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에겐 여백이 없다

서의동 2012. 6. 7. 10:40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모노노케히메>를 처음 봤을 때 한방 먹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는 선과 악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진리가 있다는 것을 이토록 선명하게 그린 작품을 그전까지 접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을 대표하는 ‘원령공주’와 인간의 편인 ‘에보시’라는 두 여성은 치명적으로 대립하지만 어느 한쪽을 편들기 어려운 미덕을 갖고 있다. 주인공 아시타카가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장면도 이분법의 도식을 넘어선다.



이런 세계관은 미야자키 감독뿐 아니라 다른 일본 작품들에서도 간혹 등장한다. 사무라이 영화를 보면 적을 벤 뒤 그 시신 앞에서 간단히 예를 올리는 장면이 심심찮게 보인다.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다신(多神)주의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지켜야 할 절대선도, 박멸해야 할 절대악도 없는 세계관이다. 사물과 현상의 다면성을 용인하는 여백을 허용한다.

물론 일왕을 절대권력화했던 군국주의 일본의 역사가 있었지만 이는 예외적인 시대에 속한다. 개화 이전 도쿠가와(德川) 바쿠후(幕府)가 지배하던 에도시대는 이렇다 할 통치 이데올로기 없이 260년을 지속했다. 유교가 수입되긴 했지만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에도시대 초기 기독교가 철저하게 탄압됐지만, 기독교의 일원론적 세계관이 체질적으로 일본인들에게 맞지 않는 것도 있어 기독교는 곧 쇠퇴했다.

일본 정치에도 비슷한 여백이 있다. 임명 직후부터 자질 시비를 불러온 다나카 나오키(田中直紀) 방위상에 대해 자민당 등 야당은 사퇴공세를 퍼부었지만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한동안 버티기를 계속했고, 야당도 공세의 고삐를 잠시 멈췄다. 며칠 전 결국 교체되긴 했지만, 잘못하면 즉각 ‘목을 치는’ 속전속결은 아니었다. 정면대립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물밑조정을 거치는 ‘네마와시’ 관행도 정치의 결을 부드럽게 해준다.

한국은 전혀 다르다. 선과 악이라는 대립구도를 설정해두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치고받는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에 이단적 견해를 밝힌 이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처단했고, 자유당 시절에는 정적을 간첩으로 몰아 목숨마저 빼앗았다. 단군상을 파괴하고, ‘봉은사 땅밟기’ 놀이를 하는 한국 기독교 일부의 ‘폭주’는 이분법적 세계관의 극한을 보여준다.

선악 가르기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수난을 겪으면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당해온 한국인들의 정체성의 일부로 자리잡은 듯하다. 최근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종북논쟁, 국가관 논쟁은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전쟁 당시 정체 모를 사람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민가 방문을 열어젖히고 손전등의 불빛을 들이대며 좌익, 우익 어느 편인가를 묻는다. 전등 불빛 뒤에 가려진 상대방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힘없는 양민들은 유명이 갈렸다. 해방 후 60여년이 지나면서 한국경제의 볼륨은 커졌지만 정치의 볼륨은 그대로인 것 같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생각과 주장도 다양해지지만 정치는 양민들에게 손전등 불빛을 들이대던 한국전쟁 당시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친북의원들을 국회에 들여놔선 안된다’는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사파 사상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도 명백하다. 하지만 유력 대선후보까지 나서 종북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의 의원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화두인가라는 물음도 유효하다. 조리돌림과 마녀사냥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이 정치문화에서는 주사파가 ‘근절’된 이후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나설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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