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김영민
올해 말로 집권 만 5년을 맞는 아베 신조 정권의 ‘우향우 질주’는 이제 무감각해질 정도로 익숙한 뉴스가 돼버렸다. ‘제2의 패전’으로 불린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일본 사회가 표류하던 2012년 말, ‘일본을 되찾겠다’는 구호 속에 등장한 아베는 경제를 안착시키는 한편으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 만들기를 추진해왔다. 무기수출 3원칙 폐기, 집단자위권 법제화, ‘공모죄’ 법안 제정이 속속 이뤄지며 ‘전후(戰後) 평화주의 체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아베 정권 3년 전인 2009년 일본 민주당 정권이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내놓았던 것에서 보면 ‘급변침’이라 할 변화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우익의 진격이 본격화된 걸 감안하면 급변침은 오히려 민주당 쪽이었을까.
‘재일조선인’인 도쿄경제대 교수 서경식(66)은 일본에 얼마 남지 않은 ‘광야의 목소리’ 중 하나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출간한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에서 ‘리버럴’로 통칭되는 일본 진보진영의 책임을 신랄하게 물었다. 서경식은 평화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천황제와 미·일 안보조약을 용인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거론하면서도 식민지 책임 문제에 대한 인식은 빈약한 리버럴의 ‘이율배반’ 혹은 ‘애매함’이 우익의 대두를 막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지난 10일 서울시내 호텔에서 방한 중인 서경식을 만났다. 그는 “아베 정권 5년의 일본은 전체주의, 파시즘화가 급속히 진행돼온 기간”이라면서 “이런 흐름을 방치하면 동아시아 무력분쟁 같은 파국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일본 내 진보진영에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일본을 견제하고 갱생시킬 주체는 주변국뿐이며, 특히 한국이 비판하고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도 했다. 지금의 일본을 ‘파시즘화’로 보는 그의 진단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일본 내 소수자로 살아온 서경식의 감각은 갱내 유독가스를 알리는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예민하고, 날카로웠다.
■“국민 의사 반영할 정치 주체가 없다”
-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한 지 올해 말로 5년이 되는데 그간 가장 큰 변화는 뭔가.
“한마디로 전체주의, 파시즘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지금 단계를 파시즘으로 규정할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3·11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파시즘화를 전망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불행히도 예측대로 가는 것 같다.”
- 동일본대지진이 파시즘을 불렀다는 이야기인가.
“대지진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자 국가적인 재앙을 맞아 국민적 단결이 필요하다며 ‘일본 힘내라’라는 구호가 메아리쳤다. 물론 일본 국민 대다수가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지만 가해자 역시 일본 아닌가. 국가 정책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지었으니. 아베 총리가 도쿄 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원전사고가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도 일본인들은 지지했다.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해 분위기를 바꾸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으로 재일조선인 등 외부자를 배척하고 있다.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이후 치안유지법이 제정됐고 군국주의로 돌입했는데 당시와 유사한 흐름이 보인다.”
일본에서는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한 ‘조직범죄처벌법’ 개정안이 큰 논란을 빚었다. ‘공모죄’로 통칭되는 이 법은 테러 등 중대 조직범죄의 경우 사전 모의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반체제 인사 탄압에 악용됐던 군국주의 시대 ‘치안유지법’의 부활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 ‘공모죄’ 법안 성립이 논란이 컸다.
“법무상이 과거 치안유지법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고, 사죄도 실태조사도 하지 않겠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조선독립 운동을 국체변혁의 죄라며 탄압했고, 옥사한 시인 윤동주도 이 법으로 처벌받았다. 마르크스가 ‘역사가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했듯이 전전(戰前)의 과오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 공영방송 NHK에 우익작가가 경영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언론 통제도 강화됐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언론이 실제로 위축됐다고 보는가.
“위축이라기보다 알아서 추종하는 느낌이 든다. 한국 KBS는 기자들이 저항도 하지만 일본은 그런 움직임이 없다. 진실을 보도하고 권력에 저항하는 기본 태도조차 잃어버린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 일본의 평화주의를 지탱해온 노조도 저항성이 약화된 것 같다.
“냉전 해체기인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노조들이 협조주의 노선을 표방한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로 흡수된다. 일교조(일본교직원노동조합), 국철노조, 자치로(전일본자치단체노동조합·공무원 노조)가 사회당의 큰 기반이었는데 국철은 JR로 민영화되면서 약화됐고, 일교조도 조직률이 80%대에서 20% 이하로 떨어졌다. 야당인 민진당의 기반인 전력노조는 원전 재가동에 찬성한다. 이러니 야당도 아베 정권의 원전재가동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아베 총리나 자민당이 나쁘다’는 차원을 넘어 내면까지 전체주의가 침투해 있는 거다.”
- 한국은 전력회사 노조가 원전 건설에 찬성하지만 시민들의 목소리로 원전 건설을 공론화하고 있으니 그 점에선 일본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
“가고시마현의 경우 방송기자 출신 정치인이 센다이 원전 가동을 막겠다며 출마해 지사가 됐는데 당선된 뒤 얼마 안돼 말을 바꿨다. 이런 식이니 정치 허무주의가 만연하고 정권이 제맘대로 하는 상황이 됐다. 더구나 민주당 정권이 3년만에 실패했잖아.”
- 2012년 여름엔 도쿄에서 17만명이 모여 탈원전 집회를 할 정도로 분위기가 고조되기도 했었다.
“지금도 여론조사를 하면 절반 정도는 원전 재가동 반대의견이 나오지만 이를 반영할 정치 주체가 없다는 게 문제다. 안보법제도 여론조사를 하면
과반수가 반대하지만 정치권이 이런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다.”
- 원전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작은 나라론’이 대두했었다. 성장론 대신 안전한 나라로 가자는 내용이었다. 원전이 필요한 건 성장주의 때문이기도 할 것인데.
“일본이 패전이후 어떤 국가를 지향할 것인가 하는 논의중에 ‘소국과민(小國寡民)’론이 있었다. 가와카미 하지메(河上肇)라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교토대 교수였는데 전쟁 때 치안유지법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이 학자가 스위스 같은 비무중 중립국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 비슷한 논의가 패전 후 몇년간은 있었다. ‘제2의 패전’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이런 논의들이 짧은 순간 다시 나타난 거다. 새로운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고, 당시 독일 메르켈 정부가 탈원전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영향을 미쳤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김영민
서경식은 ‘부흥’이라는 구호가 갖는 ‘불온성’에 주목한다. “간토대지진 때도 ‘부흥’ 바람이 불었고, 그 뒤안길에서 사회주의자, 조선인들이 탄압당했다. 패전 후에도 ‘부흥’ 구호 아래 전쟁 책임을 묻는 노력은 (전 국민이 반성하자는) ‘1억 총참회’ 논리로 대충 넘어가버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힘을 모아야 할 마당에 무슨 소리냐’며 ‘비국민’ 취급을 받는다. 게다가 아베 정권은 원전을 수출까지 하고 있다.”
- 어떤 일본인에게 ‘방사능 오염’ 문제를 꺼내니 ‘일본인들끼리는 이런 얘기 해본 적이 없다’고 해 놀란 적이 있다. 왠지 해서는 안된다는 ‘공기’가 사회를 지배하는 듯하다.
“헨미요의 소설 <1937>에 대한 감상을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에 쓰기도 했지만,‘공기를 읽는다’는 게 그들의 특징이다. 말하기 전에 자기검열하고 ‘자숙’한다. ‘이거 다르지 않으냐’고 하면 ‘어색한’ 사람이 되고 고립된다. 어릴 적부터 이런 공기를 호흡하며 자란다. 방사능뿐 아니라 천황제도 마찬가지다. 군사독재 정권처럼 무력으로 위협해서 말 못하는 게 아니다. 이런 현상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일본 진보, 결정적 국면엔 좋지 않은 쪽으로 간다”
서경식은 일본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반동기’에 접어들었고, 이런 퇴행을 막지 못한 리버럴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리버럴들은 전쟁과 식민지배의 책임을 철저히 파고드는 것은 꺼리면서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이율배반성’을 보인다. 이런 심성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 리버럴 독자층이 많은 아사히·마이니치·도쿄신문, 월간지 ‘세카이(世界)’의 구독자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지성계의 풍경도 많이 바뀐 듯하다.
“아사히신문과 ‘세카이’는 전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언론이다. 하지만 아사히신문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서도 천황제를 용인하고 미·일 안보조약을 긍정하는 ‘애매모호’성을 보여왔고 1989년 쇼와(昭和)천황이 서거했을 때 이런 속성을 극명히 드러냈다(당시 ‘미국이 천황을 면책한 것은 타당했다’는 사설을 실었다). 일본 리버럴의 애매모호함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좋지 않은 쪽으로 간다. 아베 정권이 북한에 대해 압박 일변도로 나가지만 비판하는 논조도 거의 안 보인다.”
- 북한 문제에 대해 일본 언론들이 강경해진 이유로 2002년 고이즈미 총리 방북때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시인하면서 일부가 이미 사망했다고 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하던데.
“북한의 잘못이라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문제는 납치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했을 때 외교당국간에 어느 선에서 해결하자는 논의가 있었을 것이고, 고이즈미 총리도 절충 의사가 있었지만 돌아와 보니 여론이 강경해지면서 손을 놔버린 거다. 그런 분위기에 아사히 같은 리버럴 매체까지 쓸려버렸다.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 등 정치인들이 1990년 방북한 이후 10년 가량은 양국관계를 대화로 풀려는 과도기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거고, 일본의 진보세력도 여기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 적군파 같은 학생운동의 좌경화가 진보운동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 것 같다. 사상 스펙트럼의 왼쪽 끝이 극단주의로 흘러 괴멸하면서 덩달아 리버럴의 영향력도 약해진 것 같다.
“동의한다. 하지만 서독에도 당시 적군파가 있었고, 학생운동 좌경화가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건 아니었다. 극단까지 갔다고 해도 인내심 있게 성찰해 새롭게 방향을 잡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회피하고 등을 돌려버리는 게 일본의 특징이다.”
- 일종의 투항주의인가.
“투항했다면 굴욕감을 느껴야 하고, 그 굴욕감을 사상·문학적으로 성찰하면서 방향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냥 ‘사고정지’가 돼버렸다. 1970년대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시대가 지나고 일본은 세계 2위의 부국이 됐다. 학생운동하던 이들이 ‘기업전사’가 됐다. 집도 자가용도 생기고 자녀들 대학에 보내면서 ‘투항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상주의를 꿈꾸던 과거는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 애매모호한 태도가 되는 거다. 내가 전공투의 마지막 세대인데 내 세대의 일본인들이 대부분 그렇다. 호인(好人)이나 전체로 보면 보수주의자다. 그런 이들이 도쿄전력에서, 렌고에서 일하고 있다.”
■“일본을 갱생시킬 주체는 한국”
서경식은 한국의 촛불혁명에 대해 일본 사회의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고 했다. “박근혜 탄핵을 두고 일각에선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을 시위로 탄핵하는, 민주주의가 미숙한 나라’라는 비판도 나온다.”
- 왜 이런 비판이 나오는가.
“일본인들이 그런 의식을 갖는 건 천황제 탓이다. 군주제가 유지되니 ‘나는 귀족이고, 너희는 평민’이라는 사고방식이 여전하다. 1960년대만 해도 ‘엄청난 침략전쟁으로 남의 나라에 피해를 준 근거가 천황제이니 하루속히 없애야 한다’는 가토 슈이치 같은 지식인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리버럴 논객들이 천황주의자를 자처하는 움직임마저 있다. 진보세력조차 ‘신민화’되는 거다. 한국은 자꾸 정권교체가 되니 어찌보면 힘든 나라이지만 권력교체가 되니 관료들도 두려움을 갖게 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100년 이상 이런 상태가 유지돼 왔기 때문에 세상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상상력이 없고, 세상을 바꾸려는 힘이 나오지 않는다.”
-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본의 리버럴들은 ‘현실 여건이 어려운 만큼 백지화는 바람직하지 않고 합의된 것을 보완·발전시키자’고 한다.
“일본 리버럴의 문제는 조선인, 오키나와인 등 소수자를 앞장세우고 자신들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태도다. 그들은 ‘일본이 독일 같은 자기변혁은 할 수 없으니 한국인들이 앞장서 싸우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식민지 시대부터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훨씬 많은 희생을 당했다. ‘일본의 자기변혁’이라는 스스로가 해결할 과제를 외면하고 있다. 위안부 합의의 본질은 ‘돈 줄 테니 입을 닫으라’는 것이다. 진정한 합의라면 교과서에도 실리고, 할머니들도 두려움 없이 일본에 가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인들은 ‘언제까지 사과를 계속해야 하느냐’고 하는데, 사과는 피해자가 납득할 때까지 하는 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이 반동기에 들어섰다는 그의 진단에는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2009년 집권한 민주당 정권이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내놨고, 한일병합 100년인 2010년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총리 담화를 발표하는 등 동아시아 평화를 지향하는 일정한 흐름이 아베 정권 이전까지 이어졌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센카쿠열도 분쟁,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실 확인, 북한 핵·미사일 위기 등 동북아 갈등 고조로 흐름이 끊겼고, 동일본대지진의 충격이 가해지면서 일본의 ‘내향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김영민
- 한일병합 100년 간 나오토 총리담화 등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이후 과거사에 대한 해결노력이 있었던 것은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2010년까지는 한일관계가 반동기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지금 이야기는 일면의 진실이다. 무랴아마 선언을 계기로 우익들의 반격이 본격화됐다. ‘새역모’가 결성되고, 일본회의가 만들어졌다. 이런 흐름의 대표자가 아베였고 지금 총리까지 올라갔다. 그런 긴 흐름으로 보면 반동기이다. 물론 무라야마 총리 이후 오부치 총리, 간 총리의 담화는 노력의 결과물이지만 그런 담화들이 사회적으로 정착되지 않고, 혐한이 횡행하는 세상이 왔다.”
“미야자와 총리나 가토 관방장관 같은 자민당내 비둘기파와 호소카와 총리 같은 이들이 90년대초 냉전체제 붕괴이후 95년까지의 짧은 시기에 아시아와의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그런 흐름이 이어졌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무라야마 총리 담화이후 우익들의 반격이 너무 강해졌다. 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맞서 싸우지 않는 한 이 난관을 넘어갈 순 없다고 본다. 한일관계에서 눈앞의 쉬운 성과에 타협하기 보다는 일본 국민을 다시 교육하고 역사를 다시 성찰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 일본 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나.
“잡지 기고 청탁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고립감도 느낀다. 출판계도 요즘은 ‘혐한론’이나 ‘일본찬미’류가 잘 팔린다. 일본은 이렇게 훌륭한 나라라든가, 태평양전쟁은 아시아 해방전쟁이었다는 주장 등을 담은 책들이다.”
- 한국에서는 일본 여행이 붐을 이루고 일본 음식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으로 취업하려는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다.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그것과 일본 정부를 긍정하는 것은 다르다.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의 최대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은 알아둬야 한다.”
- 조선학교 무상화 교육이나 재일동포 지방참정권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가.
“기대할 수 없다. 올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간토대지진 학살 추도문을 보내지 않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한국 때리기’가 득이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재일조선인을 내부의 타자로 만들어 탄압하는 거다. 더구나 고이케가 선출되던 도지사 선거 때 ‘헤이트 스피치’(증오발언)를 일삼는 재특회(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 대표가 출마해 11만표를 얻었다. 수도권 재일조선인 인구보다 많은 득표수다.”
- 일본의 행보에 대해 어떤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나.
“양심적인 시민의 의견을 수용할 정치 주체가 생기고 이들이 개혁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럴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냉정하게 보더라도 파국적인 사태로 갈 가능성이 있다. 동아시아 무력분쟁 같은 거다. 전면전이 될지 국지전이 될지 모르지만. 미국이 나서면 일본이 최우선으로 따라갈 거고, 아베 정권은 그런 준비를 다 해놨다. 일본 국민 대다수는 평화를 좋아하지만, 자신들의 안전만 지켜지면 된다고 생각하니 막아낼 것 같지 않다.”
- 밖에서 보는 일본인에 대한 인상과 사뭇 다른 것 같다.
“개개인은 호인들이 많고 평화주의자들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는 얼마든지 전체주의화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여행 가보니 질서도 잘 지키고 거리도 깨끗해 일본인들 좋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나치 시대에도 거리는 깨끗했다. 히틀러가 부랑자, 집시들 다 청소해버렸으니.”
- 누가 일본을 견제할 수 있을까.
“일본을 견제하고 갱생시킬 주체는 주변국뿐이다. 결국 한국이 비판하고 제동을 걸어야 한다. 내 비판이 너무 심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위태롭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도 난관이 많겠지만 위안부 재협상을 하고, 과거사 문제도 적극적으로 거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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