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더 작아진 일본 외교

서의동 2012. 4. 26. 17:38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야 워낙 유명한 극우 포퓰리스트여서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이는 일본 안에서도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그가 최근 미국 워싱턴 강연회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빚어온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도쿄시민이 낸 세금으로 사들이겠다”며 오랜만에 ‘한방’ 날렸다. 일본 민주당 정부에 트라우마가 있는 센카쿠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를 비롯해 각료들이 “그렇다면 정부가 매입하겠다”며 뒷수습에 나섰다. 외교 파장도 커져 아들인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信晃) 자민당 간사장은 중국 방문을 취소했다. 그가 방중 때 강연하기로 한 상하이대학이 “부친의 발언 파문으로 강연이 어렵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는 나고야 시장인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가 중국 공산당 간부들 앞에서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한 난징(南京)대학살은 없었다”는 망언을 해 올해 수교 40주년을 맞은 중·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요즘 일본 외교는 노다 총리나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상보다 자치단체장들이 주도한다. 자치단체장들은 영토나 과거사 문제로 상대국을 자극해 부정적 파장을 일으키기 일쑤다. 마치 조슈한(長州藩)이나 사쓰마한(薩摩藩)의 지방영주들이 외국과 독자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뒷수습을 하느라 중앙정부인 바쿠후(幕府)가 체력을 소모하던 19세기 후반 에도시대 말기를 연상케 한다. 

민주당 정권의 초대 총리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가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내세우며 미국과 거리를 두려다가 혼쭐이 난 이후 일본 정부의 외교 ‘왜소증’은 더 심각해졌다. 미·일 동맹만 복원하면 나머지 이웃국가와의 관계는 적당히 해도 된다는 생각인지 인접국인 남북한, 중국과의 외교는 낙제수준에 가깝다. 정권기반이 취약하다 보니 강경여론이 지시하는 방향대로 움직인다. 이시하라는 이런 일본 정부의 약점을 잡고 한건 올린 것이다. 

대북관계도 마찬가지다. 북한과의 최대 현안인 납치피해자 문제는 ‘북한 때리기’ 스탠스로는 돌파구 마련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일본 정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태도를 바꾸면 받게 될 비판이 두려워 손을 놓고 있다. 2009년 설치된 내각부 납치대책본부는 활동실적이 없어 매년 예산을 남기고 있다. 납치피해자 가족들은 이런 일본 정부에 답답함을 감추지 못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납치문제에 ‘원죄’가 없는 김정은 체제가 성립되자 납북자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는 한껏 기대감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김정일 사후 넉달간 일본 정부가 의미있게 움직인 흔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의 전직 각료가 북쪽 파트너를 만나거나 현직 각료가 한국의 대북 라디오방송에 출연한 것이 고작이다. 

김 위원장 사망 초기에는 관방장관이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국면변화를 꾀하려던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얼마 가지 못했고, 북한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겠다고 한 뒤에는 과잉반응이라 할 만큼 강경태도로 돌아섰다. 일본의 강경태도가 어떤 전략 구상을 반영하고 있는지 읽어내기 어렵지만 요즘 한창인 주일미군 재편작업에서 자위대의 행동반경을 넓히는 데 활용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납치문제 해결은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

며칠전 만난 메구미의 모친 사키에(早紀江)는 차분하지만 또렷하게 일본 정부에 호소했다. “이웃나라 정권이 새로 바뀌었으니 총리가 ‘함께 평화를 이룩하자’는 정도의 메시지는 전할 수도 있지 않나요.” 잃어버린 딸을 찾아 35년을 살아온 칠순 노인의 질문에 일본 정부는 답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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