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상 수상에 빛나는 경향신문의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시리즈를 엮은 책입니다. 8명의 기자들이 9개월에 걸쳐 해외취재를 포함해 현장을 누비며 쓴 글들입니다. 기자들외에 각계 전문가들과 학자들의 기고도 있어 무게감을 높였습니다.
처음 이 기획에 참여했을 때는 과연 가능할까 우리 역량으로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었고,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학자들도 반신반의했었습니다. 그만큼 다루려는 주제자체가 방대하기 이를데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냈습니다. 시리즈를 신문에 연재하면서 찬사도 받았고, 가끔씩은 너무 늘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신문에 싣기에는 너무 깊은 내용들이고 지나치게 어렵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묶어놓으니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을 적절히 배합한 탁월한 책이라고 감히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서평을 쓴 회사 후배하나는 저더러 "세계 어느 신문에서도 해내지 못한 역작"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후반부에 나오는 대안에 있을 듯 합니다. 금융위기의 원인분석과 신자유주의의 폐단에 대한 고찰도 깊이가 있지만, 어떤 세상을 어떻게 꿈꿀 것인가, 이 책을 보면 어렴풋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겁니다.
아래글은 문화부 후배가 쓴 서평입니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져가던 2008년 9월 말 영국에 1년간 연수차 도착한 기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궁지에 몰린 자본주의(Capitalism at Bay)’를 표제로 한 이코노미스트 10월18일 호였다. ‘섹시한’ 제목에 이끌려 잡지를
사고 말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주의, 특히 영미식 모델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음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국가의 권한은 축소되어야 하며,
그러다보면 자본주의가 자기조정 과정을 거쳐 거듭날 것임을 확신한다고 썼다.
미국은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이자 2008년 말부터 전 세계를 흔들었던 금융위기의 진원지이다. 이 나라는 외형상 풍요의 상징으로 굳어져 있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특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사람 살 만한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 그래픽 윤여경 기자 |
‘온 세계인이 하루하루 애타게 월가만 바라보며 마음 졸이는 이 시점에 왜 자본주의에 대한 신념 얘기가 나왔으며, 이런 확신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로부터 한 달 뒤 한국의 경향신문이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라는 제목의 장기 기획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시작하면서도 9개월이나 이어질 줄 몰랐다는 기획물을 묶은 결과물이 이 책이다.
‘궁지에 몰린 자본주의’와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얼핏 비슷하게 들리지만 그것이 뜻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이코노미스트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2010년 3월4일 현재 이코노미스트 웹사이트에서 자본주의를 검색하면 1615개, 신자유주의를 검색하면 7개의 기사가 뜬다. 그것은 뉴욕타임스 같은 미국의 주류 언론도 마찬가지다. 1년도 더 지나 돌아보면 이코노미스트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예언이 (영미식) 자본주의 질서를 이끌어온 입장에서 소망을 담은 자기 실현적 주문에 가까웠던 것일 뿐이다.
이 책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신흥 금융강국 아이슬란드 르포에서 시작해 사태의 진원지인 월가 내부에 대한 본격 취재로 이어진다. 미국의 은행들이 자국 서민들의 주택담보 빚을 어떻게 이중 삼중의 금융파생 상품으로 포장해 전 세계에 팔아왔는지 규명한다. 한국 경기도의 한 동물병원 의사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떻게 태평양을 건너 금융위기로 만나게 되었는지 등의 과정이 소상하게 설명된다. 특히 위험도 높은 파생상품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금융수학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명한 대목은 과문한 기자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떠한 관련 설명보다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다.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은 금융수학 공식과 그에 기반한 ‘선진 금융기법’들이 사실은 고도의 사기에 가깝다는 점도 잘 드러난다. 이 책이 금융자본 우위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첫 테마로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이번 위기를 만천하에 드러낸 직접적 계기이기도 하고, 땀 흘리지 않고 손쉽게 일확천금 하려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위기가 금융위기로만 끝나지 않듯이 신자유주의의 더 큰 문제는 삶의 다양한 영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의료 민영화, 노동 유연화, 생태위기, 공공산업의 사유화, 빈곤화와 양극화 등이 모두 이 흐름 속에 있다. 왜 미국에서는 병이 나면 중산층조차 순식간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질 각오를 해야 하는지, 가장 많은 부를 갖고 있는 고도 산업사회에서 왜 시급 4~5달러의 월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표준이 되고 있는지, 경영 합리화를 이유로 시행된 수도 민영화 이후 왜 서민들은 더 더러운 물을 먹어야 하는지 설명된다. 이쯤 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의 번영을 원한다는 세계 경제기구들과 개별 국가정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분명해진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신자유주의가 기로에 선 시점에 더욱 과격한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라가려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직접적인 메시지이다. 다른 사회가 가능함을 설득력 있는 해외 사례들로 보여준다. 신문사 자체 비용으로 이렇게 좋은 정책 제안을 해준 것을 정부는 고마워 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존에 존재하는 사례에 대안을 찾은 것은 좋았지만 그것이 이른바 서구 산업국가에 집중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은 북유럽 국가를 현존하는 대안으로 삼았다. 북유럽의 절반만큼의 국가 복지도 난망한 한국사회 현실에서 그것은 훌륭한 대안이다. 하지만 서구 사민주의 역시 성장 없이는, 즉 무언가를 착취하지 않고는 지속 가능한 체제가 아니라는 점까지 염두에 두었다면 좀 더 풍부한 대안들이 나왔을 것 같다. 또한 한국 언론의 보도였기 때문에 다소 소홀하게 다뤄진 부분도 있었다. 신자유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한 축인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과 관련한 부분이다. 미국 사례를 다루며 캘리포니아 드넓은 들판에서 착취당하는 이민노동자 등의 문제가 간혹 언급되지만 이주노동자를 이용한 ‘바닥을 향한 경쟁(race to the bottom)’이 독립 주제로 할애될 필요가 있지 않았나 한다.
신자유주의는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지역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라고 했을 때보다 다른 것을 상상하고 또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그것이 이코노미스트와 경향신문의 차이이다. 신자유주의가 끝났는지, 아니면 언제까지 그 생명을 이어갈지는 이 책의 글들이 쓰여질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그 결과를 알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 책은 과거 사건을 기록하는 데서 시작했지만 현재진행형인 문제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분명한 것은 척박한 언론 환경을 가진 한국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이다.(손제민 기자 2010년 3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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