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어떤 대만 청년의 일본 농촌 귀농기

서의동 2012. 11. 17. 12:52

‘ㄱ’자를 거꾸로 쓴 모양으로 동해쪽으로 뻗어 있는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반도의 노토초(町). 2011년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산의 경사면을 활용한 다락논, 재래식 제염법 등 일본 전통의 농촌·농업문화와 경관이 남아있는 곳이다. 노토초에서도‘슌란(春蘭)마을’으로 불리는 미아치(宮地)·미즈호(瑞穗)지구에 5년전 한 대만 청년이 찾아왔다. 

 

대만 타이페이(台北)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에 유학해 ‘투어리즘’을 공부하던 청년은 처음 접한 이 마을이 처음부터 낯설지가 않았다. 이국 땅의 시골이지만 고향 같은 푸근함을 느꼈다. 젊은이들이 자취를 감췄고, 폐가들이 늘어나면서 고령자들이 절반이 넘는 초고령화 마을이지만 사람들의 인정 만큼은 흘러넘칠 정도로 넉넉했다. 한달 일정으로 농가에 머물며 농사일과 농촌체험 등을 돕는 동안 자신을 친손자처럼 아껴준 주민들과 헤어지기 어려웠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이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을 어른들의 인정에 푹 빠져 크게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지난 2일 슌란마을에서 만난 왕밍하우(汪銘晧·30)가 들려준 귀농담이다. 2007년 이곳에 정착한 뒤 대학시절 만난 아내(28)도 이곳으로 데려와 마을 주민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까지 성대히 치렀다. 그의 직함은 ‘슌란마을 실행위원회’ 사무국장. 15년 전부터 농가민박을 통해 마을재생을 꾀하고 있는 이곳에서 농촌체험 예약접수 등 그린 투어리즘과 관련한 실무를 맡고 있다. 


대만청년 왕밍하우는 이곳 이시카와 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왕밍하우 제공

 


노토초는 2010년 시점으로 고령화율(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36.9%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미즈호, 미야치 마을은 16개 취락 가운데 6곳의 고령화율이 절반을 넘는 초고령화 지역이다. 

 

“이대로 가면 마을이 통째로 없어질지 모른다.”

초고령화로 학교가 폐교했고, 아이울음 소리조차 끊긴 마을을 어떻게든 되살리기 위해 1996년 마을 유지 7명이 대책위원회를 만든다.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농촌마을’ 을 만들기로 하고 마을 이름부터 이곳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 ‘슌란’으로 바꿨다.

 

마을개조의 산파역인 다다 기이치로(多田喜一郞·64)가 우선 먼저 농가민박을 시작했다. 집 방바닥의 일부를 네모나게 잘라낸 뒤 재를 깔아 불을 피우는 일본의 전통 난방장치 이로리를 설치하고, 이시카와(石川)현의 전통 칠기인 와지마(輪島) 그릇에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건강식으로 도시 손님을 맞이했다. 농가민박 사업이 10여년을 거치며 궤도에 오르자 12개 마을에서 30개의 농가민박이 만들어져 한번에 200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됐다. 

 

또 버섯채취, 다락밭에 모심기, 물고기 잡이 등 이곳을 찾은 도시민들이 계절에 맞는 자연·농업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체험의 종류도 숯굽기, 간벌 및 목재운반, 밥짓기, 낚시, 반딧불이 체험 등 수십가지에 이른다. 간벌 등의 일손돕기를 할 경우 숙박비를 깎아주는 할인 프로그램도 있다. 폐교된 학교를 숙박과 다양한 친교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개조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아이가 있는 도시민, 학생들의 단체방문 등이 이어져 올들어 5600명이 이곳을 찾았다. 

 

지난해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사례를 매년 발굴해 소개하는 ‘월드 챌런지’ 기획프로그램에 선정돼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한국, 대만, 말레이시아는 물론 네팔, 이란, 이스라엘 등에서도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왕밍하우의 결혼식에 참석한 마을 주민들/왕밍하우 제공


 

젊은이들의 방문이 늘어나면서 마을 주민들의 얼굴도 밝아지고, 건강해졌다. 농가민박 ‘지로시로’ 주인 후쿠이 시게루(福井繁·70)는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접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왕 국장은 “이곳 주민들은 실제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고 활동력이 있다. 77살에 운전면허를 처음 딴 할머니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곳의 하루 숙박비(2끼 식사 포함)는 1인당 9500엔(약 13만원)으로 결코 싼 가격이 아니다. 일본 각지를 연결하는 신간센도 이곳으로는 연결되지 않아 교통편도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화학조미료와 설탕을 쓰지 않은 건강식과, 다양한 농촌체험을 한 뒤 밤이 되면 이로리에 둘러앉아 불을 쬐며 차를 마시거나 집주인과 정담을 나누는 하룻밤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노토초의 그린투어리즘 추진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다다는 “건강하고 인심좋은 노인들이 이 마을의 자원”이라며 “아이 키우기에 서투른 젊은이들이 노인들이 지닌 삶의 지혜를 듣기 위해 오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농가민박 사업이 탄력을 받으면서 도시로 떠났던 자녀들이 하나둘씩 이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귀향하고 있다. 사람이 없어 중단했던 전통 마을축제도 2010년에 부활했다. 슌란마을 입구에는 전기자동차를 위한 충전소가 설치돼 있다. 마을 곳곳에 있는 물레방아와 태양광패널로 마을 전체의 전력을 충당하는 등 친환경을 지향한다.  

 

이시카와 현은 지리적 위치상 예로부터 조선이나 러시아, 중국에서 난파선들이 해류를 타고 표착하는 일이 많던 곳이다. 도시화에 따른 인간소외라는 ‘해류’에 밀려 표착한 이들에게 넉넉한 인심을 제공하는 슌란마을은 동아시아인들이 허물없이 마음과 마음을 잇는 교류거점으로 자라나고 있다.  

 

왕 국장은 “언젠가는 대만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계속 있고 싶다. 아내도 이곳 생활에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마을에서 ‘왕군’이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그의 최대의 임무는 마을 주민들에게 아이울음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마을 어른들이 빨리 아이 낳으라고 성화입니다. 열심히 노력 중이니 곧 좋은 일이 있겠죠.” 안경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이 더 작아졌다.


 “재료비와 생활비로 매달 10만엔씩 지원받으면서 공예연수를 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지요.”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 우타츠(卯辰)산 중턱에 자리잡은 ‘가나자와 우타쓰야마 공예공방’은 일본의 전통공예가 지금도 세계적으로 빛을 발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곳이다. 올해부터 이곳에서 유리공예 연수를 하고 있는 강민행씨(32·여)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유리공예에 관심을 가져오다가 우타쓰야마 공예공방 연수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이시카와 현청 소재지인 가나자와시는 전통공예를 300여년 이상 계승해 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일본 전통공예의 산실이다. 가나자와는 오래 전부터 금박, 염색, 칠기 등 전통공예가 번성한 곳으로, 기술수준도 1000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京都)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타쓰야마(卯辰山) 공예공방은 가나자와가 시로 지정된 지 100년이 되던 1989년 설립됐다. 도예, 칠기, 염색, 금속공예, 유리공예 등 5개 부문에서 35세 이하의 젊은 예술가들을 모집해 일본 전통공예를 계승토록 지원하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이 전통공예에 기반해 창조적인 모노즈쿠리를 하도록’하자는 취지다. 대개 일본에서 미대나 예술대 졸업생들의 지원이 많지만 국적을 불문하고 재능있는 젊은 예술인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매달 10만엔의 연수비를 시가 지원한다. 강씨는 “도쿄와 달리 집세와 물가가 저렴해 월 10만엔으로도 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다”고 말했다.

 최대 3년간의 연수생활을 마친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곳에 남아 활동한다. 세계 각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예술적 지평을 넓혀가는 거점도시가 되는 셈이다. 지난해 이시카와현에서 개최된 세계적인 요리 이벤트에서는 세계 정상의 셰프 15인이 만드는 요리에 우타쓰야마 공방 연수자들이 제작한 그릇들이 쓰이기도 했다.

 공예공방에서는 각기 전문분야뿐 아니라 다도나 서예, 꽃꽃이 등을 연수자들이 익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일본 전통문화 전반에 대한 소양을 키우도록 해 일본의 ‘전통미’가 작품에서 은근히 배어나오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올해 4월부터 도자기 공예를 연수 중인 대만인 정웬틴(28·여)은 “도예공예뿐 아니라 일본의 차도와 꽃꽂이도 배우며 일본의 전통문화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있다”며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섬세하게 신경쓰는 일본 도예기술에 감탄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