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경향의 눈] 불가역적인 남북관계의 요건

서의동 2019. 4. 30. 17:57

금강산을 찾은 남측 관광객들 경향신문DB

서울에 거주하는 네덜란드 청년이 지난 연말연시에 북한여행을 다녀온 뒤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렸다. 베이징에서 단둥을 통해 열차편으로 방북한 청년은 2018년 제야(除夜) 10만명이 참가한 김일성광장 설맞이 축하행사에서 불꽃놀이, 드론쇼와 축하공연을 북한 주민들과 함께 즐겼다. 남포, 사리원, 판문점 북측지역도 참관했다. 국내 한 방송사는 그의 방북영상을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를 이달 초 방영했다. 지난 7일 평양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는 40여개국에서 참가한 1000여명이 시민들의 격려를 받으며 평양거리를 달렸다. 한 일본인 참가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까우면서 먼 나라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일본 방송들은 평양시내에 늘어나고 있는 전동자전거와 태양광 패널을 소개했다. 아베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자유롭게 북한을 드나들며 달라진 현지사정을 체감하고 있다. 외국인들에게는 열린 방북길이 한국인들에게는 꽉 막혀 있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복원돼 정상회담이 3차례나 열렸다. 비무장지대 전방관측초소(GP)시범 철수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넘어서는 ‘전인미답’의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에 견줘 남북관계의 ‘봄기운’을 피부로 느낀 이들은 많지 않다. 민간차원의 교류가 제한돼 ‘훈풍’이 번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시대에는 연인원 200만명이 금강산과 개성을 다녀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은 2000년이지만 이미 1998~1999년에 16만명이 금강산을 관광했다. 북한땅을 밟아보고 북녘사람들을 만난 이들이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뒷받침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 2년간 민간교류는 복원되지 않은 채 주로 ‘당국자들만의 리그’만 펼쳐졌다. 대북제재가 한층 강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가능한 범위에서라도 민간교류를 개방하고 지원해야 했다. 지난해 두 정상은 4·27판문점 선언에서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선언 이후에도 민간교류와 인도적 대북지원의 빗장은 열리지 않았다. 당국 간에는 군사적 긴장완화 같은 굵직한 합의들이 쏟아져 나온 반면 남북교류는 빈약한, 불균형이 지속됐다. 북한의 준비부족도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커보인다.

 

대북지원 단체들은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은 이명박 정부 초기 때보다도 후퇴했다고 지적한다. 통일부는 민간 대북지원 사업에 대해 ‘웬만하면 일단 보류하고 보는’ 식이었다고 한다. 어떤 민간단체는 통일부가 대북지원을 위한 제재면제 절차를 미적거리자 직접 유엔을 찾아가 해결할 정도였다. 정부의 ‘선관후민(先官後民)’식 태도에 대북단체의 불만은 비등점을 넘은 지 오래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요즘 비판받는 인사문제만큼이나 대북정책에서도 사람들 눈높이에 무심한 것 같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만명의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백두산을 함께 오르는 장면에 많은 이들은 가슴 뭉클해 했다. 하지만 이런 ‘간접경험’만이 반복된다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공허한 울림에 그칠 수도 있다. 민간이 북한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기회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 직접체험을 통해 남북화해 의지가 커지게 되면 북·미협상에 따라 대북여론이 냉온탕을 오가는 일이 줄어든다. 노태우 정부가 7·7선언에서 남북인사의 교류와 해외동포의 자유왕래를 보장하는 파격조치를 취한 것처럼 민간의 방북문턱을 대폭 낮추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북·미 핵협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천수답(天水畓)’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에도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여파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남북관계를 미국의 태도에 종속시키려는 북한의 태도는 유감천만이지만, 북에게는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로 보였을지 모른다. 

 

비핵화 협상은 긴 여정이고, 남북관계가 북·미 협상의 자장(磁場)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다면 5년마다 바뀌는 정권하에서 진정한 남북화해는 요원해진다. 감상적 민족주의로 폄훼할 일이 아니다. 어떤 나라도 국경을 맞댄 이웃과는 ‘선린우호’가 기본 정책 아닌가. 정부가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불가역적인 상태로 만들려는 의지가 있다면 민간교류를 이 상태로 둬서는 안된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12일 시정연설에서 “북남관계를 지속적이며 공고한 화해협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확고부동한 결심이라고 했다. 그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2019년 4월18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