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한일비교](10)미국에 대한 태도

서의동 2012. 11. 18. 11:41

"1980년대에 미국과 보험시장 개방문제를 놓고 밀고 당기기 협상을 벌일 때였는데, 갑자기 등뒤에서 총알이 날아오더라.(後ろから銃弾が飛んでくる라고 그는 표현했다) 돌아보니 일본 신문들이 '적당히 양보해라'며 우리 협상팀을 공격하더라."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전 대장성(현 재무성) 차관을 지난해 11월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통상협상에서 국익을 지키기 위해 나선 자국 정부 협상팀에게 '적당히 미국에 져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그는 "일본 언론에게 미국은 성역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를 인터뷰하던 시점은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 자유무역협정(TPP)에 대해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참가의사를 표명하고 이에 대해 시민단체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여가던 때였다. 


특파원 업무중 절반쯤은 일본 신문과 방송을 체크하는 일이라, 매일 지겨울 정도로 일본 신문을 들여다 본다. 일본 신문들은 한국신문들과 다른 점이 상당히 많다. 우선 사진이 정적이다. 아는 일본기자는 "한국 신문에는 약동감이 느껴지는 사진들이 꽤 많이 실리는데 일본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스포츠면 사진들에는 생동감이 느껴지지만, 그 밖의 면에서 일본 지면은 착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다.  


둘째, 일본 신문(주로 종합일간지에 관한 것임) 들은 한국신문에 비해 뒷이야기가 많지 않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전혀 해설이 없지는 아니지만, 뭔가 부족하다. 그런 뒷이야기는 주간지들의 몫이 된다. 혹은 주간지가 먼저 기사를 써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오더라도 일간지들이 받아쓰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 6월 슈칸분슌(週刊文春)이 일본 정계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방사능이 무서워 피난갔다는 내용의 오자와의 아내가 쓴 편지를 단독입수해 특종보도했을 때도 이를 받아 쓴 신문들은 요미우리를 제외하곤 없었다. 꽤나 화제가 될 법한 내용이지만 일본 신문들은 "이런 기사는 주간지의 몫"이라고 여기는 듯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여성 접대부와 오랫동안 불륜관계였다는 주간지의 폭로기사도 신문들은 다루지 않았다. 일반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일본의 종합일간지와 주간지 사이에는 암묵적인 '업무분담'이 돼 있는 듯 하다. (한국과 일본 어느쪽이 바람직한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도시 한가운데 있으며 몇차례 헬기나 비행기가 시가지에 추락한 바 있다.



셋째, 일본 언론들에서 반미(反米)적인 보도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도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지난해 11월 TPP 협상에 일본이 참여할 지 여부를 놓고 일본내에서 논란이 거세게 일었지만 아사히(朝日), 요미우리(讀賣), 마이니치(每日), 산케이(産經), 도쿄(東京),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등 6대 일간지는 "TPP는 국익에 도움이 되니 참가해야 한다"며 찬성일색이었다. 지면에서 찬반토론은 전혀 보이지 않고 '참가해야 한다'는 결론을 먼저 던져놓은 뒤 각론에서 농업피해가 어떻게 되며 의료보험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찔금찔금 다루는 정도였다. 


한국의 '100분토론'같은 토론방송도 별로 없는 일본에서 신문들마저 여론수렴없이 한목소리로 TPP참가 지지를 표명하는 것을 보고 왜 저럴까 의아했다. 비교적 진보적인 논조를 보이는 아사히, 도쿄신문조차 TPP에는 약했다. 이유는 상대방이 미국이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최근 미군병사에 의한 강간사건과 '과부제조기' 오스프리 배치문제로 국민여론은 들끓고 있지만 일본 신문들은 잘해야 '단발보도'에 그치고 있다. 주일미군의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한 언론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물론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와 지역신문들중에서는 열심히 하는 곳도 있다) 


얼마전 중일관계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마고사키 우케루(孫崎亨) 전 외무성 국장은 "일본 언론들은 반미적 태도를 보인 정치인들은 무자비하게 공격한다"고 지적한다. 오키나와 후텐마기지를 섬바깥으로 이전시키겠다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초대 총리와 "주일미군은 제7함대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발언을 한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는 하이에나 같은 언론들의 공격으로 회복불능의 타격을 입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을 대하는 태도에서 일본 언론과 한국 언론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 차이의 원인이 뭔지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적어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문제에 대해 한국내 진보언론들은 집요하게 문제점을 파고 들어갔다. 당시 경향신문, 한겨레가 언론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강도로 협정의 문제점, 한국 정부의 협상태도를 비판했다. 그런 FTA 보도를 직접 담당했던 필자로서는 TPP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요령부득이었다. 이 글은 이렇게 끝맺으면 간단할 것 같다. "일본에는 경향, 한겨레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