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와세다대학 지원자가 줄어든 이유

서의동 2013. 3. 28. 10:22

일본 도쿄에 있는 와세다(早稻田)대학은 게이오(慶應)대학과 쌍벽을 이루는 사학 명문이다. 예로부터 출세를 위해 상경한 지방학생들이 ‘청운의 꿈’을 불태우던 곳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한 통계를 보면 최근 5년 새 1만명 가까이 지원학생이 감소했다. 그 중 태반은 지방 학생들이다.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대학입시센터시험’을 친 수험생들의 진학희망 대학을 보면 올해에는 메이죠(名城)대(나고야), 긴키(近畿)대(오사카) 등 지방대가 강세를 보인 반면 도쿄소재 대학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수험생들이 수도권보다는 출신지 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지방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던 와세다대가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와세다대 오쿠마강당(출처=위키피디아)


일본 지방학생들의 ‘지역지향’ 경향에 대해 가와이쥬쿠(河合塾) 등 입시학원 전문가들은 취직난 때문에 도쿄유학 비용을 취직으로 회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데다 1자녀 가정이 늘면서 자녀들이 부모를 배려해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선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학입시 뿐 아니라 취업·거주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도 청년층의 ‘탈수도권’ 혹은 ‘지역애착’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재작년 도쿄대학이 동해 쪽에 위치한 후쿠이(福井)현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66%가 ‘현내 대학 진학’을 희망했으며, 현외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졸업후 후쿠이현으로 돌아와 취직하겠다는 응답이 88%에 달했다. 최근 일본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 ‘사토리(득도)세대’를 소개한 아사히신문은 이 세대의 특징을 ‘해외여행을 꺼리는 대신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일본 젊은이들의 지역지향성은 장기불황하에서 리스크를 무릅쓰고 대도시로 유학하기 보다는 나고 자란 고향에서 머물며 가족이라는 안전망에 의존하려는 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지역이 도쿄의 대안이 된다는 이야기다. 

 

일본은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각 지방이 독자적인 경제·문화권을 구축해온 전통이 있다. 일본 정부가 고도성장시대에 쌓은 부를 지방에 일정하게 배분하면서 대도시에 버금가는 인프라를 구축한 것도 지방이 대안이 될 수 있게 된 이유다. 게다가 청년들의 지역지향에는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애착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인 지난 11일 일본 한 민영방송이 방영한 특집 다큐멘터리에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에서 부모를 잃은 10살 소년의 사연이 소개됐다. 대지진 한달 뒤 아빠의 시신이 발견됐을 때 한차례 눈물을 보인 이후 ‘아빠’를 한번도 입에 올리지 않던 소년은 그해 여름 마쓰리(축제)에 참가하면서 아빠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됐다. 쓰나미로 괴멸돼 도로조차 구분이 안가는 시가지에서 주민들은 마쓰리 수레를 끌며 슬픔을 잊었고, 수레에 오른 소년은 북을 두드리며 아빠를 떠나보냈다. 지역 커뮤니티가 재난의 상처를 치유하는 ‘힐링캠프’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물론 일본의 기득권층은 젊은이들의 지역지향성에 혀를 찬다. 고도성장시대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학을 나와 취직한 뒤에는 ‘회사인간’이 돼 밤낮으로 일에 매진해온 이들에게 해외유학은커녕 ‘도쿄유학’도 기피하는 젊은이들이 곱게 보일리 만무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서울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일본의 ‘지역지향’은 성숙사회의 일면으로 느껴진다. 한국은 어쩌면 ‘서울 일극주의(一極主義)’라는 거대 쓰나미에 진즉에 휩쓸렸는지 모른다.