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한일비교](9)일본의 쇼와(昭和)열광

서의동 2012. 10. 31. 17:42

얼마전 TV에서 70~90년대 일본 아이돌 특집을 방영했다. 일본의 여장 남자 방송인 마쓰코 디럭스와 30~40대 여성들이 대거 출연해 아이돌 가수들의 옛날 영상들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일본인들의 쇼와사랑은 못말린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005년에 개봉해 대히트한 영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포스터



쇼와시대는 1926~1989년의 기간을 가리키지만 보통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를 떠올린다. 2005년 제작돼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3탄까지 제작된 영화 <올웨이즈 3번가(三町目)의 석양>은 1955년부터 1964년 도쿄올림픽 때까지가 배경이다. 일본인들은 이 시기를 '패전에서 벗어나 전 국민이 성장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희망의 시대. 가난해도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꿈과 따뜻한 가족애가 있던 시절'로 기억한다. 


일본의 고도성장이 70년대 오일쇼크, 85년 플라자합의에 의해 한풀 꺾이긴 시작하지만 80년대말 버블경제가 형성되면서 성장세는 이어졌다. 젊은이들이 도쿄시내 '줄리아나'라는 디스코텍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던 장면은 아직도 방송화면에 가끔씩 등장한다. 


버블이 꺼진 이후, 일본 사회는 성장이 멈춘 상태로 20년의 세월이 이어진다. 80년대말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던 세대들은 아직도 풍부한 자산을 바탕으로 노년의 생활을 즐긴다. 하지만 90년대 취업빙하기에 사회로 쏟아져 나온 많은 젊은이들은 거품붕괴의 후유증에 피폭된 생활을 강요받는다. 일본사회가 전반적으로 활력을 상실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복고취향이 강해진다. 


이런 복고지향성은 대중문화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방송사들은 버블이 끝나기 전까지의 황금시대를 누비던 아이돌들의 영상들을 자주 내보낸다. 제작비가 별로 안들면서 시청률이 어느 정도 확보되니까 각 방송사들이 심심하면 앞다퉈 '레트로 특집'을 내보낸다. 80년대 '3대 여자 아이돌'로 불리던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 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 고이즈미 교코(小泉今日子)와 한국에도 노래가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던 곤도 마사히코(近藤真彦)같은 이들의 영상은 시청률을 확실하게 보장한다. 


고도성장을 하다 선진국 반열에 접어들면서 성장세가 느려지고, 활력이 떨어지는 사회에서 복고주의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일본 TV의 경우 이런 경향이 조금 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괴로운 현실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도피욕망과 방송사들의 상업주의적 타산이 만들어낸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에서 최근 <응답하라 1997>이라는 드라마가 대히트를 쳤다고 한다. 직접 보지 못해 그 현상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90년대 중반은 한국에서도 내수가 커지던 시기였다. 80년대 말 민주화가 되고 90년대 소득불평등이 완화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산층의 볼륨이 커지던 시기다. 물론 1997년말 외환위기로 곤두박질치긴 했지만. 

이명박 정권들어 사회격차가 더 심화된 현실에서 90년대를 그린 드라마가 히트한 것은 우연이 아닐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