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생각은 무릎을 탁치게 하는 발랄함 뿐 아니라. 보통사람들은 잘 건드리지 않는 대목에까지 칼을 들이대는 신랄함에 있다. 보통 기득권이 있거나 하는 사람들은 언론에 대해 이렇게까지 씹지 않는다. 그의 언론 비판은 거의 진실에 가깝다.(미디어 오늘 12월18일 기사 인용)
‘88만원 세대’의 공동저자인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이 지난 10일 이 연구소 창립식에서 돌출 발언을 했다. 이사장인 이계안 전 민주당 의원 등 이 자리에 초청된 정치인들의 경악하는 표정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날 우 소장의 강연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섹스는 토건경제와 반비례한다. 1995년 이후 토건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우리 국민들 섹스량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마음 놓고 섹스할 수 있는 좋은 나라를 만들자."
우 소장을 만나자 마자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했나. 우 소장의 설명은 이렇다. "우리나라 지난해 출산율은 1.19명 밖에 안 된다. 선진국 1.64명이나 개발도상국 2.70명에 크게 못 미친다. 왜 그럴까. 피임을 더 많이 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섹스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는 그 이유를 토건경제에서 찾는다. 토건경제는 반생태적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욕망과 본능까지 억압한다."
2.1연구소라는 이름도 출산율을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까지 끌어올리자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날수록 환경파괴도 더 심해지는 것 아닌가. 생태적인 경제학을 강조해 왔던 그가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무래도 생뚱맞다. 그러나 우 소장은 "지속가능한 생태를 위해 인구를 줄이자는 주장과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현실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인간이 행복해야 생태도 행복하다"는 논리다.
좋다. 그렇다면 토건경제가 섹스를 억압한다는 근거가 있나. 우 소장은 두 가지 근거를 든다. 첫째, 한정된 정부 예산이 토건산업에 쏠리면 복지예산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애 낳고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 둘째, 부동산 거품이 가계의 소비여력을 잠식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킨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경제의 역동성이 위축된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토건산업의 비중은 일본의 2배 규모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하다. 우 소장은 "토건산업의 비중을 줄이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단언한다.
"국민소득 1만5천달러 수준에서 토건경제를 벗어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오히려 토건경제를 더 키웠죠. 국민소득이 2만달러 가까이 치솟기도 했지만 부동산 거품이 계속 불어난 반면 일자리는 줄어들고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하지 않고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토건경제는 생태와 행복을 희생한 대가입니다.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걸 정상화하자는 겁니다."
우 소장은 그 대안으로 전세제도를 없애자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지금 전세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우 소장은 "월세로 전환하고 연소득 3천만원 이하 가구에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면 된다"고 말한다. 역시 황당무계하게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럼 주택수요가 급감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것 아닌가. 우 소장이 노리는 바가 정확히 그거다. "부동산으로 치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집권정당인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야당인 민주당도 집 가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지 않나. 우 소장은 "만약 민주당이 집권 의지가 있다면 어떻게든 차별화된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고 결국 부동산 문제에 해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상당한 예산이 소요 되겠지만 토건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사회적 비용을 전환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토건경제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법은 종합부동산세를 확대 실시하고 후분양 제도를 전면 도입하는 등 이밖에도 많다. 우 소장은 세종시의 수도권 분산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우 소장은 무엇보다도 수도권과 대도시에 살면서 치러야 하는 비용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혜택을 많이 보는 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고 그렇게 확보된 재원으로 생태계를 보존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자는 이야기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언론 문제로 넘어갔다. 우 소장은 최근 일본의 빈민 운동가 유아사 마코토가 쓴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 해제에서 "한국에서 언론은 없는 셈 치자"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우 소장은 유아사 마코토의 대중적 인기를 일본 사회가 변화하는 징후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왜 이런 변화를 짚어내지 못하는가. 하토야마 정권이 들어섰을 때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도대체 왜 정권이 바뀌었는지 언론만 보고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취재는 뒷전이고 골프나 치고 놀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특파원으로 나가 있으면서 학위를 따고 오는 기자들도 있었죠. 일본만 해도 그렇습니다. 자민당 독재가 무너지고 생긴지 10년 밖에 안 되는 민주당이 일본을 장악하고 엄청난 변화를 단기간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왜 생겨난 것인가, 이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논쟁이 한국 언론에는 전혀 소개되지 않습니다. 언론이 이 모양이니 국민들이 바보 되기 딱 좋죠."
토건경제와 부동산 거품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언론의 책임을 지적할 수 있다. 대부분 언론에게 건설업계는 삼성보다 더 큰 광고주다. 언론사도 기업인만큼 건설업계의 이해관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 가뜩이나 광고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언론의 왜곡보도도 늘어났다. 심지어 경향신문과 한겨레 조차도 이 시스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한겨레의 부동산 보도가 매일경제나 한국경제와 얼마나 다른가.
우 소장은 "살아남으려면 출입처 시스템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광고 의존도도 훨씬 더 낮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루종일 출입처에 앉아서 적당히 전화나 돌리고 보도자료를 고쳐 쓰는 것만으로는 독자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팩트를 전달하는 신문은 많지만 컨텍스트를 짚어내는 신문은 없습니다. 광고시장이 위축되고 신문산업이 사양화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뉴스라는 상품의 상품성이 떨어지는 게 진짜 문제 아닙니까."
우 소장은 "기자 다섯 명 가운데 한 명만 보도자료를 챙기고 나머지 네 명은 현장을 뛰어다니게 하자"고 제안했다. "보도자료를 어떻게 잘 포장할 수 있을까 하고 하루종일 출입처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굴리지 말고 사람들을 만나고 길바닥에서 기사를 쓸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다. 어떤 현장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텐데 우 소장은 유아사 마코토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의 당선이 유권자 2%의 변화였다면 일본에서 하토야마 유키오의 당선은 20%의 변화였다. 국내 언론에서는 "미녀 저격수" 운운하는 저급한 가십성 기사만 넘쳐났지만 하토야마 정권의 등장은 54년에 이르는 자민당 장기독재의 피로감의 표출인 동시에 청년빈곤과 여성차별에 대한 사회적 불만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도시빈민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린 유아사 마코토는 하토야마 내각 출범 이후 참모로 기용됐다.
"빈곤을 이야기하려면 직접 현장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대안이 뭔가 고민하고 유아사 마코토 같은 사람들과 함께 어젠다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철도파업에 대해 기사를 쓰려면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야 합니다. 과천 정부청사 기자실에 앉아서 그런 기사를 쓸 수 있습니까. 그래놓고 광고가 안 된다고 신문산업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거 정말 무책임한 일 아닌가요."
우 소장은 "콘텐츠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전제로 신문 구독료를 두 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 소장은 "좋은 신문에 기꺼이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할 의지가 있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용의도 있지만 지금 같으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 소장은 "유기농 채소처럼 비싸더라도 기분 좋게 사주고 싶은 그런 신문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우 소장은 출판산업 육성과 콘텐츠 다양성을 위해 좋은 단행본을 골라 1만권씩 팔아주자는 운동을 제안한 적도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좋은 신문과 그 신문의 기자들을 지원하는 운동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우 소장은 우리 사회에도 유아사 마코토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을 뿐 변화의 동력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언론을 바꾸는 것이 한국 사회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거라는 이야기다.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했던 우 소장은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온 이후 민주노동당을 탈당했고 진보신당에도 거리를 두고 있다. 우 소장은 자신을 진보가 아닌 좌파라고 규정한다. 진보라는 단어가 은폐하는 현실과의 타협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좌파 정당을 꿈꾸는 그가 이계안 전 민주당 의원과 손을 잡은데 대해 비난 여론이 많지만 우 소장은 "시민운동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우 소장의 현대자동차 재직시절 직장 상사였다.
우 소장은 앞으로 2.1연구소에서 다양한 예측모델을 가정하고 시뮬레이션 작업을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테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제효과에 대한 정부의 과장된 전망에 대한 반박도 필요할 것이고 토건경제를 축소할 경우 그 반대급부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필요할 것이다. 상당한 자원이 소요되는 작업이 되겠지만 좌파 진영에서도 무작정 구호만 앞세울 게 아니라 좀 더 과학적인 전략과 전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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