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는 갔지만, 군부는 남았다. 11일(현지시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전격 퇴진으로 향후 군부의 행보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군부가 약속대로 오는 9월 대선 때까지 상황을 관리만 하고 민선정부에 실권을 넘겨야만 ‘카이로의 봄’은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과 사미 하페스 에난 참모총장 등 군부인사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사태 추이에 따라 친무바라크 인사인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 대신 이들이 전면에 부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군부가 과도정부를 장악함에 따라 이집트는 당분간 정상적인 행정체계보다는 군 최고지휘관회의에서 발표하는 ‘코뮈니케(성명)’가 일종의 포고령으로 작용하게 됐다. 일종의 군사정부다. 그동안 논의된 대로 헌법개정을 통해 자유로운 대선 및 총선 참여가 허용되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칠 경우 민선정부가 출범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군이 기득권을 수호하는 방향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가 타흐리르 광장에서 군 탱크 주변에 모여 기도를 하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DB)
이집트 헌법 84조에 따르면 대통령 퇴진의 경우 국회의장이 대통령직을 잠정적으로 승계하게 돼 있다. 국회의장은 최장 60일 내 차기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야 한다. 알 아라비야 TV는 그러나 군부가 3차 코뮈니케에서 상·하원을 해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무바라크의 하야 발표와 함께 군 최고지휘관회의가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혀 탄타위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부 지도자들이 과도정부를 이끌 것임을 분명히 했다. 술레이만 부통령의 역할은 아직까지 분명치 않다.
이집트 군부가 두 차례의 최고지휘관회의를 통해 마련한 정국해법은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자진퇴위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시위대의 요구에 화답하는 ‘출구전략’이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무바라크가 이날 수도 카이로를 떠나 홍해 휴양도시 샤름 엘 셰이크에서 자진퇴임을 밝힌 것은 군부의 이런 정교한 출구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군부가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무바라크가 사실상 권좌에서 퇴위하도록 유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무바라크가 대국민 연설을 마치고 샤름 얄 셰이크로 떠나는 길에 동행한 것으로 전해진 에난 참모총장이 막판 설득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군부로서는 지난 30년간 충성을 바쳐온 무바라크의 명예퇴진이 향후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AP통신은 이집트군이 군사력과 홍보력을 적절히 활용해 국익의 최종 수호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부드러운 쿠데타(soft coup)’에 성공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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