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5. 14:37

출처 연합뉴스 

한국은 개방형 통상국가다. 남북 분단과 전쟁이 없었다면 다른 형태의 발전 전략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1960년대 수출입국(立國)으로 방향을 정한 이후 수십년의 세월을 거치며 좋건 싫건 틀이 굳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주요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과격한 형태의 경제협정을 체결하면서 시스템을 한껏 열어젖혔다.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올라탄 것이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보호무역주의가 대두하면서 이 전략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이런 한국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몇 겹의 충격을 받아야 하는 것은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갖는 숙명이다. 통상국가는 물자와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야 기회가 생기지만, 접촉에 의해 확산되는 감염병은 이를 차단한다. 전 지구적으로 구축된 연결 회로를 타고 번지는 감염병은 한국엔 치명적인 도전이다.

 

감염병이 발생하면 대개의 정부는 입국제한이라는 수단부터 동원하게 마련이다. 시민들의 공포 확산을 막고 정권이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손쉬운 선택이지만, 감염병 확산을 일시 지연시킬 뿐 궁극적 대책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내수기반이 빈약하고 감염병 이후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개방형 통상국가에서 이런 선택을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가 개방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면서 감염병 확산을 막아야 하는 험로를 택한 것은 불가피했다. 발원지인 중국발 입국제한논란부터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지만 보수언론과 야당의 집요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개방원칙을 유지한 채 대대적 조기 검사·진료, 동선 추적 등 적극적 방역으로 불길을 잡아가고 있다. 코로나19의 본격 확산 두 달 만에 한국의 방역은 세계 각국이 상찬하는 롤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선별진료 같은 궁즉통(窮則通)의 지혜도 세계로 확산됐다. 지난 15일 캐나다의 제안으로 열린 6개국 외교장관 전화협의는 한국식 방역모델을 전파하는 자리가 됐다.

 

하지만 돌파해야 할 난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실물경제는 수요·공급 양쪽에서 침체로 향하고 있다. 증시가 대폭락을 거듭하면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복합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 금융시장의 높은 개방성 탓에 대외 충격이 발생하면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리스크를 져야 한다. 외국 자본에는 현금인출기(ATM)나 다름없다. 독일과 프랑스가 국경통제에 나서는 등 각국이 참호를 파고 감염병과의 진지전에 들어갔다. 내수기반이 있는 나라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기동전을 생명으로 하는 통상국가 한국엔 지극히 불리하다. 코로나19를 한국이 먼저 이겨낸다고 해도 각국 간 시차를 감안하면 세계 경제의 회복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다. 세계 경제가 U자형 회복을 하려면 3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엄혹한 세월을 견디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가까스로 코로나19가 물러가도 감염병은 주기적으로 닥쳐올 것이다. 사스(2003), 신종플루(2009), 메르스(2015)6년 간격이었지만 코로나195년 만에 찾아왔다. 2015년 지카바이러스가 삼림파괴로 숙주인 이집트숲모기가 사람과 접촉하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창궐했듯이 세계적인 환경파괴 추세를 고려하면 주기가 더 짧아질 가능성이 크다. 감염병뿐일까? 다음 위기는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재앙이 될 수도 있다. 가뭄과 홍수, 슈퍼태풍, 산불과 폭염 등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재앙이 임계점을 넘어설 경우 농산물 수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10년 러시아의 가뭄에 따른 밀 생산량 급감은 이듬해 중동의 민주화 시위라는 정치격변까지 몰고온 바 있다. 한국은 제조업 상품 수출을 위해 농업을 희생시킨 결과 곡물자급률이 23%에 불과하다. 이런저런 글로벌 충격이 닥칠 때마다 한국은 제1선에 서서 그 충격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코로나19의 태풍이 지나간 뒤 세상 풍경은 꽤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성찰하고 반문해야 할 시기도 올 것이다. 세계화의 ()의 효과가 커져가는데도 개방형 통상국가라는 국가전략은 여전히 정답인가. 눈물을 머금고 세계화의 풍상(風霜)에 맞서 전력질주해야 하는 숙명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내수를 키우고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쪽으로 경제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을 내야 한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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