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1년] 후쿠시마를 가다

ㆍ도로 곳곳 출입금지… 여지껏 시신 못찾은 주민 눈엔 핏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북쪽으로 30㎞가량 떨어진 미나미소마(南相馬)시 하라마치(原町)의 한 농가. 해안에서 900m가량 떨어진 2층 재래가옥은 대문도 정원도 없다. 1층 전체가 쓰나미에 할퀴어 벽과 창문은 사라졌고, 마루바닥도 뜯겨져 지붕과 기둥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나마 반경 300m에서 유일하게 남은 가옥이다. 지난 4일 이곳에서 만난 우에노 다카유키(上野敬幸·39·농업)의 눈엔 아직도 핏발이 서 있다. 1년 전인 지난해 3월11일 두 아이와 양친 등 일가족 4명을 한꺼번에 잃은 뒤 6살 난 아들과 아버지의 시신을 여태껏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쓰나미가 닥칠 무렵 밭일을 하고 있던 그는 다짜고짜 닥쳐온 쓰나미 속에서 동네 청년들과 이웃들을 구하고 실종자를 수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휴대전화가 두절돼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괜찮겠지’ 했다. 강진이 발생한 뒤 간호사를 하던 아내가 집에 안부전화를 하던 중 전화가 끊겼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들은 뒤 매일처럼 시신을 찾아 사방을 뒤지고 또 뒤졌다.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km지점에는 이렇게 출입금지 입간판이 들어서 있다. 철길너머로 빤히 보이는 집이지만 갈 수 없는 '실향민'들이 이곳까지 와서 집을 살피고 가는 경우도 있다./By 서의동

두 달 뒤 초등학교 2학년이던 딸과 모친은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지만, 아들과 아버지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지난해 5월 태어난 둘째 딸과 아내를 집에서 떨어진 가설주택에 남겨두고, 우에노는 홀로 기거하며 시신을 찾고 있다. 찾아낸 것은 시신 대신 미니카와 물놀이용 튜브, 장화, 필기구 등 유품들. 하나둘씩 찾아낼 때마다 집 현관에 고이 모아뒀다. 앨범사진을 영정 삼아 매일 분향을 올린다. 그는 시신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시신을 찾지 못하면 시간이 3·11에서 멈춰있을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우에노는 “지금은 마음을 추스르는 게 도저히 불가능하다”며 피우던 담배를 발로 비벼 끈 뒤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쿠시마(福島)현의 해안부는 동일본 대지진의 ‘다크사이트’(회화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 같은 곳이다.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이후 미야기(宮城)현과 이와테(岩手)현은 쓰나미 피해로, 후쿠시마현은 원전사고 피해로 집중 부각되면서 이곳 해안부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 정부와 자위대의 구조지원조차 변변히 받지 못했다.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난 뒤 40일이 지난 4월20일에야 자위대가 실종자 수색을 하러 왔다가 4월 말 골든위크 연휴 직전 철수했다. 그래도 우에노가 사는 곳은 자체적으로라도 실종자 수색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원전 반경 20㎞에서 가족들이 실종된 이들은 자력으로 시신을 찾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방사성물질이 대량으로 유출된 뒤 정부가 주민출입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원전반경 20km지점 부근에 외롭게 서 있는 일본공산당의 '탈원전' 입간판/By 서의동

미나미소마시에서 나미에마치(浪江町)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는 ‘다치이리 긴시(立入禁止·출입금지)’라고 쓰인 입간판이 서 있다. 쓰나미로 철로가 끊겨버린 해안철도 조반센(常磐線)을 경계로 그 너머는 원전에 가까운 구역이라 출입할 수 없다. 이날 하라마치의 오오타(太田)에서 만난 호시노 기이치(63·가명)는 출입금지 경계선 너머 불과 50m 앞에 집이 있다. 후쿠시마현 남부 시라카와(白河)시의 가설주택에 피난살이를 하고 있는 호시노는 반경 20㎞ 이내가 출입금지된 이후 살던 집에 마음대로 갈 수 없다. 이날 동네 주민 장례식 참석차 왔다가 먼발치서라도 집을 보려고 차를 잠시 멈춘 참이다. 호시노는 “지금까지 3번 집에 갈 수 있었다”며 “그것도 잠깐 보고 나오는 정도인데 지난해 가을에 갔을 때는 집안에 쥐떼들이 들끓고 있었다”고 말했다. 방사능 때문에 졸지에 실향민이 된 그의 표정은 명절 때 임진각을 찾아 북녘땅을 바라보는 실향민의 표정과 흡사했다. 호시노는 “가까이에 원전이 있었지만 원전은 안전·안심이라는 말에 그동안 속아온 것이 분할 뿐”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해안지역을 지나는 JR조반센 역은 열차가 다니지 않아 폐쇄상태였다. 역사안에 걸려있는 열차운임표에는 나미에마치 등 원전부근 마을들의 이름이 보인다./By 서의동

미나미소마시는 7만명이던 인구가 지진·쓰나미 직후 5000명으로 급감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2만명에 불과하다. 방사능을 피해 아이들과 함께 떠난 젊은 가족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절대인구가 줄면서 지역상권은 괴멸상태다. 시립종합병원 부근 맥도널드 매장은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았고, 이른 오후 시간인데도 식당들은 ‘영업종료’ 팻말을 내걸었다. 드물게 문을 연 패밀리레스토랑엔 젊은이들 대신 노인들만 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