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한일비교](4) 영어에 대한 태도

서의동 2012. 9. 12. 10:50





얼마전 알고 지내는 일본기자와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다 잠시 놀란 적이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 처음으로 주쿠(塾. 한국의 학원)에 보냈다고 한다. "무슨 과목을 시키느냐"고 물었더니, 국어(일본어), 수학이란다. "영어 공부는 안시키냐"고 했더니, "영어야 아이가 대학 들어가서 유학을 가거나 필요를 느낄 때 공부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아니 초등학교 5학년 정도면 영어를 열심히 해야 될 때 아니냐"고 했더니 못알아듣는 눈치였다. 


영어에 대한 태도는 일본과 한국이 확연히 다르다. 한국은 유치원때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니게 할 정도로 '몰빵' 상태지만 일본은 관심이 희박하다. 도쿄에 주재하는 한 금융기관장은 "일본의 평균소득은 한국에 비해서 그리 높지 않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것은 사교육비 투자가 적기 때문"이라고까지 말한다. 사교육에서 상당비중을 차지하는 영어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다. 


물론 내가 사는 쿠가하라 부근에도 영어유치원이 있고, 동네 아는 한국인은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다. 하지만 어쨌건 영어교육에 투자하는 일본인들은 찾기 어렵다. 


영어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다른 주된 이유는 우선 내수시장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은 인구 1억2000만명이라는 탄탄한 내수시장이 있기 때문에 굳이 해외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다. 지금도 일본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해외영업이나, 해외금융 등 분야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영어를 필요로 하는 분야는 그리 많지 않다. 설혹 해외로 나가더라도 상대방이 일본어로 대응을 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시각에 대한 반론도 있다. 일본 시장이 어중간하게 크고, 그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처음부터 수출을 겨냥하는 확실한 전략적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전자업계가 최근 망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더구나, 유학수요도 줄어들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자료를 보면 해외에 유학하는 일본 학생은 2004년 8만2945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2008년에는 6만6833명으로 떨어졌다. 경기침체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있지만 취직활동 시기가 대학 2~3학년으로 앞당겨지면서 유학을 갔다가 취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유학이 취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정도 있다.(관련기사  '안으로 움추러드는 일본' 참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0112128525&code=970203)


대신, 일본어에 대한 관심은 높다. 일본 TV 퀴즈 프로그램을 보면 영어실력 보다 한자능력을 측정하는 문제들이 많이 나온다. 가끔 어려운 한자를 내주고 일본어로 어떻게 읽는지를 테스트한다. 


반면, 내수시장이 작은 한국은 '해외로 눈을 돌려야 살아남는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어릴적부터 '영어몰입'을 해야 한다. 한국은 90년대 중반, 내수시장이 조금 커지려 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내수시장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이 영어 부담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한국어를 갈고 닦는 그런 모습은 앞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