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디플레 스타' AKB48 가요계 정상 올랐다

서의동 2012. 1. 10. 17:33
지난해 12월30일 저녁 일본 도쿄시내 신국립극장에서 일본작곡가협회 주최로 열린 제53회 일본 레코드대상 수상식장. 일본의 여성 아이돌 그룹 AKB48멤버들이 객석 한쪽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행사 마지막 순서인 대상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향신문 DB



“대상에 AKB48”이라는 시상자 발표가 장내에 울려퍼지자 마에다 아쓰코(前田敦子·21)와 오시마 유코(大島優子·24)를 비롯한 멤버들은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오타쿠(마니아)’들의 성지인 아키하바라(秋葉原)를 근거지로 한 AKB48이 ‘B급의 언더 아이돌’이라는 편견을 깨고 일본 가요계 최고 권위상을 받던 장면이다. 
 
2005년 결성해 6년만에 일본 대중문화 정상에 오른 AKB48 비결은 팬들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 ‘불황형 마케팅’ 전략에 있다고 일본 대중문화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룹명 AKB48은 아키하바라의 영문 이니셜에서 유래했다. 
 
AKB48 대표인 작사가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56)는 결성당시 그룹의 컨셉을 ‘언제든 가서 만날 수 있는 아이돌’로 잡았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동떨어진 이미지의 아이돌 대신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녀들이 노래하는 그룹을 마케팅 전략으로 세운 것이다. 아키모토가 멤버내에서 외모도, 노래실력도 처지는 마에다를 리더로 세운 것은 평범한 소녀들이 꾸준한 노력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팬들에 보여주자는 취지에서였다.  
 
음반산업이 불황에 접어든 2000년대 들어 대중가수들의 주수입원이 공연료로 바뀐 상황에서 AKB48은 보통 가수들의 3분의1에도 못미치는 2000~3000엔대의 공연 입장료로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젊은 팬들의 부담을 덜었다. AKB48는 일본 최고의 대중스타로 군림한 이후에도 아키하바라의 전용극장에서 거의 매일 콘서트를 갖고 있다. 멤버들이 블로그를 개설하고 트위터를 적극 활용해 팬들과의 접촉 기회를 넓힌 것도 비용부담 없는 문화소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초창기에는 아키하바라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가 겹쳐 이탈멤버가 속출하면서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불황기 ‘문턱을 낮추고 소통을 강화한’ 전략이 팬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국민적 아이돌로 성장했다. AKB48은 지난해 4장의 싱글CD가 밀리온셀러를 기록하면서 1034만장(10월 하순기준)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AKB48만을 다루는 월간지까지 등장했다.  
 
AKB48의 인기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은 ‘총선거’ 이벤트다. 정식 멤버만 59명에 연습생까지 합해 90여명이 넘는 메머드 그룹인 AKB48은 4개의 소그룹으로 나누더라도 한번에 12명이 무대에서 서야 한다. 처음엔 대표인 아키모토가 임의로 마에다를 지정했지만 “인기순위를 공정하게 매겨 자리배치에 반영하라”는 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009년부터 매년 한차례 ‘총선거’로 불리는 팬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총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멤버는 각종 무대 출연할 때 한가운데서 노래하고 활동하며, 싱글곡 취입이나 방송출연을 우선적으로 할 수 있다.

팬들의 수요를 충실히 반영하겠다는 소통전략이기도 한 이 ‘총선거’는 20∼40대 중반의 남성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일본 대중문화 최고이벤트로 자리 잡아 지난해의 투표참여수는 무려 117만표에 달하기도 했다.
 
다나카 히데토미(田中秀臣) 조부(上武)대학 교수는 저서 <AKB48의 경제학>에서 “AKB48는 불황과 취직난 속에서 젊은이들이 비용이 들지 않는 몰두하는 ‘디플레 컬처(불황형 문화)’에 적응해 성공한 사례”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