호테 같은 노조위원장이 등장해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정도면 충분하니 우리 힘을 비정규직과 함께 하는데 쓰자’고 외치면 좋겠다.”  


※3월11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보다 조금 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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