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전자 혁명’ 이끈 핵심 부품
요즘엔 묵직한 음향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나 찾는 골동품이 됐지만, 1960년대만 해도 가전제품은 대부분 진공관식이었다. 소리신호를 주고받거나 음량을 키우는 데 쓰이는 진공관은 원통형 유리 속을 진공상태로 만들어 놓고 그 안에 필라멘트를 넣은 것이다. 하지만 깨지기 쉬워 수명이 짧고, 부피가 큰 데다 작동하려면 5분 이상 예열이 필요했다. 1만8800개의 진공관이 사용된 세계 최초의 전자계산기 ‘애니악’은 높이 5.5m, 길이 30m에 무게가 30t에 달했고, 소비전력도 대형 냉장고 100대를 한꺼번에 가동시킨 것과 맞먹는 ‘공룡’이었다.
이 진공관을 대체할 트랜지스터가 48년 오늘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벨연구소는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 등 연구원 3명이 게르마늄 불순물과 반도체를 이용해 발명한 트랜지스터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이날 선보인 트랜지스터는 손톱 크기의 조그만 원통에 다리 세개가 달린 보잘것 없는 물건이었다. 실망한 기자들은 “이게 대체 뭐냐”고 따지듯 물었지만 벨 연구소 연구원은 “이게 세상을 바꿀 물건”이라며 미소로 답했다.
얼마 안가 트랜지스터는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가볍고 크기가 작은 데다 열을 가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전력소모도 크지 않아 진공관에 비해 실용성이 크기 때문이다. 트랜지스터의 상용화 연구가 진행되면서 58년에는 개별 부품을 하나의 칩으로 만든 뒤 내부에서 회로를 연결하는 집적회로(IC)가 탄생했고, 안전성이 낮은 게르마늄 불순물도 실리콘으로 대체됐다. D램, 낸드 플래시의 기반이 된 모스펫 개발(1960)로 반도체 대량생산 시대가 활짝 열렸다. 오늘날의 반도체 집적회로는 수억개의 트랜지스터가 하나의 칩 위에 담겨져 있다.
트랜지스터의 개발 이후 집안에 가구(家具)처럼 모셔져 있던 거대 전자제품은 소형화, 정밀화, 다기능화 행진을 거듭했다. 일본 소니의 전신인 도쿄통신공업이 53년 휴대가 가능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탄생시킨 이후 이 흐름은 깜짝 놀랄 정도로 빨라졌다. 전축도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다시 CD플레이어와 MP3플레이어로 진화해갔다. 스위치를 켜면 한참 뜸을 들인 뒤 화면이 켜지는 진공관식 TV도 디지털 방식의 HD TV에 자리를 내줬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휴대전화, 컴퓨터, 디지털카메라는 물론 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 거의 모든 공업제품에서 반도체는 필수 부품이 됐다. 반도체가 ‘현대산업의 쌀’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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