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늘

[어제의 오늘]1933년 독일 단종법 공포

서의동 2009. 7. 13. 13:35
ㆍ‘인종 청소’ 나치 만행의 단초 만들다

“조선인들은 근본적 성격이 좋지 못한 민족이다.(중략) 그중 소수나마 몇몇 선인이 있을 것이다. 이 소수의 선인이야말로 민족부흥의 맹아다.”

친일문인 이광수가 1922년 5월 ‘개벽’에 발표한 ‘조선민족개조론’의 한 단락이다. 이 글에는 당시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을 휩쓸고 있던 우생학(優生學)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가 조선에 대해 회유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득세하기 시작한 친일 지배층의 사회적 권위 획득을 위해 서구의 과학을 차용한 것이다.

우생학은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란시스 갈턴에 의해 탄생했다. 갈턴은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이 발표된 뒤 6년 후인 1865년 교배기술로 동식물의 품종을 개량하듯 최고의 자질을 가진 인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갈턴의 주도로 결성된 인종우생학회는 유전적 열등분자들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담론을 유포시켰고, 단종(斷種)법과 유색인종의 이민을 규제하는 이민제한법 제정에 기여했다. 우생학이 위험한 것은 과학의 이름으로 하층민을 생물학적 열등분자로 몰아 사회악의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공권력을 임의로 행사할 수 있는 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는 1924년 간질환자, 저능아 등에 대해 불임시술을 강제하는 단종법을 제정했다. 74년에 공식 폐지된 이 법에 의해 불임시술을 당한 버지니아 주민만 8300명에 이른다. 미 의회는 또 앵글로색슨족의 이민은 장려하는 반면, 유대인과 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인의 이민을 제한하는 존슨이민법(1924년)도 제정했다.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 각국에서도 단종법이 속속 도입됐다.

우생학이 초래한 인류사의 비극은 독일에서 절정을 이뤘다. 나치 정부는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인종적·사회적·문화적 청정정책을 폈고, 유대인·집시·동성애자·장애인 등을 박해했다. 나치 정부는 1933년 오늘 단종법을 공포, 악질 유전이 예상되는 병에 대해 우생 재판소가 단종수술을 하도록 했다. 이 법으로 40만명이 단종수술을 강요당했고, 10만명은 안락사했다. 2년 뒤인 35년에는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독일인과 차별하는 뉘른베르크법을 제정하면서 유대인 말살정책인 ‘홀로코스트’의 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