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쓴 글

소액주주운동 10년만에 최대위기

서의동 2009. 5. 21. 20:30
ㆍ법원, MB정부 출범후 ‘공익성 주주권행사’ 잇따라 기각
ㆍ신세계 경영권 편법승계 의혹 등 규명 제동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제기된 공익성 주주권 행사가 법원에 의해 모두 기각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이 주주권 행사에 잇달아 제동을 걸면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 투명성 제고를 위해 전개돼온 소액주주운동이 10여년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소액주주운동을 정치·사회적 목적을 지닌 운동으로 규정하기도 해 대기업 편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일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신세계, 삼성생명, 한화 등 대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3건의 주주명부열람 가처분신청이 법원에 의해 모두 기각됐다. 경제개혁연대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광주 신세계 주식 취득과정에서 불거진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2월26일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에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또 법원은 경제개혁연대가 지난해 3월4일 삼성생명의 차명주식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제기한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도 “과거 주주명부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신청인이 주주로서의 권리를 확보하거나 행사하는 데 필요한 조사 외의 목적으로 청구를 한 경우에 해당된다”며 기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생명의 주식시장 상장에 앞서 차명주식 의혹을 해소하지 않을 경우 상장 이후 삼성생명의 소유구조 및 경영상황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청구취지를 밝혔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화가 한화에스앤씨 주식을 김승연 회장의 장남에게 저가로 매각한 건과 관련해 경제개혁연대가 지난해 5월1일 낸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신청’도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신청인(경제개혁연대)이 기업이나 그 주주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단체가 아니라 기업과 금융기관의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재벌 위주의 왜곡된 경제체제를 개혁해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정치적·사회적 목적의 단체”라며 “신청인의 주주명부 열람·등사청구와 주주대표소송 제기가 피신청인이나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소액주주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들이 회사의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주주권 행사를 한다면 회사에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경영자의 건전한 판단을 위축시켜 회사에 손해를 끼칠 가능성도 있다”며 소액주주운동의 취지를 부정하는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기업 주식이 많지 않은 시민단체가 주주들로부터 주주권을 위임받기 위해서는 주주명부 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법원이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어 소액주주운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최근 포스코·삼성카드 등을 상대로 시민단체들이 준비 중인 소액주주운동이 좌초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주주명부 열람과 등사를 막는 것은 소액주주운동을 사실상 그만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예전 정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결정이 법원에서 내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