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윤태웅 대표가 지난 21일 고려대 신공학관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논란과 관련해 “전문가가 시민적 정체성을 자각해야 혜안을 갖게 된다”며 “논의를 ‘시민과 전문가의 대립’구도로 몰고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김영민 기자
‘산업 입국’의 구호가 메아리치던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시대는 지났지만 한국 사회의 과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경제를 떠받치는 부속품’쯤에 머물러 있다. 최근 들어 과학서적 출판붐이 일면서 과학에 대한 지식욕이 커졌지만 과학자들이 어떤 ‘회로’를 밟아 사실을 발견했는지에는 관심이 적다. 신약이 개발돼 얼마를 벌어들일 거라는 뉴스가 뜨거나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등장할 때 잠깐씩 관심이 모일 뿐, 과학은 여전히 일반과 거리가 먼 특수한 지식체계이다.
과학의 ‘열매’에만 열광하고 과정에는 주목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황우석 사태’는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과학기술의 합리적 사고 방식과 문화가 시민의식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근대화’라고 부른다면 한국은 여전히 근대화의 도상에 있는 건 아닐까.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논란을 보면 과학자들 스스로 ‘자폐성’을 강화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형편이 그리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 정책의 화두’로 제시한 것에서 이런 분위기가 읽힌다. 황우석 사태 관련 박기영 순천대 교수를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하려다 철회하는 사태로 성찰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의 네트워크(ESC)’ 대표인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윤태웅(56)을 지난 21일 만났다. ESC는 더 나은 과학과 세상을 추구하기 위해 지난해 6월 결성된 과학기술인들의 모임이다. 윤태웅은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지만 그럴수록 ‘창의력을 중시하고, 좋은 질문을 하고, 의미 있는 문제를 정의하는’ 기본이 중요해진다”면서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본으로 돌아가 기초과학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신고리 5·6호기 논란과 관련해 “원전 문제는 ‘공학’이란 좁은 시야로만 들여다보면 안된다”며 “전문가들이 시민적 정체성을 갖고 자기 분야만이 아니라 주변까지 살피는 혜안을 기르지 않으면 시민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수학적 사고는 공화국 시민의 덕목”
ESC은 과학기술의 합리적 사유방식과 자유로운 문화가 한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과학이 시민의 공공재가 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를 창립선언문에 담고 있다. 과학기술학자 뿐 아니라 저술가, 언론인, 예술인, 일반 시민 402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과학문화·청년과학기술인·크라우드펀딩·열린정책·해외과학기술인·과학교육 등 6개의 위원회를 두고 활동중이다. 독서 소모임과 지역 모임도 열고 있다.
- ESC 활동을 보면 ‘체험적 과학활동’이 눈에 띤다. 과학기술의 합리적 사유방식을 일반이 좀더 접할 기회를 제공하자는 차원인가.
“과학은 보통 확실한 결과, 지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역시 결과물에만 주목하는 거다. 더 중요한 건 그런 결과, 즉 과학적 지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런 논리적 과정을 살펴야 한다. 과학적 사유 방식을 경험해 보도록 하자는 것이다. 수학은 완벽한 논리체계를 추구하는 데 ‘수학은 이런거야’라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게 아니라 그런 논리를 전개해보는 체험을 해보자는 거다. ‘빛보다 빠른 건 없다’는 과학적 결론보다 이런 걸 어떻게 알아냈는지가 내겐 더 신기한 문제였다. ‘발견의 맥락’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거다.”
- 서울시립과학관이 이런 체험교실을 열고 있다.
“좀더 여러 곳에 과학관이 생기고, 체험교실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과학자들이 학예사나 과학큐레이터로 근무하게 되면 일자리도 생길 수 있다. 예컨대 과학관을 100개 짓고, 200명의 과학자를 학예사로 고용하는 식으로. 4대강 사업에 쓴 돈을 떠올리면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일일 거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얼마나 공감을 받을 것인가인데, 과학을 ‘산업을 위한 도구’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유방식이나 문화로 본다면 해봄직하다고 본다. 과학·수학적 사고는 자유롭고 비판적인 공화국 시민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글쓰는 과학자, 강연하는 과학자들중 ESC회원이 꽤 있지만 그건 그대로 가되,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을 해보자고 한 게 ‘체험적 과학활동’이다. ‘어른이 실험실 탐험’이라는 이름으로 6차례 했다. 어린이가 느끼는 호기심을 가진 어른들이‘어른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충실한 실험실 체험을 하려면 많아야 20명 정도가 한계여서 접점을 넓혀가기 쉽지 않다. 초파리 유전학 실험에 참가한 중년의 물리학 교수가 현미경 관찰을 하며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작 아이들은 학원을 돌아야 하는 현실인데.”
윤태웅 ESC대표 @김영민 기자
- 크라우드 펀딩으로 과학연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트렌스젠더 건강연구’를 지원한 것도 주목할 만 하다.
“연구비 2000만원 중 크라우드 펀딩으로 1000만원을 조달할 생각이었는데 목표보다 많은 1640만원이 펀딩됐고, 360만원을 기부로 조달해 지금 연구가 순항하고 있다고 한다. 고려대 김승섭 교수가 연구하는데 여러 트렌스젠더들이 설문에 기꺼이 참여해 250건 이상의 데이터가 모였다고 한다.”
- 펀딩 대상 연구과제로 트렌스젠더 건강문제를 선택한 건 건강보험 적용대상이 아니니 정부도 신경쓰지 않는 사각지대였기 때문인가.
“캐나다와 덴마크 등 32개국에서는 호르몬 요법은 물론이고 성전환 수술비용까지 공공의료체계를 통해 지원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트렌스젠더들은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서 힘들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건보대상이 되지 않으니 치료를 전문적으로 해줄 수 있는 이도 많지 않고, 그래서 여러 문제가 생기는 거다. 우선 이런 현실을 드러내 그들이 얼마나 건강상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환기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의료보험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제안하려는 취지다. 한국사회에서 필요하지만 정부나 기업이 지원하기 어려운 과제를 시민의 힘으로 지원하는 의미가 있다. 그 첫 시도가 성공했을 때의 감동이 꽤 컸다. ‘다음스토리펀딩’을 통해 펀딩을 모집했다.”
■“전문성이라는 권위, 잘못 사용되는 경우 많다”
- ‘공화국’, ‘시민 민주주의’ 같은, 과학자들에게서 듣기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더라.
“과학분야에서는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이 논쟁할 때 대학원생이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면 교수도 꼼짝없이 수긍할 수 밖에 없다. 과학분야는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한 논리가 권위이니 함부로 우기기 어려운 거다. 개념적으로만 본다면 다른 분야에 비해 좀더 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있는 거다.”
-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공계가 현실적으로 연구소처럼 움직이거든. 프로젝트를 받아 기한을 맞춰서 일해야 하고, 교수는 연구비를 따오고 학생들은 연구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개념적으론 훨씬 더 민주적일 수 있는데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더 권위주의적이 되는 측면이 있는 거다.”
- 인문·사회과학 분야 보다는 민주주의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잘 발현되지 않는 구조라는 건가.
“과학에 관해 이야기할 때 과학에만 해당되는 얘기인지, 학문일반에 관한 이야기인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학문 분야이건 논리와 합리성이 중요할 것이니. 내가 하는 이야기의 꽤 많은 부분이 과학일 뿐 아니라 학문 일반일 수 있다.”
- 과학자가 사회적으로 발언할 때 어떤 자격으로 하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
“과학자가 본업을 할 때는 과학적인 태도를 유지하겠지만, 시민으로서 활동할 때는 자신의 선호와 가치에 따라 움직인다. 문제는 과학자들이 이걸 스스로 구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과학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자기기만에 빠지기도 한다. 꽤 많은 교수들이 ‘동성애 반대 서명’에 참가했는데 이들이 과연 ‘과학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참가한 걸로 봐야 할까. 그렇게 보기 힘든게 (주장이)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의대 교수는 ‘동성애는 치료가능한 병’이라고 하더라. 잘 모르는 이들은 전문가가 이야기하니 ‘그런가 보다’ 할 거 아닌가. 하지만 동성애가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직업능력 등의 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미국정신의학회가 정신과 진단목록에서 삭제한 게 벌써 40여년전의 일이다.”
-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이런 구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듯 하다.
“그래서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내가 발언할 때 ESC대표로 할 건지, 그냥 공대 교수로 활동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일반 시민으로 말하는 건지의 문제다. 신문칼럼 정도라면 몰라도,‘교수선언’쯤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학교수이기 때문에 부당하게 권위가 얹혀지게 된다.”
- 얼마전에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조가 탈원전 반대 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이런 점과 연관성이 있는 건가.
“명백한 이해충돌이다. 토론회를 개최한 노조는 조합원 상당수가 원자력연구원 소속이라고 하더라. 토론회를 마치고 성명까지 냈으니 대단히 잘못된 거다.”
- ‘전문가의 윤리’ 문제와도 연관되는 것 같다.
“전문성이라는 권위에 부당하게 호소하는 오류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이해충돌’ 문제도 만연해 있다. 이해충돌이 있다고 해도 발언할 수는 있다고 보지만 ‘이런 저런 점에서 이해충돌 여지가 있으니 감안하고 들어달라’는 단서를 달아야 한다. 원자력공학자들이 원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게 대단히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의 이해와는 무관하고 중립적인 양 ‘한국사회는 탈원전이 아직 시기상조’라고 하고 있지 않나. 오히려 자신의 이해관계를 함께 이야기하는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과학계 수평적 소통 필요”
-ESC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산재보험 문제에 주목하고 있던데 실제로 필요성이 심각한 건가.
“실험실에서 몇번의 폭발사고 같은 큰 사고가 있었다. 그런 뒤에 연구실안전법이 생겨 연구기관이 연구활동 종사자보험에 의무가입하도록 돼 있다. 크지 않은 사고의 보상엔 별 문제가 없지만 사망사고나 앞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다칠 경우에는 미흡하다. 그래서 시민권을 보장하는, 산재보험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 거다. 그들은 학생이면서도 노동자이기도 하거든. 그런데 현실적으로 재정 등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 ‘개념적으로 옳으니 하자’고 주장할 수만은 없다. 보험의 보장수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 과학기술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잘 환기되지 않는 듯 하다. 주로 거론되는게 연구비를 둘러싼 트러블 정도가 고작인 것 같은데 왜 그럴까.
“과학을 도구로만 보는 시각 때문이 아닐까. 사람을 인적자원으로 보는 경향이 이쪽 분야에서 특히 심했던 것 같다. 결과물에만 관심이 집중된 반면 결과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나 ‘인간활동으로서의 과학’이라는 관점이 없는 거다. 가끔씩 드러나는 이야기들도 연구부정 같은 좋지 않은 맥락일 경우가 많다. ‘악당’이 등장하고 학생이 ‘피해자’가 되는 사례들이다. 이걸 ‘악당’대 ‘착한 피해자’의 구도로만 보고, 악당만 응징하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보통사람들끼리도 상처를 주고 받기 쉬운 구조가 문제인 거다.”
윤태웅 ESC대표 @김영민 기자
- 특별히 나쁜 사람이 없는데도 상처받기 쉬운 구조라는 건 무슨 뜻인가.
“대학원생과 교수간에 갈등이 생기면 학생이 참거나 학교를 떠나는 것외엔 별 방법이 없다. 갈등을 조정해주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교수가 연구논문을 출판할 때 제자들을 제1저자, 제2저자로 이름을 올리잖아. 그런데 어떤 학생은 ‘내가 훨씬 더 일을 많이 한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을 제1저자로 앉혔다’며 교수가 공정하지 않다는 불만을 갖게 된다. 반면 교수는 ‘일은 저 학생이 많이 했지만 이 학생이 더 창의적인 기여를 해서 제1저자의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저자를 정하는 자리에 연구자들을 모아 합의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발생하지 않을 오해다. 특별히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 사례이지만 갈등이 생겨도 조정이 되지 않으니 증폭되는 거다.”
- 어쨌건 연구결과를 내기 전까지는 한팀으로 일한 건데.
“사실 어떤 직장도 구성원간에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일상적으로 생길 수 있는 갈등이 증폭되지 않도록 조정해 주는 제도장치가 마련돼 잘 소통하는 문화가 구축돼야 할 텐데, (그런데는 관심없이) 너무나 숨가쁘게 앞만 보고 뛰어가니까 문제인 거다.”
- ESC의 창립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도 있는 건가.
“‘조직내 민주주의’와 ‘수평적 소통’에 더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 내가 어떤 시민단체를 지지해서 회원으로 있는데 나도 모르는 성명서가 나와 당혹했던 적이 있다. 그 성명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해도 단체가 성명을 낸 걸 회원이 모른다는 거는 이상하잖아. 그런데 성명을 내는 주체들은 ‘우리 단체 회원이라면 모두 동의할 내용이고, 사안이 시급하다’는 이유를 댄다. 당면과제가 늘 시급하다고 생각하니 ‘과정의 문제’가 소홀하게 취급되는 거다.”
ESC는 창립이후 ‘박기영 교수 과학기술본부장 임명반대’ 등 3차례 성명을 회원들의 동의를 거쳐 발표했다. “ESC의 이름으로 성명을 내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에 대한 합의가 미처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태가 터졌다. ‘회원 과반의 응답을 받고, 응답자의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성명을 낼 수 있다’는 지침을 만들고 회원들의 의사를 묻는 중이다. 회원들이 이런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체험하는 셈이다.”
- 수평적 소통을 위해 회원들끼리는 이름에 ‘님’자를 붙인다고 하던데.
“많이 정착한 거 같다. ESC에서 만난 젊은 회원들은 내게 아주 편하게 ‘태웅님’이라고 부른다. 오히려 40~50대 교수들이 어려워 하더라. 호칭의 수평화는 흥미로운 경험이다. ‘학번’이란 단어도 별로 안쓴다. ESC에 여성회원 비율이 30% 가량 되는데 ‘과학기술’ 단체로는 높은 편이다. 오프라인 행사에는 참가자 절반 가까이가 여성일 정도이다. 청년·여성회원들의 참여도가 높은 데는 수평적 소통문화도 덕분인 듯 하다.”
- 왜 이런 활동을 하게 됐나.
"과학기술자로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과학은 ‘벽돌 함께 쌓기’같은 건데 결국 집단지성과 연결된다. 하얀 가운입고 외로운 실험실에서 홀로 연구하는 이미지와 실제는 다른 거다. 그래서 집단지성이니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해왔는데 내가 속한 공동체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총선때만 되면 대과연(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이 이공계 출신들을 많이 공천해 달라고 성명을 내는데 그 논리가 너무 어설퍼 안타까웠다. 그런 이유로 좋은 공동체를 희망해 왔다. 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세상에 나가 자긍심을 느끼길 바란다. ‘공돌이’나 ‘정치공학’ 같은 건강하지 않은 표현이 나올 때마다 가만히 있지 말고 문제제기했으면 한다. ‘정치공학’의 ‘공학’은 ‘술수’라는 의미 아닌가.”
■“기초과학 수준이 문화역량의 지표”
- 한국의 과학기술은 기초과학의 탄탄한 바탕위에서 첨단의 성과가 나오는 식이 아니다. 추격형 경제시스템, 국가주도형 과학기술의 한계인가.
“중화학공업이나 원자력산업도 그렇고, 처음부터 그렇게 단추가 끼워진 거다. 지금은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많지만.”
- 패러다임이 잘 안바뀌고 있는 것 같다. 정부 예산에서 연구·개발(R&D) 예산비중이 높은데도 ‘원천기술’은 많지 않다.
“이제는 선택과 집중위주의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논의가 많은데 이를 위한 교육과제로 ‘창의성이 필요하고 질문을 잘하고 소통능력이 중요하다’고 하잖아. 사실 이건 굳이 4차 산업혁명을 걸고 들어가지 않아도 예전부터 강조해왔던 이야기거든? 그래서 결국 지금이야말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분야로 보자면 기초과학, 기초학문이다.”
- 기초과학에 투자를 더 해야 한다는 뜻인가.
“기초과학의 가치에 대한 고민이 사치스러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국가역량이 그런 고민을 할 시대가 된 거다. 당장 어디에 써먹을 결과가 나올지 모를 연구에 세금을 투자하는 문제이니 시민적 합의가 필요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런 합의를 할 시대가 됐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소설가나 음악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듯 기초과학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접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초과학의 수준이 우리의 문화역량의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런 인식이 커진다면 (이들에게) 연구비가 조금 더 배분될 수 있지 않을까. 수학자들이 자기 책상에서 오랫동안 한가지 문제를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정도로 말이다.”
윤태웅 ESC대표 @김영민 기자
- ‘박기영 사태’를 보면 아직 그런 인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황우석 사태 관련자가 반성없이 임명되려 한 건데.
“결격사유가 있지만, 개인적으론 그분이 실제로 일을 잘할 ‘논리적 가능성’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임명됐다면 과학공동체의 토대가 되는 가치가 너무나 많이 훼손될 수 있다는게 반대이유였다. 설령 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대체불가능한’ 인물은 아니었을 거다.”
-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문재인 정부는 잘할 수 있는 걸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약점도 있다. 그 약점을 과학기술 분야에서 드러낸 것 같다. 과학기술 정책의 화두를 4차 산업혁명으로 정한 것도 어색하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의 영역에서 주로 논의된다는 점을 빼곤 구체적인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정보통신기술은 논리적 층위로 따지면 과학기술의 하위개념이다. 그러니 4차 산업혁명이 과학기술정책을 좌우하는 건 논리적으로 이상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ESC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박기영 사태때) 실수를 했지만 문제제기를 수용해 현명한 판단을 했다. 앞으로도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ESC가 불편하게 할 가능성이 있지만, 문제제기를 귀담아 들을 거라는 희망은 있는 거다.”
■“과학자 이전에 먼저 시민이 돼야”
- 신고리 5,6호기 건설여부의 공론화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아마추어들이 뭘 안다고 결정하냐’며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원전문제는 ‘공학’이란 좁은 시야로 보면 안되고, 전문성 만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문가는 먼저 시민이 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자기 분야를 들여다 보는게 즐거워서 그것만 보는 경향이 생긴다. 시민적 정체성을 떠올리라는 거는 그래야만 주변까지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 사회에서 이런 성찰이 필요하다. 전문가 사회가 시민의 신뢰를 잃으면 안된다. 그런데 일각에서 ‘시민과 전문가의 대립’이라는 구도로 몰아가려 한다. 아주 불편한 프레임이다.”
- 황우석 사태이후에도 언론플레이와 정치권 로비로 연구비를 확보하는 행태가 없어지지 않았다는 과학자의 글을 봤다. 정부와 과학기술계간의 관계가 여전히 건전하지 못하다는 자탄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세대(교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들어 세상을 정확히 볼 자신이 없으니 더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리영희 선생의 절필 선언을 접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쌓은 경험과 역랑도 있지만 반면, 과거의 경험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ESC안에서 많은 청년들을 만났는데 뛰어난 이들이 많더라. 총기 넘치는 청년들이 판단한 대로 한번 가보자는 생각을 하는게 합리적인 것 같다.”
- 한국의 청년과학인들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의 실험실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문화다. ‘내일’이 있던 시절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내일이 불투명하다. 특히 생명과학 분야는 학위를 받아도 자리잡기 쉽지 않다. 평생고용 시대가 아니잖아. 유학생 시절 즐겁게 공부하는 외국학생들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처럼 밤늦게까지 실험실을 지키지 않더라. 내일을 위해 현재의 일상을 실험실에서 소모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청년과학인들의 지금 삶이 행복해야 한다는 거다.”
- 일상이 행복해지려면 실험실에서도 민주주의와 수평적 소통이 필요하다는 거지?
“수평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한데, 이건 캠페인으로 풀 문제는 아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정량적 지표만을 바탕으로 하는 경쟁시스템에 대한 반성과 개혁이 없는 한 풀기 어렵다.”
- 무슨 말인가.
“평가주기를 길게 하거나, 지나치게 양적지표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거나 하자는 거다. 1년에 논문 몇편 쓰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면 일 안할 거라고 생각하면 방법이 없는 거다. 순진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신뢰의 복원이 필요하다.”
- 신뢰가 없다는 건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제대로 평가할 자신이 없으니 숫자나 정량데이터로 평가하는 식이 되는 것 같다.
“어떤 나쁜 상황을 상정해 그걸 방지하기 위한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그 제도를 우회할 수 있다. 나쁜 사람을 응징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사람을 보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보통사람들조차 갈등을 심하게 하는 구조라면 그 구조 자체의 문제도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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