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은 파란색 점퍼를 입고, 어깨에 배낭을 걸치고 나타났다. 말은 매우 어눌한 편이어서, 발음이 또렷하지는 않았다. 2시간 조금 넘는 인터뷰 분량의 녹취를 푸느라 고생깨나 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을 높이 평가했다. "일본은 축소해야 할 시기" "경제성장을 안하고도 견디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말들은 많은 생각거리를 제시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문예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72)은 “지금은 성장이나 변화를 하지 않으면 못견디는 시대가 됐지만,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은가’라는 생각, ‘스몰 이즈 뷰티풀(Small is beautiful)’이라는 사고가 오히려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가라타니는 경향신문과의 신년 특별인터뷰에서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이후 일본 사회에 대해 “(강한 일본을 외쳐온) 자민당이 집권한 이번 선거결과처럼 좀 더 성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표면적으로 대두한 반면 안전하고 한가롭게 살자,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려는 움직임들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지난 수십년 동안 일본 사회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탈원전) ‘데모(시위)’도 이런 (시민들의) 염원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6일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가라타니의 저작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바 있는 박유하 세종대 교수(일어일문과)의 대담형식으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도쿄 주일한국대사관에 있는 한국문화원 사랑방에서 가라타니 고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by 서의동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보수 정권이 등장하게 됐다. 선거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일본뿐 아니라 현대 세계는 어느 나라도 예외없이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반드시 빈부격차가 생기게 마련이지만 ‘네이션(국민)’은 평등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있으면 안된다. 그래서 국가가 세금에 의해 부를 재분배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국가와 관료를 강하게 만들뿐이라는 것이 내가 이야기해온 ‘자본-네이션-국가’ 개념이다. 각국은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 요소가 작동하고 있고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우 3년 전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고, 크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별로 변하지 않았다. 자본-네이션-국가의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바뀔 수도 없고, 지나치게 바뀌려고 할 경우 원상태로 환원된다. 1990년대에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지금도 그런 상태이고, 이후는 (변화가 아니라 과거에 이미 있었던 일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변화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체인지(변화)’를 외쳤지만 결국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목하는 것은 이 ‘자본-네이션-국가’(라는 구조를) 어떻게 하면 붕괴시킬 것인가이다.”
가라타니는 2001년 발표한 <트랜스 크래틱>을 통해 ‘자본-네이션-국가’라는 독특한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국가를 경시했다고 비판해온 그는 국가가 근본적으로 산업자본주의와 연결돼 있으며, 이를 떠받치는 것이 네이션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국가는 군대와 관료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므로 이 3가지를 함께 비판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국가에 의한 재분배만으로는 현실적인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선생이 쓴 <세계사의 구조> 중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여긴 부분은 기존의 진보적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다. 선거에서 보수세력이 승리해 리버럴(진보) 세력이 낙담하고 있지만 선생의 책을 보면 국가와 경제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어느 쪽이 이기든 결국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것도 ‘자본-네이션-국가’ 시스템의 한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넘어서는 방법은 직접 민주주의이고, 직접 민주주의는 데모(시위)이다. 총리관저와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탈원전 시위는 소란이 아니라 하나의 어셈블리(의회)이다. 어찌보면 담장너머 (실제 국회라는) 어셈블리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국회의원들이 시위대에 인사하러 오고 하지 않았는가. 일본에서 아마 수십년간 처음으로 일어난 변화라고 하면 ‘데모’다. 그 시위가 가장 치열했던 것이 지난해 6월로, 국회 앞에 20만명이 모였다.”
-지난해 일본에 있으면서 선생이 탈원전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직접 참가해보니 어떤 느낌인가.
“(과거 학생운동 시절을 포함해) 시위에 상당히 참가한 편이지만, 일본에서 이런 방식의 데모가 없었는데 드디어 일어나는구나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해외에 머무르다가 지난해 12월 귀국한 후에도 두 번 참가했다. 정부(국가)가 이런 움직임을 봉쇄하려고 국제적으로 긴장을 조성했지만 시위의 흐름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시위라는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가 (일본에 비해) 활성화된 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1975년 미국에 갔을 때 그곳의 대통령 선거를 1년간 지켜보면서‘풀뿌리 민주주의란 게 이런 거구나’하는 감동을 받았다. 선거가 아니라 (사회)운동이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몇 차례 더 지켜본 뒤 ‘이건 그냥 마쓰리(축제)이고, 아무리 해봐야 본질적으로 바뀌는 건 없겠구나’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후 거리를 두게 됐다. (선거를 해봐야) 바뀌었다는 기분만 들지 실제론 어느 것 하나 바뀐 건 없다는 느낌이 일찌감치 들었던 것이다. 한국의 상황도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던 당시의 선거는 신선감이 있었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그냥 축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여기에 과하게 기대를 걸면서) 직접 민주주의를 등한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진보나 보수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마찬가지라는 뜻인가.
“(직접 민주주의를 중시한다고 해서) 의회를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중시한다. 하지만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이번에 선거에서 승리한 정권이 시위를 제한하려 하고, 그 영향으로 시위가 줄어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진보가) 선거에서 이기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가 무언가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총선거는 대부분 시골·지역의 선거이기 때문에 ‘헌법 9조(평화헌법)’ 문제 등은 쟁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선거를 그냥 방치해서도 안된다고 본다. (자민당 정권이라고 해서) 헌법 9조를 고치자는 국민투표는 안할 것이라고 본다. (반대표가 많아) 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안심한다.”
-선생은 국가가 단순한 상부구조가 아니라 실은 하부구조이자 능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마르크스 등이 경시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진보는 아직 국가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고, 최근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주된 의제였다. 재벌문제에 대해서도 진보세력들이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산업자본과 결합된 ‘국가’의 문제를 보지 않는 자본주의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가에 대해 신자유주의식으로 의존하지 말자는 시각과 국가로 하여금 (제대로) 역할하도록 하자는 논의 두 가지가 있는 데, 이 두 가지 외에 길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본다. 노동운동은 한계가 있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하는 데 비자본주의적인 경제를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운동이 그 중 하나다. 지금도 비자본주의적인 생존방법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부분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내가 생활공동조합에 관여하고 있는 데, 이런 방식을 확산시켜갈 필요가 있다.”
-선생은 이런 비자본주의적인 경제를 낳는 수단으로 지역통화운동에도 간여한 적이 있다.
“지역통화를 만들면 지역경제의 부(富)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이런 방식을 뒷받침하는 법률이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는 의회가 필요하다. 민주당 정권이 출범 당시 경제정책으로 공동조합 등을 언급했고, 민주당에 기대했지만 결국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끝났다.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만 허용하면 지역통화는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지역통화를 하지 않으면 지역분권은 성립할 수 없다.”
-원전사고 이후에 ‘작은 나라’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탈원전 집회에서도 이런 문제제기들이 등장하곤 했다.
“일본의 경제는 이미 피크를 지났다. 나는 한국학자 이어령이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최근 다시 읽었다. 일본이 ‘재팬 애즈 넘버원’으로 통하던 시절에 쓰여진 책인 데, 현재의 일본인들에게 매우 시사적이다. 일본은 피크를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어떻게 바람직하게 축소하느냐를 염두에 둬야 할 시기인데 다시 성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나는 ‘작은 나라’론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강한 일본론’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어령의 책은 ‘일본은 축소할 때가 좋은 모습이다’라는 메시지인 데, 책 중에 ‘잇슨보시(一村法師·일본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동자)’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잇슨보시는 작아도 강력한 존재다. 잇슨보시 같은 사고방식은 일본 외에는 찾기 어렵다. 3.11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표면적으로는 (자민당이 승리한) 이번 선거에서 제기된 것처럼 좀 더 성장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축소하자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 본질적인 변화라고 본다. 안전하고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그리고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자는 발상들이다.”
-한국에서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최근들어 더 물질적 풍요에 대한 욕망과 강자주의적 사고가 팽배해있다.
“세계 전반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은 더 이상 불가능해지는 시기가 됐다. 중국조차 얼마 안가면 일본 이상의 노령사회가 될 것이다. 이런 시기에 경제발전을 외쳐봐야 공허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자본주의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경제성장을 하지 않고도 유지되는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은 성장이나 변화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대가 됐지만 발전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대담자인 박유하 세종대 교수(왼쪽). 박교수는 가라타니의 책을 처음으로 한국에 번역, 소개한 바 있다. by 서의동
-원전문제도 부국지향 경제와 연관시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선생은 지구온난화 이론이 원전정책을 뒷받침해 왔다고 말해왔다.
“이전의 진보세대는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강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작년에 타계한 (일본의 평론가) 요시모토 타카아키(吉本隆明)도 ‘원전을 멈추면 인류는 원숭이로 돌아간다’며 반원전론을 비판했지만, 일본공산당도 몇해 전만 해도 ‘안전한 원전이라면 괜찮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일본에서는 1970~1980년부터 원전비판이 시작됐고, 현재 반원전 운동의 중심인 고이데 히로아키(小出裕章·교토대 원자력실험실 조교) 등이 당시부터 운동을 해왔지만 이들의 주장은 무시돼 왔다. 지금 일본은 원전이 54기나 되지만 반대운동이 시작될 무렵엔 2~3기 밖에 없었다. 왜 반대운동의 동력이 상실됐는가를 원전사고를 겪으며 생각해보니 이산화탄소 배출이 지구를 온난화로 몰고 간다는 온난화이론이 나오면서 반대론자들이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런 점에서 온난화 이론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고 음모가 아닌가 싶다. 지구온난화가 될 경우 탄산가스가 증가하지만 그 역이 반드시 성립되지는 않는다. 탈원전 시민운동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실제로 원전사고에 따른 (건강 등의) 피해는 지금부터 불거져 나올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운동이 중단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원전 재가동에서 한 발 나아가 새 원전을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 식민지를 만들었을 때 식민지로 건너간 이들 중에는 가난한 농촌의 차남이나 삼남들이 많았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돌아와 농장 등을 경영하면서 겨우 일군 생활기반이 원전사고로 하루아침에 붕괴된 경우도 있다. 그들은 국가에 의해 두번씩 버려진 사람들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문제를 생각해보면 원전을 받아들인 지역들이 다 빈곤하다. 제대로 된 산업기반이 없으니 원전 재가동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선택을 무작정 비난만 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원전문제는 사회 전체적인 문제로 접근해 풀 수밖에 없다.”
-영토문제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최근들어 미국의 파워가 약해지면서 한·일 갈등이 격화되는 묘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실은 미국이 야기한 문제도 많은 데 한·일 관계만으로 보려는 시각이 많다.
“미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이제 더 이상 ‘헤게모니 국가’가 아니게 된 데 있다. 유지할 능력이 없는 데도 (헤게모니를) 유지하려고 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일본 오키나와에 미군기지를 두고 있지만 이 비용을 전부 일본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이런 군대가 있을 수 있는가. 한·일 영토갈등에 관해서 본다면 과거 영국 등이 식민지 지배를 마무리하고 철수하면서 영토분쟁의 불씨를 만들어둔 사례가 많았다. (인도-파키스탄간의) 카슈미르 분쟁이나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분쟁이 그런 사례이다. 미국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에 대한 군사점령이 끝난 이후 중국과는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한국과는 독도, 소련과는 북방영토(쿠릴열도) 문제를 남겨뒀다.”
-영토갈등의 문제가 결국 아베 정권이 성립하게 된 배경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영토갈등은 일본에서 보자면 탈원전 운동과 미군기지 반대운동이 격화되자 국면전환을 위해 국제적 긴장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원전 시위가 격화되던 무렵에 일본 정부는 센카구열도 국유화를 발표했다. 그것도 중일전쟁 발발일이던 7월7일(1937년 7월7일 발생한 노구교(蘆溝橋)사건을 계기로 중일전쟁이 시작됨)이다. 이것은 상대방을 일부러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고, 결국 의도대로 됐다. 사고가 잦은 미군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의 미군기지 배치에 대한 일본내 여론반발이 격화되자 이대로 가면 미군기지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진 듯 하다. (한·일 갈등이)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갔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국가는 언제나 위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에 의해 국내문제를 해소하려 든다. 여기에 특히 미국의 이익이 관련돼 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본 총리 정도는 쉽게 갈아치울 수 있다. 한·일관계는 민간 차원에서는 매우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독도 등) 외딴 섬을 쟁점으로 시민차원의 교류를 국가가 짓밟고 있는 형국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실 일본인의 대부분이 독도에 대해 몰랐다. 돌연 국가가 떠들어대는 주장에 휩쓸려버리고 말았다.(독도가) 없으면 안된다는 식의 바보같은 거짓말은 그만했으며 좋겠다.”
가라타니는 ‘생산양식’을 통해 사고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현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증여’와 ‘호혜’라는 교환양식의 회복을 통해 애초부터 격차가 생기지 않는 교환적 정의를 실현할 것을 주장해왔다. 국가간 관계의 적대를 그만두고 모든 나라가 유엔에 군사적 주권을 증여하는 혁명이 일어날 경우 이것이 ‘세계동시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동시혁명이지만 어느 한나라로부터 시작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선생이 말해 온 세계공화국 이야기에 관해 설명해달라.
“<세계사의 구조>를 쓴 것은 구조의 문제를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해온 ‘제국’의 개념으로 보면 유럽에는 제국이 없었다. 중국은 명실상부한 제국이다. 중국은 중화세계와 질서를 만들었지만 그 영향권에 있는 속국들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이슬람 제국들도 마찬가지여서 그리스트교 세력과 공존하고 있었지만 유럽은 기독교도 외에는 배제해버렸다. 반면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관계는 서방에서 보는 것처럼 종속시키는 형태가 아니라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다. 인디언에 대한 미국의 태도와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다르다. 중국은 서방에서 보듯 분할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다른 제국은 짧았지만, 중국은 왕조가 교체됐을뿐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제국’이란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일본처럼) 제국에 걸맞는 권위를 갖지 못한 나라가 영토를 넓혀가려 들면 곧 제국주의가 된다. 내가 말해온 ‘세계공화국’은 군비의 증여라는 방식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실제로 ‘증여’의 힘은 무력보다 강하다. 네이션도 증여를 받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국민이 국가에 복속하게 되고 강력해지는 것이다. 보호를 받았으니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논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내걸고 북한을 지원한 것을 한국의 보수는 비판했지만 그것도 ‘증여’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해된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 (일본을 비롯해 주변국이) 북한의 위협을 늘 이야기하지만, 정작 북한은 이쪽을 두려워하고 있다. 바퀴벌레를 사람들이 두려워하지만, 사실은 바퀴벌레 쪽이 더 공포를 느낀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다며 호들갑이지만 주변국들은 늘 발사하고 있지 않는가. 국가가 만들어낸 공포에 사람들이 휩쓸려가는 것이다.”
-선생이 말하는 세계동시혁명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일본의 평화헌법이 미국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는 비판이 많지만 나는 그렇게 강요되기 전의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이 오랫동안 치러온 전쟁에 대해 ‘이제 더는 싫다’고 생각하게 된 경위를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이 (냉전 초기에) 재군비를 요구했을 때 일본 정부가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 일본의 세계적인 군비수준을 생각해보면 평화헌법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헌법 9조(평화헌법)를 내걸고 있다. 헌법 9조를 실행하지는 않지만 폐기하지도 않는 상태이다. 모순이라고 여겨지겠지만 그래도 이 평화헌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일본이 지독한 짓을 많이 했고, 그에 대한 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으로 보면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이 이뤄질 시기가 올 것으로 본다. 여러가지 얽혀있는 문제들이 어느 순간에 해결되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군사권을 증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군대를 갖지 않는 것이다. 보통 말하자면 무장해제이고 항복이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유엔에 군사포기 선언을 하는 것이다. 나는 군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고 보고 있다.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일 것이다. 만주사변을 일으켰던 이시하라 간지(石原莞爾, 1886~1949)는 2차 대전 패전 이후 전면적인 전쟁포기를 선언했다. 일본군의 최고 리더가 내린 결론이 완전한 전쟁포기였다. 극한적인 (전쟁)상태를 경험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내 주장이 현실성이 없다고 하지만 오히려 지금 오피니언 리더들이 하는 이야기가 더 공상가적이다.”
by 서의동
-2013년을 맞이하면서 일본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의 독자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들려달라.
“‘스몰 이스 뷰티풀(Small is beautiful·작은 것이 아름답다)’ 정도일까. 한국 독자들에 대해서는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것을 의심하라. 자본-네이션-국가를 끝까지 의심하라.”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일본의 문학평론가에서 출발해 다방면에 걸쳐 탁월한 비평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이다. 20대에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이론으로 문예지 <군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가라타니는 철학적인 사고에 기초한 문예비평으로 현대 일본 비평계를 이끌어왔으며, 슬라보예 지젝이 그의 저작을 높이 평가할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철학자는 물론 경제·건축·수학자들까지도 그의 텍스트를 참고해야 정도로 그의 사상적 지평은 전방위적이다.
가라타니는 특히 마르크스와 칸트 등 서양 사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자본과 국가에 대해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확립했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서는 국가에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돼 온 문학이 실은 국가주의를 떠받치고 있다며 문학 속에 잠재된 내셔널리즘을 제시해 반향을 일으켰다.
가라타니는 이론뿐 아니라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발언해온 실천가이기도 하다. 도쿄대 재학 중인 1960년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해 일어난 ‘안보투쟁’에 참여했으며, 1991년 걸프전쟁 때는 일본의 참전을 반대하는 문학인의 ‘반전성명’를 주도했다.
가라타니는 한국 현대문학을 연구하는 국문학자와 비평가들이 지난 20년간 논문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외국 지성으로 꼽힐 정도로 한국 비평계와 학계에 끼친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키거나 소개할 때 한국의 정치·사회·문화적 현상을 적극 도입하기도 한다. 최근 저작 <세계사의 구조>를 집필하며 아시아의 구조를 해명하는 데 ‘선덕여왕’ 같은 한국 드라마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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