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진리교 수배자 17년간 도피시킨 사이토 아케미 자수

“그와 17년간을 죽 함께 지냈습니다. (가명으로 사는) 가짜 인생을 이제 끝내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말 자수한 옴진리교 전 교주 경호 책임자 히라타 마코토(平田信·46)를 17년 동안 숨겨준 사이토 아케미(齋藤明美·49·여)가 지난 10일 자수하면서 경찰에 한 말이다.

옴진리교 신자였던 사이토는 신도 가족을 납치해 살해한 혐의로 1995년 특별수배를 받아온 히라타와 함께 기거하면서 은신처를 제공해왔다.

한 여성이 혼자 힘으로 장기간에 걸쳐 수배자의 잠적을 도왔다는 믿기 어려운 진술에 교단 잔여세력 개입 가능성은 없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지하철 독가스테러 사건으로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옴진리교의 잔영이 끈질기게 남아 일본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셈이다.       

지난 10일 오전 4시 도쿄 오사키(大崎)경찰서에 출두한 사이토는 변호사를 통해 “지난해 말 자수하기 직전

까지 히라타와 함께 히가시오사카(東大阪)시의 독신자 아파트에서 살았다”며 변호사를 통해 도피경위를 밝혔다. 

후쿠시마(福島) 출신인 사이토는 93년 옴진리교에 귀의한 뒤 교단소속 병원 간호사로 일하다가 히라타가 1995년 2월 도쿄 메구로(目黑) 공증소 가리야 기요시(68) 사무장 납치 살해사건으로 특별수배된 이후 줄곧 함께 지냈다고 진술했다. 사이토는 “교단에 있을 때부터 히라타를 존경했고, 함께 있는 동안 존경이 애정으로 바뀌었다”며 내연관계임을 시사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교단이 준 돈 1000만엔을 가지고, 후쿠시마(福島)·미야기(宮城)·아오모리(靑森)를 비롯해 도호쿠 지방을 전전하다가 1996년 오사카(大阪)에 정착했다. 이후 14년 동안 오사카 한 아파트 8층에 숨어 살았다.

이 기간중 사이토는 요정과 커피숍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댔다. 오사카에서도 경찰에 발각될 것을 우려해 거처를 2차례 옮겼고, 그 때마다 다른 가명을 썼다. 히라타는 이사할 때 외에는 외출을 하지 않은 채 집에서만 지냈다. 

사이토는 마지막 거처였던 히가시오사카에서 요시카와 쇼코(吉川祥子)라는 가명으로 접골원에서 일을 했다. 일본은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없어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에 가입하지않는 한 가명으로 취직해 장기간 숨어 살 수 있다. 사이토는 환자들에게 “군마현 출신으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둘러댔다. “상냥하고 친절한 접골원 직원”으로 사이토를 기억하던 주민들은 경악했다.

지난해 12월31일 밤 전격 자수한 히라타는 도피생활 도중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56·사형확정)의 재판관련 보도를 지켜보면서 교단에 환멸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3월 동일본대지진에 충격을 받은 히라타는 지난해 11월 사이토에게 자수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히라타는 자수한 이유에 대해 “(동일본대지진으로) 죄없는 이들이 희생됐다. 그런데도 나는 살아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은 열흘 간격으로 이뤄진 두 사람의 자수를 주요 기사로 다루며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히라타의 17년 잠적을 사이토 단독으로 도왔는지가 최대 의문이다. 이들이 15년 가까이 거주하던 오사카는 일본내에서도 옴진리교 신자 비율이 높아 교단 잔여세력이 도피과정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옴진리교는 일본의 왕이 돼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망상을 가진 아사하라 쇼코가 만든 신흥종교다. 1995년 3월20일 도쿄 지하철의 출근길 승객에게 맹독성 사린가스를 뿌려 13명을 숨지게 하고 6200여명을 부상하게 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21일까지 진행된 공판에서 13명은 사형, 5명은 무기징역, 80명이 실형을 각각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