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복원됐지만 한반도의 평화는 북·미 협상이 최종 보증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들어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북·미 대화에도 전향적인 듯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미국은 지난 25년간 북핵협상 실패의 책임을 북한으로 돌린다. 북한이 최근 몇년간 핵능력 고도화에 집착하면서 국제사회도 이런 인식이 굳어졌다.
북핵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물론 북한에 있다. 하지만 지난 25년을 돌이켜보면 과연 북한에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게 하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적어도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던 2006년 이전 만 놓고 본다면 미국의 책임이 크다. 이 시기에 ‘제네바 합의’와 ‘9·19합의’ 같은 북핵해법의 ‘완결판’이 등장했지만 그 때마다 신뢰를 깨면서 파국을 유발한 건 미국쪽이었다.
북한와 미국간의 핵대화는 1988년 미국의 정찰위성이 북한 영변 원자로 부근에 건설중인 재처리 시설을 확인하면서 시작됐다. 핵무기 제조를 서두를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북한은 1991년부터 3년간 핵 재처리를 중단했고, 핵원료량과 핵시설 리스트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요구수준 이상으로 제출했다. 핵문제를 북·미 관계의 지렛대로 쓰기 위해서였다. 이 기간 중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는 미국에 “미군이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주둔할 수 있다”며 관계 정상화를 제안했다.
미국은 북한의 제의를 수용하는 대신 IAEA의 특별사찰 수용을 요구하며 압박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선언으로 맞서면서 긴장이 고조되자 북·미간 협상의 문이 열렸다. 1993년 말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이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하고, 북한은 핵사찰을 수용하는 ‘동시행동’에 합의했지만 미국은 얼마안가 ‘사찰이 완료돼야 훈련을 중단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북한은 1994년 5월 영변 원자로에서 핵연료봉을 반출하는 ‘벼랑끝 전술’로 대응했다. 극대화된 위기는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6월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면서 진정됐고, 그해 10월 북한핵 동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를 맞바꾸는 북핵해법의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제네바 합의’가 체결됐다.
‘뉴욕타임즈’ 논설위원을 지낸 한반도 전문가 레온 시걸이 북핵 초기국면을 지켜보면서 내린 평가는 눈여겨볼 만 하다. “(미 행정부의 다수가) 북한의 폭탄제조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강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북한은 강압정책이 시행되지 않을 때만 핵무장을 포기하는 조치를 취했다.”(저서 <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 북한붕괴론이 유포되자 미국은 합의 이행에 늑장을 부렸다. 클린턴 행정부의 뒤를 이은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고,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이후 북핵문제는 ‘6자 회담’ 테이블로 옮겨갔고, 2년여간의 협상 끝에 2005년 9월19일 북한의 핵포기 및 북·미 관계 정상화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합의 직후 미국 재무부가 북한의 달러위조 증거를 찾는다며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계좌를 동결하면서 합의는 잉크도 마르기 전에 좌초했고, 북한은 1년 뒤 핵실험을 강행한다.
2.13 북미 합의에 따라 2008년 6월27일 북한이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북한의 1차 핵실험을 분석한 결과 핵폭탄 재료는 고농축우라늄이 아닌 플루토늄이었다.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자 동결된 원자로를 다시 돌려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농축우라늄 핵개발’ 의혹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달러위조 의혹도 1년 넘게 증거를 찾지 못하자 미국은 계좌동결을 풀고 북한 자금을 돌려줬다. 미국의 불충분한 의혹제기가 한반도 평화정착의 금쪽같은 기회를 두번이나 날려버렸다.
핵실험을 분수령으로 북핵사태는 더 복잡해졌다. 이번엔 북한이 신뢰를 깼고, 한국 보수정권도 걸림돌이 됐다. 북·미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맞바꾸자는 오바마 행정부 초기의 구상은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좌절됐고, 북한은 2012년 2.29 합의를 얼마 안가 깨버렸다. 이후 오바마는 북핵을 방관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핵무력에 더 집착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도 북한에 불신이 커 접점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핵과 안전보장을 맞바꾸는 북핵해법의 기본틀은 25년전과 동일하다.
북·미 협상에서 동맹국이자 당사국인 한국의 입장과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당연히 한국 여론도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이 핵능력을 키웠다’는 팩트없는 담론이 여전히 횡행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북핵을 감싸고 있는 오해의 껍질을 벗겨내고 ‘팩트체크’를 제대로 해봐야 할 시점이 됐다. (2018년 1월18일자 지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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