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발매된 시사주간지 아에라는 발매되기 무섭게 품절됐다. 오테마치는 물론 도쿄역, 집 근처 서점까지 뒤져봤지만 재고가 없었다. ‘세슘과 암의 상관관계’ ‘방사성물질을 빼는 조리법’ ‘내부피폭으로부터 건강을 보호하는 식품’ 등 지금 일본인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쓰나미 잔해에서 가재도구를 찾고 있는 피해주민들/경향 DB
후쿠시마 현 고리야마에 살던 아이 엄마는 “괜찮으니 걱정말라”는 정부의 말만 믿다가 지난달에서야 피난을 떠났다. 도쿄에 머무르고 있는 그는 “처음 두달간 후쿠시마에 머물렀던 것이 분해서 견딜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혹시라도 네살 난 딸아이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걸기 위해 아이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모아둔다.
후쿠시마 시의 한 고교 교사는 거처를 야마가타 현으로 옮겨 40㎞쯤 되는 거리를 매일 차로 출퇴근한다. 고리야마와 후쿠시마시는 원전에서 50~60㎞ 떨어진 곳이지만 둘다 방사능이 국제기준치를 훨씬 넘는 곳이다. 원전에서 200㎞ 안팎 떨어진 도쿄 주민들은 당국이 아무리 수돗물이 안전하다고 발표해도 정수기 물이나 생수로 밥과 미소시루를 짓는다. 도쿄의 엄마들은 여름방학에 아이들을 ‘여름캠프’ 명목으로 오키나와나 해외로 보내려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3개월을 넘어서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마음속에서 정부를 지우고 있다. 원심분리기에 담긴 화합물 또는 시신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유체이탈’ 처럼, 국가에서 국민이 이탈하고 있다. 정부는 ‘괜찮다’며 이리로 가자 하지만 국민은 ‘샛길’을 찾는다. 신문에는 ‘간바레(힘내라)’ 소리를 그만하라는 독자투고도 등장한다. “정부가 사실을 제대로만 알렸어도 벌써 피난갔을 것”이라는 후쿠시마 주민들의 한탄은 정부가 국민의 보호자가 아닌 방해물로 전락했음을 웅변한다. 아에라가 잘 팔리는 이유는 정부가 결코 알려주지 않는 정보들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상치 않은 공기와 무관하게 일본 정치권은 기득권 사수를 위한 정쟁에 매달려 있다. 최근에는 일본 국회에 ‘지하식원자력발전소정책추진의원연맹’이란 단체가 발족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원전 지상건설이 어려워지니 땅을 파서라도 짓겠다는 기괴한 발상이다. 대부분 전력회사들의 지원을 받는 ‘전력인맥’들로 다른 길을 가려는 간 나오토 총리를 찍어내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였다. 이런 정성의 반이라도 피해주민 지원들을 위해 발동됐더라면 국민성금을 받아 3개월이 지나도록 쌓아놓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본내 지식인들 사이에선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전후(戰後)’체제를 닫고 ‘재후(災後)’체제를 여는 역사적 전환기가 될 것이라는 역설적인 기대감이 있었다. 일본은 원전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자연에너지로 전환해 새로운 시대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그럴만한 기술력도 충분하다. 하지만 ‘탈원전’ 이니셔티브는 이미 독일에게 빼앗겼고 새로운 전환기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퇴색했다.
어느 일본 전문가가 지적했듯이 일본은 외부충격에는 강하지만 내부에서 초래된 위기에는 약한 듯 보인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가려 확실히 책임을 묻는 전통이 없는 탓에 반성도 없고, 같은 잘못이 반복된다. 수백만명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여지껏 책임소재가 분명치 않은 태평양전쟁처럼 원전정책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흘러갈 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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