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한일비교](11)전통에 대한 태도

서의동 2013. 2. 4. 18:28

어제는 일본의 절기인 '세쓰분(節分)'이었다. 콩을 밖으로 던지면서 '귀신은 밖으로, 복은 안으로(鬼は外、福は内)'라는 주문을 외는 풍습으로 유명한 이날 전국적으로 행사가 벌어졌다. 절이나 신사에 많은 이들이 모여 유명인이 던지는 콩을 받으며 한해의 복을 기원한다. 역도산의 묘소가 있는 우리 집 근처 이케가미 혼몬지(池上本門寺)를 비롯해 각 신사에서는 콩던지기 행사들이 벌어졌다. 


세쓰분의 콩던지기 행사장면


유럽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살아본 외국은 일본뿐이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일본은 한국에 비해 전통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라임엔 틀림없다. 절기가 다가오면 그 절기에 따라 정해진 다양한 전통행사가 펼쳐진다. 신문 방송들도 이런 전통행사를 꽤 상세하게 보도한다. 그런 시기가 되면 남자들은 하카마를 두른 전통복장, 여성들은 후리소데를 입고 거리를 오간다. 부러운 광경임에 틀림없다. 


전통스포츠나 예능도 변함없는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독특한 제스처로 스모계의 '로보캅'으로 불리며 요코즈나보다도 인기를 누렸던 다카미사카리(高見盛)가 최근 36세 나이로 은퇴하면서 큰 화제를 몰고왔다. 얼마전 '쇼와의 영웅' 다이호(大鵬)이 타계했을 때 일본 신문들은 몇개면에 걸쳐 그를 추도했고, 방송들은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해 내보냈다. 


이치카와 에비조가 공연한 가부키 '시바라쿠'


일본의 전통연극 가부키 배우들은 영화배우 이상의 인기를 누리며 방송활동도 잦다. 가부키 배우인 이치카와 에비조(市川海老藏)은 귀공자다운 마스크로 영화배우로도 활약하고 있다. 실제로 가부키는 일본인들도 어렵다고 할 정도지만 가부키 배우들은 영화나 방송출연을 통해 대중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전통 복장을 입은 남성이 부채를 들고 방석에 앉은 채로 청중들을 향해 만담을 풀어놓는 라쿠고(落語)도 여전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일본의 민영방송인 니혼TV가 매주 일요일 오후 방송하는 라쿠고 프로그램 소텐(笑点)은 시청률이 오락부문에서 늘 상위권에 올라있다. 


오늘 아침 가부키의 거성인 12대 이치카와 단주로(市川團十郞)의 타계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했다. 아침 방송은 첫소식으로, 신문들은 1면 주요기사를 실어 백혈병과 오랜 투병 끝에 향년 66세로 타계한 이치카와 단주로가 "현대 가부키를 더욱 발전시켰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일본의 전통예술이 이처럼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후원문화다. 교토의 실업가들은 교토의 명물인 마이코와 게이샤를 키우기 위해 적지 않은 '후원금'을 요정에 낸다. 스모선수들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그 자리에서 흰 봉투 다발을 받는데 봉투당 7만엔씩 들어있다. (상세한 내용은 좀더 취재를 해서 보강할 계획)


매스컴의 역할도 크다. NHK는 매주 일요일 역사물 대하드라마를 통해 과거 역사와 전통을 대중들에 친숙하게 만든다. NHK가 매주 수요일 밤 방영하는 ‘역사비화-히스토리아’도 다양한 에피소드를 끄집어내 알기쉽게 설명해준다. 최근 방영한 ‘오이란(花魁)의 진실-에도 요시와라유곽의 빛과 그림자’는 19세기 인상파 화가들까지 그림의 소재로 삼았던 오이란(최고지위의 유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매스미디어가 전통행사들을 이처럼 적극적으로 다루면서 대중의 친밀도가 높아진다. 


전국 곳곳에 신사와 절이 산재해 있는 것도 전통문화에 대한 친숙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매년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마쓰리는 주민이 직접 참여해 전통을 몸으로 계승할 수 있는 기회다. 

역사적으로도 근대 이전에는 막번체제라는 지방분권체제 하에서 지역별로 독특한 전통문화가 자라날 수 있었고, 근대이후 국민국가가 되면서도 함부로 버리기 보다는 보존해왔고, 이를 다른 지방사람들이 즐기면서 전국적인 무형자산으로 발전됐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본 방송중에 '켄민(縣民)쇼'라는 오락 프로그램이 있는데 47개 광역자치단체 별로 독특한 풍습이나 문화를 소개하고 즐기는 내용이다.


나마하게 마쓰리의 한 장면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풍습이 비지니스의 기회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동북지방의 아키타(秋田)현 오가(男鹿)시에서는 나마하게(なまはげ)라는 전통 마쓰리가 있다. 섣달그믐날 귀신탈을 쓴 청년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부모말 안드는 아이들을 징계하는 풍습인데, 아이들은 귀신탈만 보면 놀라 자빠지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 행사가 인기를 모으면서 도쿄에 나마하게가 등장하는 술집까지 생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