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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마피아·아베 총리, 탈 원전 막으려 가짜뉴스 유포”

서의동 2019. 8. 3. 18:53

2018.05.21 18:58

서울 환경영화제 참석차 방한한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왼쪽), 영화 <태양의 덮개> 프로듀서 타치바나 타미요시가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후쿠시마 원전 다룬 ‘태양의 덮개’ 서울환경영화제 출품···당시 일본 총리 간 나오토 방한

 

7년 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일본 정부와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긴박했던 대응 과정을 다룬 영화 <태양의 덮개>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열린 서울환경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공개됐다.

 

후쿠시마 사고를 다룬 영화는 100여편에 달하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사고 대응 과정을 본격 추적한 영화는 <태양의 덮개>가 처음이다. 당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비롯한 관료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등 사실기록에 방점이 찍혀 있다.

 

영화제 참석차 방한한 간 전 총리와 <태양의 덮개> 프로듀서 다치바나 다미요시(橘民義·64)가 20일 서울극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했다. 간 전 총리는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을 추진하던 나를 끌어내리려고 당시 원전 추진세력들이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렸다”며 “당시 자민당 의원이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총리도 가짜뉴스를 퍼뜨린 장본인”이라고 밝혔다.

 

서울 환경영화제 참석차 방한한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왼쪽)가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 영화에는 도쿄전력이 정부에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아 사고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장면이 부각돼 있다.

“도쿄전력은 정보를 주지 않은 것은 물론 가짜뉴스를 흘리기까지 했다. 대표적인 게 두 가지다. 도쿄전력은 당시 사고 원전의 ‘멜트다운’(노심용해) 사실을 몇 달간 감췄다. 도쿄전력 사장이 직원들에게 ‘멜트다운’이란 용어를 쓰지 말라고 지시한 건데 나중에 ‘간 총리가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렸다. 당시 NHK가 이 가짜정보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드라마화하기도 했다.”

 

- 또 하나는 뭔가.

“사고 초기에 냉각수가 떨어지자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해수를 주입했다. 그런데 사고 두 달 뒤인 2011년 5월21일자 요미우리신문이 ‘간 총리 지시로 해수 주입이 55분간 중단돼 사태가 악화됐다’고 1면 톱으로 보도했다. 이는 하루 전인 5월20일 아베 신조 당시 자민당 의원이 메일매거진을 통해 퍼뜨린 가짜뉴스다.”

 

- 왜 이런 가짜뉴스가 유통됐나.

“원전 추진세력들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조속히 재가동하고 싶었다. 그런데 동일본대지진 이후 여진이 잦아 불안이 커지던 5월6일에 내가 수도권과 가까운 하마오카(浜岡)원전을 가동 중단시키자 ‘간 총리를 이대로 두면 원전들이 속속 중단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낀 듯하다. 그래서 도쿄전력과 자민당이 언론과 합세해 나를 끌어내리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던 것이다. 자민당은 실제로 그 다음달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 논란은 지난 3월 국회에 출석한 도쿄전력 사장이 ‘간 총리가 해수 냉각 중단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 ‘가짜뉴스’임이 확인됐다.”

 

- 사고 대응이 늦어진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커뮤니케이션 부재도 있었지만 이런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리라곤 아무도 생각조차 못했던 만큼 대비가 안돼 있었던 것이 컸다. ‘안전신화’에 안주했던 거다. 그나마 저 정도에서 그친 것은 신의 가호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 사고를 계기로 ‘원전마피아’에 대한 비판이 일었지만 지금도 그들의 파워는 여전한 것 같다.

“그래도 절대 권력은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내 원전 54기 중 7년이 지난 지금도 5~6기만 재가동되는 것은 탈원전 세력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이 큰 역할을 해 원전 가동을 둘러싼 소송에서 도쿄전력이 거의 예외 없이 패배했다. 후쿠시마 사고가 법관들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인다.”

 

간 전 총리가 소속된 입헌민주당은 여타 4개 야당과 협력해 지난 3월9일 ‘원전제로기본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등 일본 내 보수·혁신을 아우르는 탈원전 추진세력들과 힘을 모으고 있다. 간 전 총리는 “다음 총선은 이 법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 <태양의 덮개> 제작에 어려움은 없었나.

(다치바나) “간 총리 역할을 맡을 배우를 물색하는 데 애를 좀 먹었지만, 그래도 꽤 알려진 배우가 맡아줘 힘이 됐다. 정치인들은 다 실명을 썼지만 도쿄전력만 ‘도비전력’으로 개칭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상영을 못하게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기 때문이다.”

 

-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다치바나) “시중 영화관, 주민상영회 350회, 비디오 대여점 등을 통해 5만~6만명 정도가 봤으니 독립영화로는 꽤 관객이 든 편이다. 공개된 지 2년가량 지난 지금도 주민상영회를 하고 싶다는 의뢰가 온다. 영화를 보고 ‘실상이 이랬구나’ ‘역시 원전은 안된다’는 반응들이 많다. 많은 한국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원전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사고 이후 한국에서도 탈원전 여론이 높아졌지만 지난해 ‘신고리 3호기’ 건설 계속 여부를 놓고 벌인 공론조사에서 계속 건설로 결론이 났다.

“원전을 대신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산시키지 않으면 탈원전 운동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은 편이다. 한국의 기술력 등을 감안하면 5~6년이면 재생에너지 비율이 10%까지는 올라갈 수 있다.”

 

- 한국은 기상여건이 자연에너지 보급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에서도 예전엔 그런 논리가 통용됐다. 30여년 전에 도쿄 근처의 미야케섬에 풍력발전기를 견학하러 간 적이 있다. 도쿄전력이 2기를 세웠는데 몇 년 뒤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며 철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의지할 건 원전뿐이라는 인식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 보여준 뒤 철거한 게 아닌가 싶다. 기술력이 발전하고 있어 기상여건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태양광 발전을 하기 어려운 곳은 지구상에서 남극과 북극 두 군데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