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오타구 이케가미(池上)에 사는 주부 고바야시 다카코(小林貴子·40)는 요즘 생수를 사모으는 게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됐다. 지난달 23일 도쿄 정수장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뒤 상점들이 가족당 1병씩만 생수를 팔기 때문이다. 자전거로 동네 편의점과 슈퍼마켓을 돌며 3~4병을 구입하지만 남편과 초등학교 3학년 아들, 다섯살과 세살난 딸 둘까지 다섯 식구에겐 충분치 않아 생수와 수돗물을 반씩 섞어 미소시루(일본식 된장국)를 끓인다. 쌀을 씻을 때는 수돗물, 차와 국은 생수를 쓴다. 얼마 뒤 방사성물질 검출량이 기준치 이하로 내려갔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둘째와 막내에게는 아직도 수돗물 대신 생수를 준다. 다카코는 “방사성물질이 조금씩이라도 아이들 몸속에 들어갈 거라 생각하니 찜찜하다”고 했다.
고바야시 다카코씨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난달 11일 이후 다카코 가족의 생활에 몇가지 변화가 생겼다. 지진 다음날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소폭발 사고가 난 뒤 다카코는 빨래를 집안에서 말리게 됐다. 물건들이 쏟아지지 않도록 수납장 입구에 테이프를 붙여뒀다. 채소와 생선의 방사선 오염도 걱정거리다. 자연히 슈퍼에 가면 포장을 유심히 살펴 규슈나 니이가타산 생선을 고른다. 원산지가 ‘태평양’ 처럼 애매하게 표시되면 일단 피하고 본다.
외국계 회사가 사무실을 도쿄에서 오사카나 히로시마로 옮겼고, 큰애 학교 친구들이 새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시골에 가 있는다는 말을 들으면 불안해진다. ‘큰애는 아토피 때문에 음식을 가려야 하는데 무슨 일이 생겨 피난소에라도 가게 된다면…’ 같은 잡념이 한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잠시라도 도쿄를 떠나고 싶어 지난 주말 남편(39)의 친척이 사는 나가노에 다녀왔다. 도쿄보다 원전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룻밤 보내고 나니 다소 기분전환이 됐다.
아이들은 지진 이후 부쩍 엄마에게 매달린다. “막내는 요즘 화장실 갈 때마다 지진이 나 문이 잠길지 모른다며 화장실 문을 열어놓아요.” 친척들이 사는 이와테 현 미야코시가 쓰나미로 엉망이 된 장면을 TV에서 보며 몸서리 치는 일도 있다. “예전에 놀러갔던 곳이 처참하게 망가진 꼴을 보면서 아이들도 느끼는 게 많은 모양이에요.”
다카코는 쓰나미 피해를 입은 친척들에게 얼마전 빨래건조대와 청소도구, 노트와 연필 따위를 택배로 부쳤다. 잘 받았다는 전갈을 받으니 마음이 약간 가벼워졌다. 며칠 전에는 이바라기 현의 연근을 샀다. “언제까지 그쪽 농산물을 외면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연근 정도는 잘 씻으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다카코는 뭔가 붕 떠있는 것 같은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 “괜찮다”를 연발하는 정부의 말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다. 다카코는 “그래도 원전복구를 위해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도쿄에 살면서 불만을 이야기할 분위기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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