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인터뷰]후쿠시마 피난자, 사토, 다케다씨

서의동 2011. 4. 11. 11:35

3월11일 오후 2시46분. 후쿠시마 시내 고교의 사회교사인 사토 히로유키(佐藤博幸·40)의 의식이 머물러 있는 시간이다.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한달이 됐지만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토는 후쿠시마 시에서 100km가량 떨어진 니이가타 현 무라카미(村上)시에 4주째 머물고 있다. 이른바 ‘자주피난’이다.

고교 교사 사토 히로유키


사토는 입학시험이 있던 날 학교에서 지진을 겪었다. 20~30초 정도면 될줄 알았던 요동이 5분 넘게 이어졌다. 지진을 여러번 겪었지만 땅이 출렁대는 느낌은 난생 처음이었다. 학교건물 곳곳에 금이 가고 담장이 무너져 출입이 금지됐다. 그가 살던 후쿠시마시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60㎞가량 떨어져 있어 일본 정부가 정한 대피권역은 아니다. 불안이 커지던 참에 먼저 후쿠시마를 떠난 고교은사 다케다 토오루(武田撤·70·후쿠시마현 국제교류협회장)의 전화를 받고 바로 피난길에 올랐다. 독신인 사토는 16일 후쿠시마를 떠나 센다이와 야마가타를 거쳐 무라카미시에 도착해 여관에 자리를 잡았다. 바다를 끼고 있는 온천여관이라 숙박비가 하루 1만엔 정도지만 피난민은 반액 할인을 받는다.

다케다 토오루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폭발사고가 나던 12일 후쿠시마 시를 떠났다. 도쿄에 사는 아들로부터 “원전 때문에 위험하니 도쿄로 오시라”는 전갈을 받고 급한 대로 물건을 챙긴 뒤 웨건형 승용차에 부인과 딸 부부, 개와 고양이를 태웠다. 야마가타와 니이가타를 거쳐 12시간 걸려 도쿄의 아들 집에 도착했다. 2주일간 동거하려니 비좁았다. 자식처럼 아끼는 개와 고양이를 집에 못들여놓고 펫숍에 맡겨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때마침 고리야마(郡山)에 사는 형이 니이가타로 피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라카미시로 거처를 옮겼다. 니이가타 현은 큰 지진을 많이 겪은 탓에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체계가 잘 돼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방 2개짜리 연립주택을 월세 2만5000엔(약 31만원)에 빌려 부인과 딸, 고양이와 개와 함께 거주한다. 후쿠시마 주민 29만명 중 약 3만명이 이들처럼 고향을 등졌다. 이중 9000명가량이 니이가타 현에 머물고 있다. 다케다는 “학생들과 여성, 노약자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빨리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케다 토오루씨



사토는 인터넷과 TV를 보며 원전상황과 방사성물질 오염 상황을 체크하며 하루를 보낸다. 한동안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학생처럼 비좁은 여관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지난 5일 기자와 만난 그는 아이패드를 통해 도쿄대 대학원생들이 실측한 후쿠시마현 방사선량치를 보여줬다. 정부가 대피지시를 내리지 않은 이와테무라는 지난 15일부터 29일까지의 방사선량이 5000마이크로시버트로 일본 정부가 정한 1년 허용치(1000마이크로시버트)를 2주일만에 5배가 넘었다. 후쿠시마시도 2주만에 정부 허용치의 2.5배를 넘어섰다. 사토는 “이런 내용은 정부 발표에도 신문에도 나오지 않는다. 후쿠시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내고 있다”고 했다.  

후쿠시마는 점점 버려진 땅이 돼가고 있다. 미야기현이나 이와테현쪽으론 자원봉사자들이 몰리지만 후쿠시마에는 발길이 끊겼다. 택배회사도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사토는 “간사이 지방 청년과 결혼을 약속했던 후쿠시마 처녀가 결혼을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도 돌아다닌다”고 했다. 미야기나 이와테는 언젠가 복구되겠지만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는 얘기가 다르다. 원전에 가까운 사토의 고향 가와마타는 영영 버려진 땅이 될지 모른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본래 자부심과 여유가 넘쳤다고 한다. 도쿄에서 신간센으로 1시간30분이면 닿을 수 있고, 자연경관이 뛰어나 골프장과 스키장, 쌀과 농산물도 풍부하다. 불모지화 되는 것도 안타깝지만 무엇보다 남아 있는 이들의 안부가 걱정이다. 방사능이란게 눈에 보이지도 냄새도 없어 당장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데다 생업에 매어 고향을 등지고 싶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개나 고양이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사토가 근무하는 학교는 교실이 붕괴 직전인데다 방사선량이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신학기가 언제 시작될 지 가늠하기 어렵다. (개학 하더라도) 휴직을 해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당장 마스크와 방호복, 7만엔(약 89만원)짜리 방사선 측정기를 구입할 생각이다. “지금은 정부가 지켜주지 못하는 만큼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다”고 사토는 말했다. 

사토, 다케다씨가 니가타현 무라카미시의 한 피난소에서 피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케다도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돌아간다면 원전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부터 나설 생각이다. 다케다는 “정부 대책본부를 원전반경 30㎞쯤에다 옮겨야 한다”며 “200㎞ 넘게 떨어진 도쿄에 있으면서 원전 주변주민들에게 ‘집에서 문닫고 피해 있으면 괜찮다’는 둥 말도 안되는 소리나 하고 있으면 국민이 믿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도 시대부터 사람들은 ‘위(정부)에서 하는 일에 잘못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런 안이한 의식 때문에 일본이 잘못된 전쟁을 일으켜 패전했고, 수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후쿠시마 원전도 마찬가지다. 근거 없는 안심감이 원전사고를 초래한 것 아닌가.”(다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